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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더 주려면 보험료 0.3%P씩 30년간 인상이 합리적”

서상목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에서 ‘공무원연금 개악 중단’이란 구호가 ‘공적 연금 강화’로 슬며시 바뀌기 시작하면서 국민연금 문제가 부각된 게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이 지난 12일 국회 앞에서 공무원연금법 처리 중단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중앙포토]
서상목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는 방안을 놓고 여야가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을 논의하다가 막판에 국민연금 문제가 터져 나와 상당히 놀랐다. 그것도 소득대체율 50% 인상 얘기만 나왔다. 이런 논의는 문제가 있다. 국민연금은 공무원연금보다 더 큰 문제다. 공무원연금을 논하다가 곁가지로 논할 사안이 아니다. 앞으로 국민 대타협기구를 별도로 구성해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국민연금 설계자 서상목 전 장관이 본 연금 파동


-정부에선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면 1702조원의 세금 폭탄이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책임 있는 당국자라면 국민연금을 놓고 ‘세금 폭탄’ 운운하는 식으로 언급해선 안 된다. 공무원연금은 적자를 적지 않은 세금으로 메우고 있으니까 세금 폭탄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다르다. 현재 적립금만 500조원이다. 향후 30년 동안은 흑자를 유지할 수 있다. 청와대까지 나서 세금 폭탄 이야기를 하니까 젊은 사람들 사이엔 몇십 년 동안 보험료를 내고도 나중에 돈이 없어 연금을 못 받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돌고 있다. 국민연금의 신뢰도만 떨어뜨리는 거다.”

기금 고갈되면 세대 간 형평성 문제
-그래도 현재 국민연금이 너무 적다. ‘용돈 연금’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많다.
“그래서 소득대체율 50% 인상 주장은 나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를 논하려면 보험료 인상 문제가 함께 나와야 한다. 현재 9%에 묶어 놓은 보험료율(월급에서 보험료로 내는 돈의 비율)이 10%란 ‘마의 벽’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연금 인상이) 불가능하다.”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기 위해 정부·여당에선 현행 보험료를 두 배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야당에선 보험료를 1%포인트만 올려도 된다고 한다. 누구 말이 맞나.
“미안하지만 둘 다 아전인수 격 해석이다.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올린다는 건 현재 받는 연금이 4분의 1 올라가는 거다. 그렇다면 내는 보험료도 현재보다 4분의 1 더 내면 되는 거다.”

-보험료율을 9%에서 11~12% 수준으로 올리면 된다는 이야기인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소득대체율을 40%로 계속 유지하려면 보험료율이 최소 13% 이상은 돼야 한다. 적립된 기금이 완전 고갈되면 나중에 부과 방식(그해 거둔 보험료로 연금을 주는 방식)으로 가야 하는데 현재 9%의 보험료율 수준으론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금을 어느 정도 적립하면서 연금을 이끌어 가기 위한 보험료율을 13%로 본다면 그것의 4분의 1(3.25%)을 올린 16%대 이상은 돼야 소득대체율 50% 인상이 가능하다.”

-굳이 기금을 적립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까지 적립된 기금을 2060년까지 모두 써 버린다면 보험료를 한 푼도 올리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건 무책임한 거다. 기금이 모두 고갈돼 버린 뒤 현재의 연금 수준을 유지하려면 보험료를 소득의 30% 가까이 내야 한다. 세대 간 형평 문제가 생긴다. 앞선 세대는 수지 맞고 이후 세대부턴 날벼락을 맞는 거다. 이렇게 되면 문형표 복지부 장관의 표현처럼 ‘도적질’이란 말이 가능해진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올리면 부담 때문에 연금을 아예 기피할 수도 있지 않나.
“앞으로 30년간 국민연금이 흑자이기 때문에 당장 보험료를 크게 올릴 필요는 없다. 보험료 인상 일정을 확정해 법제화하면 된다. 단계적으로 1년에 0.3%포인트씩 30년에 걸쳐 조금씩 올리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기금이 어느 정도 쌓여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개혁을 주도해야 할 정부가 세금 부담만 앞세워 공포 마케팅을 한다는 지적도 있다.
“야당 쪽에서 갑자기 소득대체율 50% 인상 주장이 튀어나올지 예상하지 못한 거다. 이걸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으려다 보니까 숫자를 넣어 공포 마케팅을 한 것이다. 표현을 자제했어야 했다.”

-노인 빈곤 문제가 심각하다. 이대로라면 연금 선진국에 진입하는 게 아니라 노인 대량 빈국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나 역시 재정 안정을 중요시하는 사람들로부터 국민연금을 너무 후하게, 저(低)부담 고(高)혜택으로 설계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국민연금 도입 당시) 돈 내고 30년 후에야 연금을 받는데 그렇게라도 안 했으면 어느 누가 찬성했겠나. 재정건전성만 걱정한다면 복지정책을 펼 이유가 없다. 어느 정도의 노후대책을 위해 국가가 강제적으로 공적 연금제도를 실시하는 것 아니냐.”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공적 연금의 성격상 재정 부담은 불가피 하지 않나.
“국민연금은 모든 가입자가 내는 돈으로 운영된다. 모든 국민이 연금 대상이 되면 보험료가 일종의 세금인 셈이다. 보험료를 더 받는 건 그만큼 국민이 더 부담하는 거다. 국민연금에다 세금을 투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보험료율이 올라가야 한다.”

