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김상득의 행복어사전] 아내에게 혼나는 이유

“뭐해? 아무것도 안 하고 소파에 앉아서.”

베란다에서 분갈이하던 아내가 남편을 불렀다. 아내의 말은 의문문이지만 그렇다고 정말 남편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것이 궁금해서 묻는 말은 아니다. 함께 일하게 남편도 베란다에 나와보라는 권유의 말일 것이다. 그 정도도 모를 남편이 아니다.

“생각 중이야.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고.”

“맨날 생각만 하면 뭐해? 행동을 해야지. 생각만 하면 아무것도 안 되잖아.”

아내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남편은 생각한다. 지금도 생각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생각한다. 정말 아내 말처럼 생각만 하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일까? 생각만으로 다 되는 것은 없을까?

남편은 생각한다. 어쩌다 지금의 아내를 만났는지. 재수할 때였다. 학원 복도에서 자주 마주치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여자아이는 학원 가는 길에 핀 개나리꽃보다 더 노란 후드 재킷을 입고 있었다. 씩씩하고 예뻤다. 남자는 이성에 대한 자신감도 없고 수줍음도 많아 속으로만 좋아할 뿐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만 갔다. 개나리가 다 지고 봄날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남자는 생각했다. 사귀자고 하면 거절당할 거라고. 창피만 당할 거라고. 여자아이는 학원 마치고 친구와 함께 전자오락을 했다. 30분 동안 전자오락실 앞에서 남자는 생각했다. 창피를 당하더라도 말은 한번 해보아야겠다고. 마침내 전자오락실에서 나온 여자아이에게 다가가 남자는 더듬더듬 말을 꺼냈다. 할 말이 있다고. 시간 좀 내달라고. 그 씩씩하고 예뻤던 여자아이는 지금 베란다에서 분갈이를 하면서 씩씩대고 있다.

“당신 회사에서도 맨날 생각만 하는 거야?”

남편은 생각한다. 생각하는 게 내 일이다. 집에서도 생각하지만 회사에서는 더 격렬하게 생각해야 한다.

남편은 생각한다. 어쩌다 회사를 다니게 되었는지. 지금의 회사를 다니기 전 남자는 일본에 있었다. 하루는 한국에 있는 친한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신이 다니는 결혼정보회사가 참 괜찮은 곳이라며 함께 정년까지 근무하면 좋겠다고. 그러니까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그 전에 시간을 내 일본의 결혼정보회사들을 방문해 보라고. 남자는 생각한다. 그러면 좋겠다고. 당시 남자는 지바 현의 식당에서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일하느라 바빴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더 바빴고 연휴 때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바빴다. 한 달에 딱 하루 쉬는 날은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었다. 쉬고 싶었지만 남자는 일본의 결혼정보회사를 방문하고 부족한 일본어로 인터뷰를 하고 각종 홍보물과 자료를 받았다. 그 후 한국으로 돌아와 지금의 회사에 입사해 매일 생각하는 일을 한다.

“안 도와줄 거면 글이라도 쓰지. 이번 주 원고는 다 쓴 거야?”

남편은 생각한다. 어쩌다 글을 쓰게 되었는지.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남편은 글을 쓰며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자는 아무 생각 없이 일찍 결혼했고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한 여자의 남편과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었다. 글을 쓰며 살기에 생활은 각박했고 생계는 절박했다. 남자는 일을 해야 했다. 그러느라 글은 한동안 잊고 살았다. 어느 날 남자는 생각했다. 일을 하면서도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일찍 출근해 업무가 시작되기 전 한 시간이라도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잠들기 전 한 시간이라도 식탁에 앉아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남자는 글을 썼다. 그렇게 쓴 글로 책을 내고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를 한다.

결과를 가져온 원인을 따라가다 보면 기원에 다다르게 된다. 기원에는 생각이 있다. 남자는 자신의 생각을 아내에게 말한다.

“생각해 보니까 말이야, 생각하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게 아니고 모든 게 생각대로 되었어. 예전에 내가 생각했어. 당신 같은 여자를 만나면 좋겠다고. 그러니까 정말 당신과 살고 있잖아. 또 생각했어. 듀오에서 일하면 좋겠다고. 16년째 다니고 있잖아. 항상 생각했어. 글을 쓰면 좋겠다고. 내가 쓴 글이 엮여 책으로 나오면 좋겠다고. 신문에 연재하면 좋겠다고. 그렇게 되었잖아. 그러니까 말이야. 생각하면 그렇게 돼. 데카르트의 말처럼 생각하면 존재해. 이 생각 굉장하지 않아?”

아내도 남편의 말에 공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굉장하네. 그럼 로또 복권 1등 당첨을 생각해 봐요.”


김상득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에 근무하며, 일상의 소소한 웃음과 느낌이 있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아내를 탐하다』『슈슈』를 썼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