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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자칫하면 ‘기회의 땅’ 이란, 중국·인도에 뺏긴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남정호
논설위원
수년 전 대만에서 생각도 못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TV 뉴스, 신문 할 것 없이 한국 이야기가 노상 나오는 게 아닌가. 한반도 안보 관련 뉴스는 물론이고 대만에서 어떤 문제가 불거져도 한국 케이스가 인용됐다. “한국에선 교통체계가 잘 돼 있는데 대만은 이게 뭐냐”는 식이다. 한국이 준거의 틀로 발전한 셈이다. 1980년대 한때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함께 꼽혔던 한국과 대만이다. 그랬던 두 나라는 서로 다른 발전 전략을 택하는 바람에 국제적 위상에서 차이가 벌어졌다. 삼성·현대·LG 등 세계적 기업을 앞세운 한국은 국제 무대에서 발언권이 꽤 세진 준(準) 선진국 대우를 받는다. 반면 중소기업 위주의 발전 전략을 편 대만엔 이렇다 할 글로벌 기업이 없고 그 탓에 존재감마저 희미해졌다. 이러다 보니 타이베이에선 노상 대한민국 뉴스가 넘치지만 한국 언론에선 대만에 대해 도통 관심이 없다. 이를테면 ‘관심의 비대칭’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관계가 ‘기회의 땅’으로 떠오른 이란과 한국 간에도 형성돼 있다. 이란이 어떤 나라인가. 260년께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를 생포할 정도로 셌던 세계 최강국 페르시아의 후예다. 오늘날에도 국력이 떨어지는 나라가 아니다. 아직도 8100만 인구, 남한의 7.5배에 달하는 광활한 영토를 자랑하는 중동 최대의 잠재시장이다. 지하자원도 풍부해 원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은 각각 세계 4위, 2위다. 아연·철광석 매장량도 세계 10위권 내다.



 일반인에게 이란은 그저 핵 개발 의혹으로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는 중동 산유국 정도로 각인돼 있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움직임엔 시시각각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이란이라는 거대한 시장이 열린다는 사실을 눈여겨보는 사람들은 무척 적은 듯하다. 하산 타헤리안 주한 이란대사도 19일 아시아 소사이어티 강연에서 “서방 언론의 편향된 보도로 이란의 이미지가 왜곡돼 있다”고 주장했다.



 더 큰 문제는 무관심한 틈에 이란 내 중국의 입김이 놀랄 만큼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대이란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래서 2009년 전후 서방 석유회사들이 이란에서 짐을 쌀 때에도 중국 국영석유회사 페트로차이나는 굳건히 버텼다. 그리하여 페트로차이나는 이란 내 최대 석유회사로 부상한다. 이뿐 아니다. 지난해 11월에는 250억 달러(27조여원) 수준이던 인프라 투자를 두 배 이상인 520억 달러(56조여원)로 늘리기로 했다. 특히 지난달에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 차원에서 이란과 파키스탄을 잇는 총길이 1600㎞의 가스관 건설공사 계획을 발표했다. 대이란 제재를 영향력 확대의 기회로 삼은 것이다.



 이란에 눈독을 들이고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 건 중국뿐 아니다. 인도 역시 460억 달러(약 50조원) 규모의 이란 남동부 차바르항 개발에 착수했다. 인도는 이란과 합작법인을 만든 뒤 10년간 항구 운영권을 얻어낼 참이라고 한다. 문이 열리는 이란 시장을 두고 아시아의 두 거인이 본격적인 경쟁에 뛰어든 모양새다.



 이에 비해 한국 정부는 경쟁국들이 팔을 걷어붙일 때 우리 기업의 진출을 도와주기는커녕 결과적으론 소금 뿌리는 역할을 했다. 이란엔 멜라트라는 은행이 있다. 최대 시중은행이다. 이 은행이 외국에 설치한 지점은 딱 5개. 인접국인 터키에 3개, 아르메니아에 1개가 있고 나머지 1개가 아시아에 있다. 바로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이다. 그런 서울지점에 대해 한국 정부는 대이란 제재조치의 일환이라며 2010년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런 일도 있었다. 2011년부터 KT가 이란에 진출해 통신 관련 컨설팅 사업을 잘하고 있었는데 재작년 갑자기 한국 측 은행에서 “용역비 송금은 안 된다”고 브레이크를 걸어 사업 자체가 중단된 적도 있었다. 신재현 서아시아경제포럼 회장은 “그전까진 정부에서 가능하다고 허용했던 게 별 이유 없이 뒤집힌 건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란 내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놀랄 만큼 크다는 사실이다. 가전 시장에서 삼성·LG의 시장 점유율이 70% 이상이라는 건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다. 이란에서 가장 대중적인 차가 기아 프라이드와, 이를 현지에서 개량한 사바·나심이다. 특히 한류의 파급 효과는 예상을 뛰어넘는 괴력 수준이다. 2006년 첫 방영된 ‘대장금’은 한때 90%를 넘나드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올렸다. “라마단(이슬람 금식 기간) 때 밥은 굶어도 대장금은 거르지 않는다”는 얘기가 돌았다고 한다. 지난달 테헤란에서 열린 ‘한국 문학의 밤’ 때에도 자리가 모자라 청중 상당수가 서서 들어야 했다. 다 한류 붐 덕분이다.



 따지고 보면 한국과 이란은 구원이 없는 사이다. 70년대에 건설된 서울의 테헤란로, 테헤란의 서울로가 상징하듯 양국은 예부터 우호적인 사이였다. 그럼에도 옛 정과 한류만 믿고 우물거리다가 ‘기회의 땅’ 이란을 중국·인도에 빼앗길까 두렵다.



남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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