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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하나하나에 무한 에너지 관객 향해 소리없는 아우성

독일 작가 카타리나 그로쎄(54)의 대형 설치작업. 폐허 현장에 다양한 색을 뿌려 갈등에서 희망찾기라는 주제의식을 반영했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발로 보는 곳이다. 공원 곳곳에 각국 국가관이 독립 건물 형태로 세워져 있는 ‘자르디니(Giardini)’와 전시 총감독이 직접 큐레이팅한 작품을 모아 놓은 옛 조선소 건물 ‘아르세날레(Arsenale)’가 메인 전시장이지만, 골목 골목 숨어있는 ‘팔라초(pallazzo·공관 혹은 저택)’전과 각종 특별전에 거리 퍼포먼스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섬 전체가 전시장이다. 사실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만 제대로 돌아보려 해도 며칠이 걸릴 수 있다. 게다가 여기 뽑혀나온 작품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하다는 작가들의 가장 ‘쎈’ 작품들 아닌가. 작품마다 품고 있는 엄청난 에너지가 관람객을 향해 소리없는(때로는 음악과 함께) 아우성으로 파도치듯 밀려드는 곳이니만큼 몇 곳 보지도 못했는데 온 몸의 기운은 방전되기 일쑤다. 또 베니스에는 자동차가 없다. 웬만하면 걷거나 아니면 ‘바포레토’라 불리는 수상버스를 타야 한다. 거리 곳곳에 앉아 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다.

올해 제 56회 베니스 비엔날레(5월 9일~11월 22일)는 창설 120주년(1895년)에 한국관 설립 20주년(1995년)이라는 숫자적 의미를 넘어 우리에게 더욱 크게 다가왔다. 김아영·남화연 작가와 함께 본 전시에 초청된 임흥순(46) 작가가 여성 노동자의 삶을 밀착해 담아낸 영상 작품 ‘위로공단’으로 젊은 작가에게 주는 은사자상을 받은 것이다. 역대 미술전 최고의 성적이다(백남준이 1993년 독일관 작가로서 황금사자상을, 건축전에서는 지난해 조민석 커미셔너의 한국관이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한국 작가들의 약진은 올해 두드러졌다. 한국관 참여작가인 문경원&전준호를 비롯, 국제갤러리가 주도한 ‘단색화(Dansaekhwa)’전에 고 김환기·권영우·정창섭 화백과 박서보·정상화·하종현·이우환 화백, 인도 출신 산다람 타고르가 기획한 ‘Frontiers Reimagined’전에 전광영·김준 작가, 나인 드래곤 헤즈가 기획한 ‘Jump into the Unknown’전에 경북대 임현락 교수를 비롯해 모두 10명이 초대받는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다. 그 기운생동의 현장에 중앙SUNDAY S매거진이 다녀왔다.

1 문경원&전준호 작가의 ‘축지법과 비행술’이 상영되고 있는 한국관 내부와 영상작품 ‘위로공단’으로 은사자상을 수상한 임흥순 작가. 2 쇼타 치하루 작가의 일본관.
3 폐타이어로 외벽을 처리한 이스라엘관. 4 사람을 거꾸로 그리는 작가로 유명한 게오르그 바셀리츠의 전시장. 5 터키 작가 쿠트룩 아타만의 디지털 설치작업. 9216개의 LCD 패널로 구성돼 있다. 6 러시아 작가 이리나 나코바의 작품을 보고 있는 관람객들. 7 사라 루카스 작가의 영국관.
‘인간과 예술의 미래’ 고민한 한국관
자르디니 구석 한국관 입구엔 줄이 길었다. 나오는만큼 들여보냈다. 안에 사람이 많다는 얘기였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하지만 심심하지 않았다. 두 개의 곡면 LED 스크린을 통해 작품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리로 둘러싸인 건물이라 전시에 취약하다는 지금까지의 약점을 멋지게 극복해낸 것이다. 내부의 5개 스크린을 포함해 총 7개 화면에서 각 10분 30초씩 진행되는 문경원&전준호 작가의 작품 제목은 ‘축지법과 비행술’. 영화배우 임수정이 물바다가 된 미래, 실험실에서 생존하는 최후의 인류 역할을 맡았다. 부표처럼 떠다니다 안착한 곳이 알고보니 현재의 자르디니 한국관이라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올해의 전시 주제인 ‘모든 세계의 미래(All the World’s Futures)’와 잘 어울린다는 것이 이숙경 커미셔너의 설명이다.