KDI의 국민연금제도 보고서(1986).
현재론 실질 소득대체율 23% 불과
-88년 국민연금 도입 최초 방안은 어떻게 만들었나.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나라 망하게 하는 일’이라며 반대했다. 하지만 김만제 부총리 등이 KDI에서 만든 보고서(오른쪽 작은 사진)를 바탕으로 노령화 사회에 대비하려면 국민연금이 필요하다고 꾸준히 설득한 끝에 도입을 결정했다. 초안에는 소득대체율을 70%로 유지하고 보험료율을 3%에서 시작해 5년마다 3%포인트씩 올려 15%까지 올리는 것으로 설계됐다.”

-그런데 보험료율이 9%에서 멈췄다.
“당시 관련 법에다 15%까지 올라가게 일정을 박았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쉽다. 정치권에서 일단 9%까지만 올려 보고 나중에 사정을 봐서 인상 폭을 다시 결정하자고 한 것이다. 그런데 10년이 지나고 나니 더 올리려고 해도 안 되더라. 결국 보험료율 인상이 9%에서 중단되자 개혁의 방향이 소득대체율을 70%에서 점점 낮추는 쪽으로 바뀌었다.”

-평균 소득의 70% 만큼 연금을 주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그때까지만 해도 선진국의 연금 위기가 심각하지 않을 때여서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결국 보험료 인상의 문제다.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공무원연금은 보험료율이 14%다. 왜 국민연금은 9%여야 하나. 모든 선진국의 보험료율도 15~20%다. 정치인과 정부 관계자들이 국민 앞에 나서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고 설득해야 한다. 현행 소득대체율이 40%이지만 이는 40년 근속 기준이다. 평균 25년 정도 재직할 경우 실질 소득대체율은 23% 정도에 그친다. 누구나 다 이 수준으론 노후대책이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연금정치 시대는 불가피한 현상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연금정치 시대가 열렸다. 일각에선 정치권의 이해에 따라 연금 개혁이 오락가락한다는 지적이 있다.
“선진국 복지의 핵심은 공적 연금이다. (연금정치 시대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사회가 점차 고령화되고 그만큼 선거에서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많은 선진국은 연금 개혁을 해 나간다. 연금 개혁을 못하면 우리 정치권이 무능한 거다.”

-난항에 부딪친 연금 개혁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간단하다. 지금 합의한 대로 공적 연금 개선과 노후 빈곤 해소를 위한 사회적 기구를 만들어서 논의하면 된다. 여기서 공적 연금과 노후 빈곤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을 검토한 뒤 방안을 만들어 국회에 내놓고, 국회에서 이 안에 대한 여론을 보고 처리하면 된다.”

-구조 개혁(장기적으로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등을 통합하는 것)을 본격적으로 해야 하는데 모수 개혁(현행 틀에서 수치만 조정하는 것)에만 치중하고 있는 것 아닌가.
“연금 개혁이 전반적인 장기 전략 없이 가고 있는 게 문제다. 이번에 사회적 기구를 만들면 그런 것부터 해야 한다. 공무원연금과 공적 연금을 하나로 통합할 것인지, 언제까지 할 것인지 등 목표를 정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이상적 방향은 공적 연금을 하나로 만들고 직종별로 퇴직연금을 따로 만드는 방식이다.”

-연금 개혁을 공약으로 내년 총선을 치르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그것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으로 가는 거다. 그럴 경우 결국 연금은 올리고 보험료는 올리지 않는 쪽으로 가게 된다. 완전히 폭탄을 다음 세대로 넘기는 거다. 이번에도 보험료를 인상하자는 이야기는 빠졌다. 그래서 정치권이 무책임하다는 거다.”

-바람직한 연금 개혁에 대해 조언한다면.
“국민연금이 국가적 의제가 된 건 긍정적이다. 하지만 정치인 몇몇이 밀실에서 논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국민연금은 전 세계 어느 연금보다 재정이 안정적이다. 연금이 깨질 염려는 없다. 자기가 낸 돈을 나중에 모두 돌려받는다. 최근 국민연금의 역사를 기록한 『실록 국민의 연금』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앞으로 ‘국민의 연금’이 돼야 한다는 뜻에서 정한 제목이다. 국민연금은 절대 골칫덩어리가 아니라 노후대책을 준비하는 보배라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서상목 스탠퍼드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원장. 13~15대 국회의원, 보건복지부 장관 역임. 현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


정리=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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