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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문화 트렌드] 잔혹 동시가 남긴 빛과 그림자

“엄마의 심장을 먹는 그 그림, 게재하지 맙시다. 시 전문을 싣는 것도 신중히 합시다. 뉴욕타임스(NYT)에서 샤를리 에브도 만화가들이 테러에 희생된 기사를 내보냈을 때, 테러를 촉발시킨 무함마드 풍자만화를 싣지 않은 것처럼.”

내가 속한 영어신문 코리아중앙데일리에서 ‘잔혹동시’ 논란에 대한 기사를 낼 때 미국인 수석에디터가 한 말이다.

『솔로강아지』 책 ‘솜’ 부분
NYT는 샤를리 에브도의 공격적인 만평이 이슬람교도에게는 정신적 폭력일 수 있다고 판단해 싣지 않았다. 우리 신문 수석에디터도 초등학생이 쓴 문제의 시 ‘학원가기 싫은 날’ 역시 일반 독자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외국인 에디터들은 이 시가 포함된 시집 『솔로강아지』에 매력적인 시도 많다는 걸 인정했다(이 시집은 영어번역본을 함께 싣고 있다). 그리고 특히 뛰어나다고 여긴 ‘솜’‘내가 시를 잘 쓰는 이유’ 전문을 기사에 함께 실었다. ‘학원가기 싫은 날’로만 이 어린 시인을 판단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면서도 에디터들은 대체로 ‘학원가기 싫은 날’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시집에 포함된 게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의견을 보였다. ‘애들 교육에 좋지 않아서’라기보다‘아이들이 이 시에 상처를 받을 수 있어서’라는 이유였다.

실제로 이 시에 충격을 받았다는 초등학생과 중학생 증언을 여럿 들었다. 선천적으로 피 보는 걸 무서워하는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심한 거부감을 갖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들이 이 어린 시인보다 순진무구하거나 반대로 유교적 권위주의에 찌들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아이들은 폭력이 나쁘다고 배워온 데다, 실제가 아닐지라도 극단적 폭력행위에 대한 상상을 머릿속에서든 지면에서든 텍스트나 이미지로 구체화하는 걸 스스로 제어해왔기 때문에 그게 시로 나타난 모습에 불쾌감과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시는 아이들에게 일종의 정신적 폭력이다.

누군가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표현의 자유라는 빛이 가지는 그림자다. ‘학원가기 싫은 날’은 초등학생이 학원 뺑뺑이를 돌아야하는 한국사회 현실을 재고하게 하는 빛도 있지만, 1차원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증오와 폭력의 상상이 독자를 고통스럽게 한다는 그림자가 있다. 성인은 빛을 위해 그림자를 버텨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독자가 아동인 경우는 다른 문제다.

유교적 권위주의와 군사정권의 검열에 오래 억눌려온 한국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진보의 지고지순한 가치로 여겨진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 논의가 일찍 발달한 서구에서는 오히려 그 자유가 초래할 수 있는 폭력이 화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는 차별받는 소수자나 타문화권에 대한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느냐는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동물 사체를 작품에 활용하는 미술가들은 보수적 컬렉터보다 진보적 동물보호 운동가들의 비난을 받는다. 그리고 미성년자가 관련된 사안은 특히 민감하게 다뤄진다.

‘잔혹 동시’ 논란은 ‘표현의 자유냐 패륜이냐’의 차원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가 폭력을 수반할 때 어디까지 노출을 허용할 것인가’의 차원에서 다뤄져볼 필요가 있다. 다른 문학과 예술도 마찬가지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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