“경기도 남양주 종합촬영소에 여기와 똑같이 만들어 놓고 촬영을 했죠. 의상은 물론 속눈썹까지 하얀 주인공의 컨셉트는 디자이너 정구호 선생님이 맡아주셨고요. 카메라 2대로 촬영을 했는데 편집팀은 처음엔 10분 짜리라고 쉽게 생각했다가 각기 다른 영상이 7개 나와야 한다는 얘기에 ‘뭐야, 장편이잖아요’라며 항의하더라고요. 하하.” 고생담을 전하는 문 감독의 얼굴이 환하다.

“인간에게 예술은 과연 무엇일까 라는 고민을 담았어요. 임수정씨 머리에 불이 켜지는 촉수가 있는데, 이것은 전기로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광 유전학’에서 모티브를 따왔어요. 실제로 동물 실험이 진행되고 있대요. 그런데 거꾸로 전기 신호를 집어 넣으면 생각을 조작할 수도 있다고 하네요. 그런 세상이 오게 되면 인간에게 예술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한국관 옆에 일본관이 있다. 바닥에 가라앉은 듯 떠있는 2대의 나룻배 위로 수천 개의 붉은 실이 빛처럼 핏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리고 그 끝에는 각양각색의 열쇠가 매달려 있다. 쇼타 치하루 작가의 ‘손에 쥔 열쇠’다. 도대체 어느 열쇠가 희망이고 또 어느 것이 절망인지, 열쇠만으로는 알 수 없다. 자물쇠에 넣고 돌려보기 전까지는.

영국관의 대표 선수는 ‘현대 미술계의 불량소녀’ 사라 루카스다. 젠더와 섹스의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풀어내기로 유명한 작가다. 아니나다를까, 로비에 설치된 샛노란 바람 풍선 같은 설치물은 분명 그것을 은유하고 있었다. 다양한 포즈의 인체 조각 특정 부위마다 담배를 한 가치씩 끼워넣은 건 또 무슨 심보일까.

올해의 황금사자상을 받은 아르메니아 국가관은 따로 배를 타고 한참을 가야하는 섬(아르메니아 가톨릭 수도원이 있던 곳)에 있어 일정상 돌아보지 못해 아쉬웠다.

아르세날레는 입구부터 충격적이었다. ‘DEATH’ 사이에 ‘EAT’ 글자가 있는 네온 작품에 불이 번갈아 들어와 ‘죽음’과 ‘(살아서) 먹는다’를 오가는 미국 작가 브루스 나우먼의 작품과 톱과 칼을 한데 쑤셔박아 정원수처럼 만든 알제리 작가 아델 압데셈트의 ‘수련’들은 묘하게 조응하고 있었다. 아르헨티나 에두아르도 바수알도의 작품 ‘아메나자’는 테이블 위에 칼 손잡이를 박아놓았는데, 칼날은 그림으로 그려 묘한 착시 현상을 일으키게 했다. 무기를 녹여 평화의 종을 만든다는 이라크 히와 K. 감독의 다큐 마지막에 갑자기 크게 울려퍼지는 종소리는 한 줄기 카타르시스였다. 아프리카 출신 최초의 총 전시감독 오쿠이 엔위저(52)의 정치적 성향대로, 갈등과 불안, 충돌과 몰락이라는 키워드가 전체 전시장을 지배했다.

한지 추상으로 잘 알려진 전광영 작가는 전시장을 둘러본 뒤 가나 출신 존 아콤프라의 ‘현기증 바다(Vertigo Sea)’를 인상 깊은 작품으로 꼽았다. 허먼 멜빌의 『모비딕』과 힛코트 윌리엄스의 『고래의 나라』에서 영감을 얻은 이 작품에 대해 전 작가는 “인간과 자연의 대립을 강렬한 화면으로 풀어낸 영상미가 압권”이라고 말했다.

