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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인터뷰] 장훈 묻고 박재창 답하다

박재창 석좌교수(왼쪽)는 “정당의 실패, 제도정치의 실패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라는 장훈 교수의 질문에 “시민들에 의한 자기주도형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이달 초 국회가 합의한 연금 개혁 법안이 여론의 비판에 부닥쳐 표류하는 사회적 기현상이 나타났다. 그만큼 제도 정치권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감도 확산되고 있다. 이에 제도 정치권과 시민들의 바람 및 기대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를 어떻게 좁힐 것인가를 고심하게 됐다. 지난 30여 년간 오직 국회 개혁과 시민운동 연구에 노력해 온 한국외대 박재창 석좌교수를 만났다. 박 교수가 말하는 시민주도형 정치에 부흥하기 위해 국회는 무엇을 바꿔야 할까. 인터뷰는 중앙일보 10층 대회의실에서 이뤄졌다.

시민이 나서 낡은 시대와 패러다임과의 작별 주도해야



장훈 교수(이하 장)=지난 2일 국회 합의 이후 진통을 겪고 있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진행 과정을 어떻게 평가하나. 국회의 능력보다 한계를 더 보여준 사례인가.



 박재창 교수(이하 박)=지금까지 한국 의회정치의 수준을 고려하면 이번 정도의 합의를 도출한 것은 점수를 줘야 한다고 본다. 여야가 일단 합의에 이르렀다는 것은 공무원 연금 개혁안의 구체적 내용이 객관적 경제적 합리성의 잣대로는 다소 미흡하더라도 정치적으로는 충분히 평가될 가치가 있다.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유권자의 요구를 담아내는 것이 국회의 역할이라고 볼 때 이번 합의는 그 성과를 인정해 줘야 한다. 다만 여야 합의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감동이 크지 않은 것은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한 의사 결집 과정이 빈약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맥락에서 사회 구성원들 간에 토론·네트워크·연대작용이 진행되고, 그것의 총합 결과물을 처리하는 것이 국회의 정상적 모습이다. 하지만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진행 과정에서 이 같은 결집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는 않았다.



 장=시민 참여가 충분치 않은 여야 합의에는 감동이 없다.



 박=그렇다. 여야가 합의로 연금 개혁을 이뤄내려 한 것은 생활정치의 측면에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여전히 그 과정은 낡은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보통 시민들은 정책의제들에 대해 주도적으로 정보를 확보하고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시민들로 이미 바뀌어 있는데, 우리 국회는 여전히 산업사회적인 대의정치에 머물러 있다.



 장=시민이 바뀌었는데, 국회와 대의정치가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건가.



 박=20여 년에 걸친 민주화와 정보사회화를 거치면서 시민들은 자아를 실현하려는 시민들로 진화해 왔다. 매슬로의 ‘인간 욕구 성장 5단계론’에서 말하듯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의 욕구, 안전에 대한 욕구, 소속감에 대한 욕구 등을 거쳐 그다음 단계에서는 자아존중에 대한 욕구가 커지기 마련이다. 시민 스스로가 국정에 참여해 자신의 존재이유를 확인하고, 이를 통해 스스로를 존중받고자 하는 사회시민적 욕구가 폭주하는 단계에 와 있다. 공동체적 가치, 도덕적·윤리적 가치들을 구현하고자 하는 자아실현의 욕구를 표현하려는 단계에 한국 사회가 이미 도달해 있지 않은가. 과거 산업사회에서는 국민이 정치적 대리인에게 국정 운영을 맡기고, 그들이 전문가적 판단을 하게 되면 그 결정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피동적 존재가 국민이었다. 오늘날의 시민은 SNS의 폭발적 사용에서 목격하듯이 모든 구성원이 정보를 생산·유통하는 정보소통의 주도자다. 이 새로운 시민들은 자아중심적 또는 자아주도적 민주주의에 대한 욕구가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시민들의 욕구에 부응하려면 국회의 입법절차라는, 보이는 과정 이전에 보이지 않는 과정에서부터 시민 의사의 결집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체제에서는 이것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작은 기업이나 작은 모임에서부터 개방적이고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갈등이나 대립적 이익을 조정하는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이러한 노력이 대의제 국회와 연결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따로 노는 사회, 시민사회가 실질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의견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대의정치에 머물고 있다.



