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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275g짜리 가죽공에서 본 석법이의 희망





'보치아'를 아십니까.



장애인체육에 관심이 많은 분이 아니라면 잘 모르실 겁니다. 혹시 TV에서 입에 막대기를 문 선수가 홈통으로 공을 굴리는 장면을 보신 분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바로 보치아란 스포츠입니다. 뇌성마비 장애인들만 참가할 수 있는 보치아는 장애인들의 올림픽인 패럴림픽 정식 종목이기도 하죠. 우리 나라는 1988년 서울 패럴림픽 때부터 2012년 런던 패럴림픽 때까지 보치아에서 금메달 한 개 이상을 꼭 따낸 보치아 강국입니다.



규칙은 간단합니다. 선공을 하는 선수가 가로 6m, 세로 12.5m의 경기장 안에서 흰색 표적구를 던집니다. 그리고 양쪽이 1엔드당 각각 공 6개(빨간색·파란색)를 던져 표적구로부터 가까운 공의 점수를 합쳐 승패를 겨룹니다. 겨울 올림픽 종목인 컬링과 비슷하죠. 개인전과 2인조는 4엔드, 단체전은 6엔드로 치러집니다. 야구공보다 조금 큰 공은 양가죽으로 제작되는데 무게는 275g, 둘레는 270mm입니다.



BC1, BC2, BC4 등급은 볼링처럼 손으로 공을 던지고 중증인 BC3 등급은 보조지구와 홈통을 이용해 공의 세기와 방향을 조절합니다. 컬링과 다른 점은 가죽공이기 때문에 약간의 탄성이 있어 튀어오르기도 하지만 상대 공을 쳐내기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룰은 간단해 보여도 상대의 길을 미리 차단하는 등 다양한 전략이 필요한 건 컬링이나 당구와 비슷합니다.



20일 제주 사라봉체육관에서 열린 제9회 장애학생체육대회 보치아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장애인체육을 1년간 맡았지만 보치아 경기를 실제로 본 건 저도 이날이 처음이었는데요. 경기 중에는 조용하다가도 선수들의 좋은 플레이가 나오면 박수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보치아 경기의 특성상 선수들을 돕는 역할을 하는 부모님과 지도자 분들이 있기 때문에 경기장은 꽤 복잡했습니다.



제가 이날 보치아 경기장에 간 건 석법이를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원석법, 15살. 특수학교인 한국우진학교 중학교 3학년으로 이번 대회 BC4 중·고부 개인전에 출전했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은 이름을 '석범'으로 혼동하기도 한답니다. 아버지께서 유명한 사찰에서 지어오신 이름이랍니다.



석법이는 근이양증이란 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근육의 힘이 점점 약해지는 불치병이죠. 치료도 안 될 뿐더러 지금도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꾸준히 운동을 통해 더 나빠지지 않게 하고 있는 게 전부입니다. '언제부터 아팠냐'고 물어보니 "기억은 나지 않지만 5살 때부터 아팠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점점 다리 힘이 빠진 석법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는 휠체어를 타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게 됐습니다.



석법이가 보치아를 시작한 건 우진학교에 가면서부터입니다. 일반 초등학교를 다니던 석법이는 우진학교에서 김상호 선생님으로부터 '보치아를 해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그 전까지 보치아를 본 적도 없었던 석법이는 "안 할 거에요"라면서 처음에는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수업에서 보치아 경기를 보게 됐고, 김 선생님이 다시 얘기를 꺼냈을 때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전까지 재활치료를 위한 운동 외에는 스포츠를 해본 적이 없던 석법이는 금세 보치아에 빠졌습니다. 일주일에 3번, 3시간 정도 하는 연습이 즐겁답니다. 공을 던지지 않을 때도 보치아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이런 상황에선 이런 전략이 어떨까', '이럴 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를 고민하는 거죠. "공부는 잘 못한다"고 쑥스럽게 웃는 석법이에게 좋아하는 걸 물어보니 보치아뿐이랍니다.



그래서일까요. 석법이는 또래에서 적수가 없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국내 랭킹도 65명 중 14위까지 뛰어올랐습니다. 처음에 팔힘이 약해 던지는 것도 어려웠지만 이제는 어른들과도 당당히 경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처음 나간 성인 대회에서 '12대 빵'으로 졌던 석법이는 지난해 8강까지 올랐습니다. 김상호 선생님의 격려와 지도도 큰 힘이 됐습니다.



석법이는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일을 하시고, 어머니는 석법이를 돌보다 최근에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임시로 시설에서 지내고 있고, 이번 대회에도 가족들은 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석법이는 씩씩합니다. 2017년 유스 패럴림픽과 2020년 도쿄 패럴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메달을 목에 거는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경기 중에 상황 대처하는 게 부족해요. 그 점을 보완해서 패럴림픽까지 나가고, 금메달을 따고 싶어요." 석법이의 손에 든 가죽공에서 희망을 엿봤습니다.



제주=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사진제공=대한장애인체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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