10 팔라초 그라씨에서 열리는 마샬 레세 회고전 일부. 11 미국 작가 제이슨 모런의 ‘STAGED: Savoy Ballroom1’(2015) 앞에 선 관람객. 12 팔라초 콘타리니-폴리냑에서 열리고 있는 ‘단색화’전 중 이우환 작가의 바닥 설치 작업. 13 팔라초 포투니에 있는 피터 W. 반 데르 스톡과 윌렘 C. 두이스터의 회화 ‘Elegant Figures in a Classical Colonnaded Gallery’(1632).
8 국가관 황금사자상을 받은 아르메니아 국가관 상영작 ‘Unexposed’(2012). 9 팔라초 포투니에 있는 안토니오 카노바의 ‘패리스’(1807)의 석고 모형.
두 컬렉터의 자존심 대결
베니스 팔라초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곳을 꼽으라면 단연 ‘푼타 델라 도가나(PUNTA DELLA DOGANA)’와 ‘팔라초 그라씨(GRASSI)’, 그리고 ‘팔라초 포투니(FORTUNY)’다. 유럽 최고의 컬렉터로 손꼽히는 프랑스의 프랑수아 피노(구찌 그룹 회장) 그리고 벨기에의 악셀&메이 베르보르트가 각각 운영하는 곳이다. 메인 전시장이 날것의 싱싱함이 살아있는 수산시장이라면, 이곳은 잘 다듬어진 요리가 나오는 최고급 일식집이랄까.

‘푼타 델라 도가나’의 아우라는 여전했다. 2009년 비엔날레에 맞춰 개관한 이곳을 당시 들러 전시 작품들을 보고 느꼈던 충격이 고스란히 되살아 났다. 산 마르코 광장을 바다 건너 두고 있는 이 벽돌 건물이 내세운 올해의 주제는 ‘실언(Slip of the Tongue·4월 12일~12월 31일)’. 13세기 중세 그림부터 파블로 피카소, 지그마르 폴케, 그리고 내어리 바그라미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남자 성기가 드러난 사진이 1층 한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자리에 배치돼 있었는데, 어린이들을 아무 제지없이 입장시키는 것을 보고 좀 마뜩치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피노 컬렉션으로 운영되는 ‘팔라초 그라씨’에서는 프랑스의 신사실주의 미술가 마샬 레세(Martial Raysse)의 대규모 회고전(4월 12일~11월 30일)이 열리고 있었다. 팝 아트 느낌이 나는 여성 얼굴 그림 위로 네온이나 오브제를 붙여 액센트를 주는 점이 유머러스했다.

‘팔라초 포투니’ 역시 사람들이 많았다. ‘비례(Proportion·5월 9일~11월 22일)’라는 제목의 전시는 인간과 시간과 예술의 관계를 다양한 소장품으로 풀어내고자 했다. 악셀이 컬렉션한 사진작가 배병우와 설치작가 김수자의 작품보다 더 눈길을 끌었던 것은 12세기 고려시대 화병.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작품들이 주제에 어떻게 연관되는지 생각해보는 것은 전시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었다. 조명이 어두운 편이라 더욱 집중해서 봐야 했다. 걸어다닐 때마다 나뭇바닥이 삐걱이는 소리를 듣는 것은 고색창연한 팔라초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리라.

15세기 르네상스 양식을 지닌 팔라초 콘타리니-폴리냑 전관에 자리잡은 ‘단색화’전(5월 8일~8월 15일)은 전관에 화이트월을 쳤다. 관람의 집중도를 높이는 깔끔한 설치가 돋보였다. 특히 자갈 바닥에 직접 설치한 이우환 화백의 장소특정적 작품 ‘Dialogue, 관계 항’은 붓으로 그린 작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줘서 차별화에 성공했다.


베니스(이탈리아) 글·사진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베니스 비엔날레 조직위원회·한국문화예술위원회·팔라초 포투니·AP=뉴시스 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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