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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에 던지는 구수한 입담 원작의 빈틈 메우고도 남아

객석을 가로질러 그가 나타났다. 무대에 당도하자 동그란 핀 조명 속에 홀로 객석을 쓰윽 훑어보며 미소 짓는다. “그 옛날부터 읊었던 시를 노래해. 그대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려 약점 많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서, 이 한 줌 재로부터 살아 돌아온 배우 가우어올시다(…) 나 그대들을 위해서 내 영혼을 촛불처럼 불태워 버리겠소.”

셰익스피어로 돌아온 유인촌

의미심장한 이 독백의 주인공은 셰익스피어의 ‘페리클레스’(5월31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로 주류 연극계에 복귀한 배우 유인촌(64)이다. 2004년 서울문화재단 대표로 공직에 입문한 뒤 8년간 정치권 외도를 하며 숱한 적을 만든 그다. 2011년 문화부 장관 사임 이후 연극계로 돌아왔지만 과거의 명성은 쉽게 되찾을 수 없었다. 자신의 극단 무대에 한두 번 섰을 뿐이다.

12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이 무대에 거의 10년 만에 서게 됐다”며 남다른 소회를 밝혔다. 토월극장 개관공연이었던 김정옥 연출의 ‘햄릿’에서 주역을 맡았던 그가 다시 토월에서 컴백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큰 작품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양정웅 연출과 하게 돼서 배우로서 만족스럽습니다. 낯선 작품이지만 관객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무대로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페리클레스’는 셰익스피어 당대 인기 레퍼토리였지만 국내 공연이 거의 없었던 이유는 대본의 미흡한 완성도 때문. 속전속결로 끝나는 다른 셰익스피어에 비해 15년 동안 5개 나라를 떠도는 느슨한 구성, 세 번의 풍랑을 만나며 극이 온통 우연의 일치로 점철되는 비논리성, 풍랑 속에 아내를 잃으면서까지 얻은 귀한 딸을 14년 동안이나 찾지 않는 모순된 스토리도 현대인에겐 영 부실해 보인다.

‘한여름밤의 꿈’ ‘십이야’등 감각적이고 흥겨운 셰익스피어로 본고장 영국에서도 인정받은 연출가 양정웅은 이를 완성도 높은 무대로 끌어올렸다. 돌아온 유인촌에게 극을 이끄는 해설자 가우어와 늙은 페리클레스 1인2역을 맡긴 설정의 힘이 컸다. 원작의 빈틈은 극을 넘나드는 유인촌의 구수한 입담으로 메워졌고, 어딘지 그의 인생과 겹쳐 들리는 달관한 대사에 객석은 크게 공감했다.

10여 년 만에 1000석 관객 앞에 섰지만 그는 무척 편안해 보였다. 2막 시작 직전 모래 무대를 고르며 등장해 “1막은 잘 보셨나요. 여기 모래가 50톤이 들었어요.”라고 말을 걸 땐 가우어인지 유인촌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15분의 인터미션과 함께 15년의 세월이 지나 늙어버린 페리클레스는 그제서야 사랑하는 딸 마리나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뭔가를 되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마리나가 죽었다고 믿은 페리클레스는 다시 태풍 속에 몸을 던진다. 다시는 이 세상과 대면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면서.

하지만 또 한 번의 풍랑 끝에 마리나를 찾은 페리클레스는 아름다운 그녀의 노랫소리에 치유받고 파란 많았던 인생의 진정한 평화를 얻는다. 양 연출에 의하면 마리나는 예술로 세상을 치유할 수 있다는 셰익스피어의 이상이다. 어쩌면 배우 유인촌에게 연극 ‘페리클래스’란 다시 만난 마리나같은 존재가 아닐까.

“그동안 많은 일을 겪어왔건만, 지나보니 찰나입니다(…) 아, 운명이여. 새로운 길에 길잡이가 되어다오. 시간은 과거라는 등불을 들고 이 현재를 비추어주는구나.”

가우어 또는 페리클레스의 마지막 대사지만 배우 유인촌의 독백으로도 들려왔다. 많은 일을 겪고 제자리로 돌아온 늙은 배우에게 보내진 객석의 뜨거운 환호도 그에게 길잡이가 되었으리라.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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