 장=민주화 이후 20여 년의 실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민과 대의정치의 간극은 좁혀지기는커녕 오히려 벌어지고 있다는 건가.



 박=이명박 정부 초기의 촛불시위에서 보듯 시민들이 자아주도적 욕구를 분출하는 일련의 사건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유모차를 끌고 나섰던 젊은 주부들, 다양한 정보통신기기로 무장한 젊은 시민들이 제기하는 자기주도적 민주주의의 욕구가 제도권 밖에서 폭발적으로 분출하고 있다. 시민사회는 부글부글 끓고 있지만, 이러한 자기주도의 욕구를 수용하거나 처리할 상부구조가 마련돼 있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3개월에 걸쳐 촛불시위가 계속될 수밖에 없고, 소위 명박산성이라고 하는 대치를 낳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래서 시급한 것이 시민의 자아실현 욕구와 참여에 대한 준비, 그리고 이들을 수용하고 대응해 나가는 데 초점을 둔 체제의 정비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 상부구조의 재디자인이 절실하다.



 장=정치적 상부구조의 재디자인이란 결국 내년 총선까지 국회, 정당, 선거 과정을 개혁해야 한다는 말씀인데, 이미 숱한 개혁 의제가 제기돼 온 바 있다. 20대 총선 전에 반드시 해야 하는 개혁은 무엇일까.



 박=먼저 국회 개혁을 생각해 보면 제가 다른 기회에도 국가옴부즈맨제, 전자국민창안제, 스마트 상임위원회 제도 등을 제안한 바 있다. 가장 시급한 변화 하나를 꼽으라면, 의원들에 대한 국민소환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 헌법에서 규정하는 국회의원의 핵심 의무 세 가지, 즉 청렴의 의무, 국가 이익 우선의 의무, 지위 남용 금지의 의무를 지키지 못한 의원들은 유권자들이 임기 4년과 상관없이 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사회 환경에서 의원들이 4년간 무조건적으로 고용계약을 유지할 수는 없다고 본다. 우리가 미국처럼 2년에 한 번씩 자주 선거를 치를 형편은 되지 못하니 3대 핵심 의무를 지키지 못하는 의원들은 시민들이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 국민소환제를 도입해야 한다.



 장=국민소환제에 대한 위헌 논란이 있기도 한데.



 박=의원 소환의 요건을 앞에서 말한 헌법상 세 가지 핵심 의무 위반으로 한정한다면 위헌 논란은 수그러들 것이다. 국회가 스스로 국민소환제를 도입함으로써 대의기관의 횡포와 독단을 사전적으로 방지하는 획기적 장치를 이번 기회에 마련해야 한다.



 장=국회가 변하려면 정당이 먼저 변해야만 한다는 주장도 제기돼 왔는데.



 박=우리 정당의 현실이 몇몇 인사가 좌지우지하는 과두제 정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여야 정당과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논의하고 있는 바대로 유권자 중심의 후보 공천이 이뤄져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개방형 경선제처럼 유권자에게 공천 권력을 돌려주는 것만으로 정당 개혁이 완결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 현실을 돌아보면 돈도 없고, 연줄도 없고, 오로지 표밖에 가진 것 없는 보통사람들이 자기 문제를 들고 찾아갈 창구가 없다. 지연도 없고, 학연도 없는 사람들이 문제를 호소할 데가 없다는 것은 곧 정당이 지역사회의 바닥과 철저하게 유리돼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당의 실패 정도가 아니라 정당이 부재하는 것이다. 정당이 시민사회의 밑바닥과 긴밀하게 연계되는 구조가 이뤄져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지구당 조직에 준하는 정당 조직의 부활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장=정당의 실패, 제도정치의 실패를 국가와 시민사회의 전반적인 실패로 봐야 하나.



 박=정당, 국회가 좀 더 유연하고 유능한 연결고리로 개혁돼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오늘날의 시민주도형 정치가 열리기 위해서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연결고리가 보다 간결해야 하고, 이런 점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역설적인 행운도 있다.



 장=역설적인 행운이란.



