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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초월한 ‘나’가 되는 길이란 …

영국 작가 닉 혼비가 각본을 쓴 영화 ‘언 에듀케이션’(2009)에는 데이비드가 여고생 제니의 부모님께 여행 승낙을 얻어내기 위해 그녀의 부모님께 C. S. 루이스를 만나러 간다고 거짓말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제니는 어릴 적부터 그의 소설 『나니아 연대기』의 독자였고, 부모님은 자신의 딸이 옥스퍼드대 영문학과에 진학하기를 희망하는 터였다. 당시 루이스는 교수이자 작가로서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데이비드와 친구들은 옥스퍼드의 정문을 지나쳐 버린 후 술집에 앉아 『사자와 마녀 그리고 옷장』에 ‘클라이브’라는 이름으로 사인을 할지, ‘C. S.’로 할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인다.

이상용의 작가의 탄생 <12> C. S. 루이스와 『나니아 연대기』

‘언 에듀케이션’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변화가 일기 시작한 1961년 영국을 무대로 삼고 있는데, 그 가운데 클라이브 스테플즈 루이스(Clive Staples Lewis·1898~1963)라는 대작가가 있다. 소설가 아이리스 머독의 남편으로도 유명한 비평가 조지 베일리 교수는 “전후 옥스퍼드에서 루이스의 명성은 아무리 높다 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라고 평한다.

루이스는 옥스퍼드를 졸업한 후 1925년부터 모들린 칼리지에서 영문학 강의를 시작했으며, 중세 영문학에 조예가 깊었다. 33년부터는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한다. 옥스퍼드에서 만난 톨킨을 비롯한 지인들을 중심으로 ‘잉클리즈’ 모임을 꾸리고, 자신은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을 모델 삼아 『순례자의 귀향』이라는 책을 낸다.

38년에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창작한다. 루이스와 톨킨은 아이들이 아니라 성인들을 위한 판타지를 쓰기로 약속하는데, “한 사람은 시간 여행 이야기를, 다른 사람은 공간 여행에 대해 쓰기로” 했다. 공간 여행을 맡게 된 루이스는 우주를 무대 삼아 3부작을 쓴다. 삼부작 중 첫 권이 『침묵의 행성 밖에서』(1938)이다.

39년은 복잡한 해였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영국 역시 참전의 기치를 내걸었다. 39년 10월 22일 일요일, 루이스는 옥스퍼드의 세인트메리대학교 교회에서 ‘다른 신들은 없다: 전시의 문화’라는 제목으로 전쟁 발발 이후 드러난 세상의 실체와 현실에 대한 낙관주의적 환상을 거둬내야 한다는 강연을 펼친다. 그리고 40년에는 본격적인 기독교 변증서 『고통의 문제』를 내놓았다. 이 책은 곧 BBC 강연으로 이어지는 토대가 됐다. 41년 8월에 시작된 강연은 복음 자체보다는 복음의 준비를 위한 변증에 초점을 두었고, 이 강연은 변증론의 핵심이 모아진 『순전한 기독교』의 초석이 됐다.

영화 ‘나니아 연대기’
무신론자에서 기독교인으로 회심
『순전한 기독교』가 출간된 것은 전쟁이 끝난 한참 뒤인 52년의 일이다. 원래 무신론자였던 루이스의 회심은 자서전인 『예기치 않은 기쁨』을 통해 공개되는데, “1929년 부활절 이후 학기에 나는 드디어 항복했고, 하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했으며,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는 고백과 함께 출발한다. 이 시기는 흔히 무신론자에서 유신론자로 변한 것으로 간주되는데, 이후 가톨릭이었던 톨킨과의 대화를 통해 기독교인으로 전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30년대 초반의 일이다. 33년에 『순례자의 귀향』을 쓴 것도 회심 이후 시작된 기독교 저작의 출발인 셈이다.

48년 9월 8일 루이스는 ‘타임’의 표지 인물이 됐다. ‘타임’은 “옥스퍼드 대학의 가장 인기 있는 강연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영어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독교의 대변인 중 한 사람”이라고 그를 규정했다.
그러나 루이스가 지닌 또 다른 명성은 전쟁 기간 동안에 시작돼 전쟁이 끝난 후 본격화됐다. 일화에 따르면 39년 9월의 어느 날 아침 루이스는 가까이 지내던 여성들 앞에서 “어린이 책을 쓸 거예요”라는 말을 꺼냈다. 그들은 모두 의아해 했다. 루이스는 아이도 없는 독신 남자였기 때문이다.

전쟁기간에 루이스는 이야기를 진행시키지 못하다가 48년부터 51년까지 일곱 편으로 이루어진 『나니아 연대기』 중 다섯 권을 쓴다. 그 첫 권이었던 『사자와 마녀 그리고 옷장』은 50년에 발표된다. 작품은 전쟁에 대한 경험으로부터 고스란히 출발한다.

“옛날에 피터, 수전, 에드먼드, 루시라는 네 아이가 있었다. 이 이야기는 아이들이 전쟁 때 공습을 피해 런던 밖으로 피란 가 있는 동안에 벌어진 일이다. 아이들은 시골 구석에 사는 늙은 교수 집으로 보내졌다. 교수의 집은 가장 가까운 기차역에서도 16km나 떨어져 있었고, 또 가장 가까운 우체국에서도 3km 쯤 떨어져 있었다. 교수는 아내도 없이, 아주 커다란 집에서 매크리디 부인이라는 가정부와 세 하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창조가 아니라 놓여있는 것을 사용할 뿐”
『나니아 연대기』를 판타지 문학이나 아동문학쯤으로 취급하지만, 이야기의 출발은 전후 영국 사회를 향해 던지는 루이스의 메시지였다. 그것은 거짓과 믿음, 그리고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탐구다. 사람들은 나이 어린 소녀 루시가 옷장 뒤에 이상한 세계가 있다고 하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루시를 따라 옷장의 세계로 들어간 아이들은 나니아라는 세계를 발견하게 되고, 아담의 자식들이라 불리는 소년, 소녀들은 왕족이 되어 검과 활을 들고 하얀 마녀를 물리친다.

그런데 루이스는 나니아를 ‘창조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는 작가는 정원사처럼 ‘놓인 것들’을 가져다 새롭게 사용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새로운 활용이 우리를 새로운 경험으로 안내해 준다. “이런 문학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닌 경험을 우리에게 허용해 준다…문학은 이 모든 경험이 들어오도록 해 주는 입구다.”

그러나 이 경험은 우리의 자아를 여전히 자신의 것으로 남겨둔다. “위대한 문학을 읽을 때, 나는 수천의 자아를 가지면서도 여전히 나 자신으로 남아 있다.”

이 말을 달리 풀자면, 수천의 경험을 하면서도 여전히 내 경험을 갖고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그리스 시에 나오는 밤하늘처럼 나는 무수한 눈으로 바라보지만, 바라보는 자는 여전히 바로 나 자신이다. 참배 속에서, 사랑 속에서, 윤리적인 행위 속에서, 앎 속에서처럼 바로 여기서 나는 나 자신을 초월한다. 그리고 나는 이때처럼 더 이상 나 자신이 된 적이 없다.”

나 자신을 초월하는 나 자신이 된다는 것. 그것은 루이스가 회심을 통한 영성의 회복과 함께, 양대 세계대전을 통과하며, 판타지의 글쓰기 속에서 세상을 향해 던져준 메시지였다.


이상용 영화평론가. KBS ‘즐거운 책 읽기’ 등에서 방송 활동을 하고, CGV무비꼴라쥬에서 ‘씨네샹떼’ 강의를 진행했다.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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