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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마지막 변경을 향하여

복거일
소설가
현대 문명은 점점 거대해지고 복잡해진다. 빠르게 불어나는 정보의 홍수는 상황을 악화시킨다. 그래서 현대 문명은 점점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두려워하고 공격한다. 소박한 공동체를 이루어 살려는 시도부터 신정정치를 지향하는 근본주의까지, 문명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들이 갖가지 모습으로 나온다. 그러나 한 번 발명된 것은 없앨 수 없다. 누구도 문명사회를 떠나서 생존할 수 없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처하려면 현상들 아래에 있는 맥락을 찾는 것이 긴요하다. 우리 삶이 뻗어가는 방향을 가늠하면 점점 빠르게 바뀌는 환경에 보다 잘 적응할 수 있다.

 생명은 가능성의 영역에 머물던 것들을 구체화한다. 생명이 없던 지구를 다양한 생명체들이 덮었다. 여러 종이 사회를 이루었고 나름의 문화를 발전시켰다. 인류 문명은 이런 과정을 크게 가속시켰다. 이제 지구 생태계는 사람의 주도 아래 외계로 뻗어나가려 한다.

 1957년 ‘스푸트니크’가 연 외계시대는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탐사로 큰 운동량을 얻었다. 이제 무인 우주선들이 태양계를 탐사하느라 분주하다. 1977년 발사된 ‘보이저 호’ 두 척은 바깥 행성들의 탐사 임무를 마치고 컴컴한 성간 공간을 항해한다. 농사짓기 시작한 지 1만 년 남짓한데 인류는 아득한 외계로 진출하는 것이다.

 미국의 ‘행성협회’가 ‘햇살돛(solar sail / light sail)’을 발사한다는 소식이 얼마 전에 보도됐다. 이 계획은 외계 진출에서 작지만 뜻있는 시도다. 하긴 과학과 기술에 무심한 우리 신문들이 이런 소식을 보도한 것도 작지만 뜻있는 진보다.

 햇살돛은 태양의 방사압(radiation pressure)으로 추진되는 우주선이다. 아주 얇은 돛에 햇살을 바람처럼 받으면서 외계를 항해한다. 광막한 외계에선 연료를 싣고 가는 로켓은 연료 무게 때문에 비실용적이다. 대안들 가운데 가장 현실적인 것이 햇살돛이다. 연료가 필요 없고 구조가 간단해 무척 경제적이다. 끊임없이 가속되니 장거리 여행에선 속도도 빠르다.

 햇살돛을 처음 생각해낸 사람은 케플러다. 혜성의 꼬리가 늘 태양의 반대쪽을 향한다는 사실로부터 태양에서 무슨 바람이 분다고 추론한 다음 언젠가는 외계를 건너는 돛배가 나오리라고 예견했다. 1864년 제임스 클럭 맥스웰이 전자기장 이론을 발표하자 케플러의 추론은 이론적 바탕을 얻었다. 이듬해 선구적 과학소설 작가 쥘 베른은 빛이나 전기로 추진되는 우주선이 나오리라고 말했다. 마침내 1976년 미국 JPL이 핼리 혜성과의 만남을 위해 햇살돛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햇살돛 연구에서 단연 앞선 나라는 일본이다. 2010년 5월 21일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는 햇살돛 우주선 ‘IKAROS 호’를 로켓에 얹어 발사했다. 6월 10일 이 우주선은 두께가 7.5마이크로미터이고 한 변이 14미터인 정사각형 햇살돛을 성공적으로 폈다. 포개어진 돛을 우주선 스스로 펴는 일은 보기보다 까다롭다. 이 우주선은 반년 뒤에 금성 궤도에 이르러 임무를 수행했다. 그 뒤엔 10개월 주기로 태양을 돈다. 태양 가까이 가면 태양광 전지가 작동돼 깨어나서 교신하고, 태양에서 멀어지면 동면한다. 현재 네 번째 잠에서 깨어나 교신하고 있다. 대단한 성취다.

 햇살돛은 과학소설을 통해 열렬한 지지자들을 얻었다. 쥘 베른의 『지구에서 달까지』가 나온 뒤 여러 작가가 햇살돛으로 추진되는 우주선들을 그렸다. 달 탐사 계획이 진행되던 1960년대에 뛰어난 작품이 많이 나왔다. 그런 작품들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외계 여행의 꿈을 심었다. 하늘하늘한 돛폭에 햇살을 받으면서 컴컴한 외계를 항해하는 햇살돛보다 더 아름답고 낭만적인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

 사람은 밥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일상 속에서 찌들어도, 아니 찌들기 때문에 더욱 우리 마음은 모험과 낭만을 찾는다. 진정한 모험과 낭만은 변경만이 줄 수 있다. 미국 사람들이 서부의 변경을 그리도 그리워하는 까닭이, 새로운 변경을 찾자고 외친 케네디의 호소가 그리도 큰 호응을 얻은 까닭이 거기 있다. 인류에 열린 변경들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결코 다하지 않는 변경은 외계다. 그래서 ‘마지막 변경’이라 불린다. 꿈을 잃고 모험을 마다하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변경으로 가는 길이 이미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 것은 뜻이 깊다.

 우리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추문과 다툼들은 물결에 지나지 않는다. 외계로 나가려는 노력들은 조류의 한 부분이다. 아무리 거세어도 물결은 순간적이다. 아무리 느려도 조류는 뗏목을 먼 땅으로 인도한다.

복거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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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