 박=산업사회의 대의정치에서는 국가와 시민이 직접 만나지 않고 다양한 중간자를 거쳐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양식의 권력 남용이나 정보 왜곡, 처리의 지체가 일어났다. 이에 따라 부패가 자라나곤 했다. 하지만 정보사회에 와서는 더 이상 그런 일들이 용인될 수 없다. 정보사회는 사회적 이슈가 하나 발생하면 정보통신기기에 의해 일시에 전국적으로 공유된다. 지역 단위에서 이슈 갈등이 잠정적으로 조정·통합되는 사회적 여백이 허용되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하나의 커다란 재난 사태가 일어났을 때 지역단위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온 사회가 이를 공유하는 데에는 시간적인 지체가 일어나곤 했다. 그 사이에 감정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재난사태를 대응·조정하고 관리할 여백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보화 사회에서는 그런 공간이 다 증발해 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긍정적 역사 DNA가 있다. 서구나 일본은 국가 권력과 일반시민의 만남이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직접화돼 있지 않았다. 이를테면 서구사회의 농노와 봉건 영주 사이에 부르주아가 있고, 이들이 현대 민주주의로의 이행에 중간자 역할을 했었다. 그런데 우리하고 중국은 중간자가 없는 전통사회였다. 농민과 국가 권력이 직접 맞부닥치는 구조를 가졌었고, 따라서 국가와 시민이 직접 만난다는 것이 우리에겐 훨씬 익숙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중간자를 매개로 하는 산업사회와 대의제가 일본의 사회문화 구조와 정합성이 높은 체제였다면, 정보사회와 시민주도적 민주정치는 한국 사회와 정합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장=국가와 직접 만나곤 하던 우리 시민들의 DNA를 어떻게 살려가야 하나.



 박=자기주도형 민주주의를 이끌어 가는 시민으로 가꾸어 가야 한다. 우리 시민들이 욕구와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자아중심주의가 충만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정치의 철학적 원리에 따라 자아와 욕구를 분출하고 조정하는 훈련은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 여기서 시민교육의 역할과 중요성이 대두된다. 시민교육의 핵심은 정치적 독립과 재정적 독립이다. 정치적 독립성을 지닌 민주시민교육원이 시급히 설립돼 시민교육에 필요한 연구, 훈련, 조사, 평가를 해야 한다. 또한 다양한 양식과 차원에서 시민교육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시민교육의 재정적 독립이 관건이고, 이를 위한 민주시민교육기금이 설치돼야 한다.



 장=정리해 보면 산업화 시대의 국가주의 패러다임, 대의제 패러다임으로는 시민이 주도하는 민주주의의 심화가 어렵다는 말로 들린다.



 박=시민들이 나서서 낡은 시대, 낡은 패러다임과의 작별을 주도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은 총체적 접근과 시스템의 근본적인 재디자인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국가가 시민사회를 관리하고 이끌어 나갈 수 없는 시대다. 시민들의 사회적 권력, 예컨대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라든지, 자기 확신성 등이 엄청나게 확장된 상황 속에서 낡은 패러다임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행정국가·대의정치로는 지금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국가는 실수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경제성, 과학성에 기초해 국가를 편제하고 운영해 나가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국가가 공적 과제에 대해 갖던 독점적 권력을 포기하고 문제해결의 권한을 시민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 이 같은 거버넌스 양식으로 전환해야만 우리가 직면한 숱한 문제들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만난 사람=장훈 중앙대 정치학 교수

사진=김경빈 기자





[인터뷰 후기] 굵고 우렁찬 목소리엔 절박감 담겨



정치구조의 지체와 시민사회의 개혁 과제들을 열정적으로 전부 쏟아내기에 두 시간의 인터뷰는 박재창 교수에게 충분치 않았다. 종내는 그의 굵고 우렁찬 목소리마저 꽉 잠겨 버렸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정보사회의 눈부신 변화와 자아주도적 시민의 등장, 그리고 이에 뒤처져 있는 우리 정치구조의 개혁을 역설하고 또 역설했다.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한 67세의 나이지만 시민교육과 정치 개혁의 절박함을 말하는 그의 열정은 대학에서 만나는 청년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곧 3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의 민주주의와 시민사회가 회복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같은 청년 정신이 아닐까. 중년의 진부함·안온함·보신주의를 떨치고 한국 민주주의가 새로운 실험에 과감히 몸을 던져야 할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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