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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주차·꽁초 실종 … 담장 깜찍 그림에 골목길 깜짝 변신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조성된 ‘10m 재미로’. 노란색으로 칠한 담벼락에는 ‘망치의 외계인 삐오’ 캐릭터가 달려 있고 말풍선에는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지역 주민들의 메시지가 적혀 있다. [강영호 객원 사진작가]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이태원 경리단길, 서교동 카페거리, 연희로 11가 길. 요즘 말로 ‘핫하다’는 인기 골목상권입니다. 큰길에서 다소 벗어난 한적한 골목에 작지만 예쁜 상점들이 하나둘 생겨나면서 주택과 가게가 뒤섞인 색다른 명소가 됐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늘어난 유동인구는 주민들에게 골칫거리를 안겨줬습니다. 밤늦게까지 북적이는 골목엔 쓰레기가 부쩍 늘었고 담벼락엔 낯선 이가 피우고 내던진 담배꽁초가 쌓였기 때문입니다. 어지럽게 세워져 있는 차량 때문에 가뜩이나 좁은 골목은 한 사람이 지나가는 것도 버거워졌습니다.

 연희로에 14년째 살고 있는 김정숙(46)씨는 “조용하고 단조롭던 동네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쓰레기 투기나 불법 주차가 늘었다”며 “경고 현수막까지 붙여봤지만 효과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제선 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경고 문구나 CCTV 등 감시·제재 도구로는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며 “우범지대에 벽화를 그려 범죄 발생을 줄이는 ‘셉테드’와 같이 주변 환경을 개선하는 방법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범죄 예방 환경 설계’라고도 불리는 셉테드(CPTED·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는 미국의 도시설계학자 레이 제프리가 만든 용어입니다. 도시 환경을 개선하고 관리하는 것이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이론에 바탕을 둔 것이지요. 낡은 골목을 정비하고, 가로등을 밝히고, 벽화를 그리는 것으로도 범죄 예방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골목에서 발생하는 소소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도 규제보다는 환경 개선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입니다.

1 금연 표지판 옆에 붙어있는 ‘망치의 외계인 삐오’ 캐릭터. 말풍선 속에 금연을 당부하는 메시지를 재미있게 표현했다. 2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128-25번지 입구에 부착된 ‘10m 재미로’ 표지판.
 그래서 열일곱 번째 LOUD는 골목길 담벼락 옆에서 외쳐봤습니다. 환하고 깨끗한, 그래서 주민과 행인 모두 즐겁게 지날 수 있는 골목을 만들자는 취지입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하던 LOUD팀은 그 해법을 ‘재미로’에서 찾아봤습니다. 재미로는 서울 명동역 3번 출구부터 남산에 위치한 서울애니메이션센터까지 이어지는 450m 길이의 만화 거리 이름입니다. 만화작가 70여 명이 참여해 2013년 조성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만화 캐릭터들이 아기자기 모여 그야말로 ‘재미있는 거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광운대 공공소통연구소는 명동 재미로에 착안해 LOUD의 메시지를 담은 10m 길이의 재미로를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건물 외벽을 재미있는 만화 캐릭터로 꾸며 깨끗하고 밝은 골목으로 만들어보자는 취지입니다. 열네 번째 LOUD에서 ‘소통하는 어린이집 만들기’에 동참했던 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이번에도 함께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실제 효과가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7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128-25번지 10m 구간에 LOUD식 ‘재미로’를 조성해 봤습니다. 골목 입구에 ‘작지만 배려와 웃음이 넘치는 골목 만들기, 10m 재미로’라는 표지판을 설치하고 담벼락을 노란색으로 칠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캐릭터문화산업협회의 지원을 받아 ‘망치의 외계인 삐오’ 캐릭터로 골목 곳곳을 꾸며 봤습니다. 캐릭터의 말풍선에는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한 메시지를 담아봤습니다.

 연희로에 사시는 분들의 공통적인 바람은 거리에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골목 곳곳에 무분별하게 차를 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런 뜻을 담아 ‘흡연 흔적이 흩어져 있는 골목은 정말 싫어요’ ‘자동차가 왜 여기 서 있지?’ ‘이 아름다운 지구의 골목을 지켜주세요’ 등 만화 캐릭터와 어울리는 말투로 바꿔 달아봤습니다.

 연희로에 ‘10m 재미로’가 조성된 후 골목의 모습은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줄지어 세워져 있던 차량들이 신기하게도 사라졌습니다. 담배꽁초를 버리려던 사람들도 담벼락에 붙어 있는 ‘외계인 삐오’의 메시지를 보고는 꽁초를 그대로 손에 들고 뒤돌아섰습니다. 놀라운 효과였습니다.

 고교생 김예지(19)양은 “캐릭터가 귀여워 문구를 하나하나 다 읽어봤다”며 “거리가 예뻐서 쓰레기를 못 버릴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이도명(34)씨는 “골목이 밝은 분위기로 바뀌었다. 주차된 차량이 가게 창문을 가로막아 난감할 때가 많았는데 오늘은 차를 대는 사람이 없었다”며 신기해했습니다. 서울 종로에 살고 있는 한 시민은 “정말 예쁜 아이디어”라며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이화동 벽화마을에 재미로를 조성하고 말풍선 속 문구에 영어나 중국어를 넣어도 좋겠다”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재미로가 골목 문제의 유일하고도 확실한 해결책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주민들의 생각을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고, 그 뜻이 길을 지나는 다른 시민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면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합니다. 길을 따라 펼쳐진 소통의 공간을 통해 만화처럼 깨끗하고 밝아진 골목길을 기대해봅니다.


김경미 기자 ga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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