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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예술이 되는 순간

저자: 제니 무사 스프링 출판사: 아트북스 가격: 1만8000원
500만 명. 지난해 가을 한 달 동안 러버덕을 보기 위해 석촌호수를 찾은 관람객의 숫자다. 사실 이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는 미지수였다. 공공미술이란 개념 자체가 우리에게 아직 낯선 탓이다. 하지만 우려가 무색하게 사람들은 호수를 욕조 삼아 둥둥 떠 있던 거대 오리를 보며 위로를 받았고, ‘덕무룩’ 등 각종 별명을 붙여주며 즐거워 했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한 작가 플로렌테인 호프만은 “예술이 늘 어려울 필요는 없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진땀을 흘릴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뜻밖의 미술』

우리 인식 속 암묵적 금기가 깨지자 사람들은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이를 즐기기 시작했다. 당장 23일부터 ‘1600 판다+’가 네덜란드ㆍ이탈리아 등 8개국을 거쳐 아홉 번째로 한국을 찾는다. 서울ㆍ부산 등 7개 도시를 돌며 플래시몹을 펼친 뒤 7월 한 달간 롯데월드몰과 석촌호수 일대에 자리 잡을 예정이다. 이는 전 세계에 남아있는 야생 판다의 개체 수를 뜻하지만 굳이 숫자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대형 판다 1600개와 새로이 증가한 아기 판다 200개의 종이모형을 보고 있노라면 저마다 느끼는 바가 있을 테니 말이다.

이 책은 이처럼 캔버스라는 프레임을 박차고 미술관에서 도망친 58개 팀의 작품을 그러 모았다. 가장 빈번한 유형은 일상을 낯설게 보기. 이명호 작가의 ‘나무’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그는 자연 풍경 한가운데 약 20m 크기의 하얀 캔버스 천을 덧댄다. 배경막이 나무 뒤에 떠 있는 것 같은 환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무 초상화는 우리가 그냥 스쳐 지나갔을 법한 풍경에 다시 한 번 주목하게 하고 일상을 예술의 순간으로 격상시킨다.

그 시간, 그 공간에서만 빚어낼 수 있는 장소 특정성에 천착하다 보면 그 자체가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데자르 호텔 왼쪽 벽면에 붙어 있는 오두막집 ‘매니페스트 데스티니’가 그런 경우다. 제니 채프먼과 마크 레이글먼은 2012년 이 도시에 더 이상 주인이 없는 공간은 없다는 데 착안, 허공에 뜬 집을 만들어냈다. 일부러 19세기 건축 양식을 차용하고 빈티지 자재를 사용했다. 무분별한 개척에 관한 서부의 신화를 찬양하면서도 비판하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알레한드로 두란의 연작 ‘쓸려오다’는 범 대륙적으로 확장된 버전이다. 두란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멕시코의 시안 카안의 한 해안구간에서 6대륙 50개국에서 쓸려온 플라스틱 쓰레기를 발견했다. 그는 이 국제적인 잔해를 색깔별로 나눠 설치 작품을 만들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한 폭의 그림 같지만 실상은 전 세계인이 함께 빚어낸 부끄러운 자화상인 셈이다. 관람객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작품 활동에 참여했다고나 할까.

반면 참여 없이는 완성되지 않는 작품도 있다. 독일 베를린의 한 미술관에 설치됐던 ‘50만 개의 별 건너기’는 관객이 바닥 가득 깔린 50만 개의 볼베어링 위를 걷는 퍼포먼스가 더해져야 전시물로서 가치가 생겨난다. 미국 뉴욕 파크애비뉴 터널의 ‘목소리 터널, 관계적 건축 21’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300개의 연극용 조명이 만든 터널의 빛은 관객의 요구에 따라 강도가 조절된다. 매시간 참가자 75명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새로운 참가자가 인터콤에 말을 하면 오래된 녹음은 사라지는 식이다. 결국 그 곳에 누가 있었는가에 따라 한 순간도 똑같지 않은, 새로운 장면을 빚어내는 셈이다.

사실 모든 예술은 우리에게 말을 건다. 허나 기존의 회화가 반드시 우리의 답을 요하지 않았다면, 공공의 품에 안긴 설치예술은 그 답이 있어야만 다음 단계가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짤막한 작품별 설명은 아쉽지만, 격을 파한 이미지의 향연은 호사다. 정숙한 미술관이 부담스럽다면 티켓을 살 필요 없는 공공장소로 떠나보자.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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