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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힘은 책임감서 나온다” 가르친 영혼의 스승

김교신 선생(뒷줄 오른쪽에서 넷째)은 양정고보 교사 시절, 마라토너 손기정 선생에게 민족혼을 심어 줬다. [사진 양현혜 교수]
대부분의 그리스도교 교단을 구성하는 4대 요소는 (1)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 (2)성경 (3)교회 (4)세례라고 할 수 있다. 하나만 빠져도 ‘이단’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 쉽다.

무교회주의는 교회에 대해 생각이 다르다. 또 세례를 받고 안 받고는 ‘취향’의 문제로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교회주의를 ‘감히’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왜일까. 무교회주의의 창시자인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1861~1930)와 김교신(1901~1945)의 신앙에는 감히 ‘태클’을 걸 수 없는 정통적 교의와 실천상의 숭고함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한국 무교회주의의 비조(鼻祖) 김교신 선생의 서거 70주기다. 기독교 사상가·실천가인 그는 여러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큰 스승이고 노동자들의 친구였으며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한 민족주의자였다. 2010년 그에게 건국포장이 추서됐다. 교육부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시대를 초월해 온 국민의 존경을 받는 12명의 ‘이달의 스승’을 선정했다. 다음달 7월의 스승은 김교신 선생이다.

김교신 선생은 ‘성서조선’에 연재한 일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의 복음을 고난으로써 따름이지, 교회 생활이나 살아서는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천당을 덤으로 얻으려는 값싼 기복신앙이 아니다.” 그러한 ‘조선산(朝鮮産) 기독교’를 주창한 김교신 선생이 우리 종교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이화여대 기독교학부 양현혜(53·아래 작은 사진) 교수를 인터뷰했다. 지난해 11월 창립된 김교신기념사업회(회장 이만열) 총무인 그는 『윤치호와 김교신』(1994)과 『김교신의 철학:사랑과 여흥』(2013)의 저자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김교신 선생의 무교회주의에 대한 오해는.
“무(無) 자가 굉장히 많은 오해를 낳는다. ‘교회를 배격하자는 거냐?’는 반응을 낳기도 한다. 무교회주의는 신앙생활에서 교회를 의지하지 않고 진짜 중요한 것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기독교의 본질이라고 본다. 특정 교회 소속으로 특정 의식에 참가하면서 자신이 수행해야 할 신앙 실천의 책임을 면제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기독교 신앙에서 중대한 착오다. 기독교 신앙을 증거하는 자리는 교회생활이 아니라 일상성 속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게 무교회주의다. 무교회주의는 신앙을 증거해야 할 책임은 목사도 전도사도 아니고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고 역설한다. 무교회주의는 지극히 주체적인 신앙이다.”

-교회에 대한 무교회주의의 입장은.
“교회를 다니고 싶은 사람은 열심히 다니고, 그게 싫은 사람은 교회 출석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교회 다니는 것은 ‘취미’이고 ‘이차적’ ‘부차적’인 문제다. 각자의 ‘취향’에 맡긴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교회에 안 나가는 게 정말 진정한 신자인가? 그것도 아닌 것이다. 무교회주의에서는 세례받기 싫으면 안 받아도 된다.”

-교육가 김교신에 대해 말한다면.
“15년 정도 교편을 잡았다. 계속해 우리말을 사용하시고 조선 지리를 가르쳤다. 창씨개명을 거부했고, 창씨개명 한 아이들을 계속 우리 이름으로 부르셨다. 아이들에게 ‘황국(皇國 ·こうこく)’이 나올 때마다 ‘망국(亡國·ぼうこく)’으로 읽게 가르쳤다.

김교신 선생은 진리를 추구하는 가운데 ‘나는 누구인가’를 발견하라고 학생들에게 일러 줬다. 자신을 확립하라는 것이다. 당시는 조선 사람이 열등하다는 교육을 강요받던 시대였다. 그런 암울한 시대 분위기에 갇혀 있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시간 속에서 상황·역할·지위·자리는 계속해서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참이 있다. 그게 진리다. 그 진리의 거울에 비춰 너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립하라고 교육했다.

-양현혜 교수는 ‘기독교는 잘 죽자는 종교다’고 했는데.
“저는 기독교를 그렇게 이해했다. 김교신 선생은 ‘기독교는 죽음을 이기는 종교다’고 말했다. 이 세상에는 중력의 법칙과 같은 현실이 있고, 그 속에서 우리는 죽어야 한다. 하지만 죽음을 넘어서는 또 다른 현실이 있다는 말씀이다. 김교신 선생에게 기독교 신앙은 현실에 대한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그런 신앙이다. 그것이 죽음을 이기는 종교로서 기독교가 갖고 있는 진정한 힘이다고 그는 생각했다.”

-우치무라 간조 선생과 김교신 선생은 어떻게 다른가.
“실천 면에서 나중에 달라진다. 두 분이 처한 세계사적인 상황과 위치가 달랐다. 우치무라의 일본은 후발 선진국이었고 식민지가 아니었다. 우치무라의 문제의식은 후발 선진국 일본의 도덕성 확립에 관한 것이었다. 김교신의 조선은 세계사 서열에서 최하위를 차지하는 식민지였기 때문에 정의를 외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식민지 조선인의 고난과 공감하고 일치하고 연대해 그 짐을 함께 나누지 않으면 정의는 회복될 수 없는 것이었다.”

-김교신은 우치무라를 뛰어넘었는가.
“‘우치무라보다 김교신이 더 나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일 간에는 항상 ‘네가 나으냐, 내가 나으냐’ 하는 그런 감정 싸움이 있다. 두 분은 그런 길을 원하지 않으실 것 같다. 왜냐하면 이 두 사람은 사제 간이었다.”

-요즘 김교신과 본회퍼를 비교하는 이유는.
“올해는 마침 독일 루터교회 목사·신학자로 반(反)나치운동가로 활동한 디트리히 본회퍼(1906~45)의 별세 70주기이기도 하다. 두 분 다 파시즘에 저항하다 순교한 기독교인이다. 그 시대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기존 교회의 제도, 의식 속에 숨어 시대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두 분의 사상도 아주 비슷하다. 본회퍼는 신(神) 뒤에 숨지 말고 어른으로서 세계의 요구에 대답하라고 했다. 김교신 선생이 말하는 것도 교회 뒤에 숨지 말고 일상생활 속에서 기독교인으로서 네 양심을 실천하고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여기서 일상생활이라는 것은 직업생활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역사라는 공적인 생활을 다 포괄하는 개념이다.”

-김교신은 좌파인가 우파인가.
“좌파·우파 잣대로 기독교를 본다는 것은 기독교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행위다.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역사적 현실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일상성 속에서의 실천은 인문학적인 소양이라든가 도덕성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의 일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신앙적 현실에서 나온다. 아마도 기독교가 너무나 오랫동안 교회라든가 개인의 영성 속에 숨었기 때문에 ‘기독교는 그런 거다’는 편견을 사람들에게 심어 줬다. 그런 편견을 심어 준 기독교의 잘못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김교신은 ‘정통 삼위일체파’ 기독교인가.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김교신은 지독한 정통 보수다.”

-무교회주의는 엘리트에게 맞는, 대중은 믿기 어려운 종교는 아닌가.
“무교회주의만이 아니고… 기독교는 참 쉬운 종교이긴 하지만 기독교를 제대로 믿기는 참 어렵다. 누군가에게 의탁하는 신앙이 아니라 주체적이고 성숙한 신앙이 어렵기 때문에 김교신 선생의 사상이 더욱 부각되는 것이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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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