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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기의 ‘바이오토크’] 자자손손 대물림 유전병 유전자 편집으로 뿌리 뽑는다

혈우병을 가진 러시아 황태자 알렉세이 (1913년). 부모인 황제 니콜라스 2세와 황후 알렉산드라를 중심으로 황태자 알렉세이(맨 앞)와 공주들이 포즈를 취했다. 맨 오른편은 아나스타샤 공주다.
의사가 환자에게 묻는 첫 질문은 가족력 여부다. 내 친척 중에 같은 병을 앓은 사람이 있는 지를 확인한다. 대물림되는 병은 혈우병 같은 희귀 유전병만이 아니다. 암·당뇨·고지혈증, 심지어 파킨슨병도 가족력이 있다. 즉 대물림될 수 있다. 가족력의 원인은 유전자 고장이다. 이제 1000달러면 내 유전자 정보를 알 수 있게 된다. 내 가족이 암에 걸릴 비정상 유전자를 가졌다면 난 무엇을 해야 하나. 안젤리나 졸리처럼 암을 피하려고 미리 유방·난소를 절제해야 하나. 아예 비정상 유전자를 정상으로 바꿀 수는 없는가. 최근 ‘초정밀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유전자를 고치는 유전자 치료 (Gene Therapy) 기술이 개발됐다. 대물림 병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 전망이다. 유전자 치료 시장은 연간 65%씩 급성장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일까 아니면 인간 개조의 판도라 상자를 여는 늑대일까.

이집트 소년 왕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 쾰러 유전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 고고학박물관)
투탕카멘도 유전병의 희생양
이집트 카이로 고고학박물관의 중앙 계단을 올라가 왼쪽으로 꺾으면 보안대를 통과해야 하는 또 다른 방이 있다. 그 정면에 눈부시게 화려한 황금마스크가 있다. 3000년 전 19세로 짧은 생애를 마친 이집트 소년 왕 투탕카멘은 미라로 만들어졌고 온몸이 황금으로 덮였다. 미라의 CT검사 결과 그의 사망원인이 밝혀졌다. 발목이 괴사하는 유전병인 쾰러(Khler)병이 그를 일찍 사망케 했다. 또 미라의 DNA 검사로 그의 부모가 남매지간임이 확인됐다. 왕족의 씨를 보전하려는 근친결혼은 오히려 씨를 말렸다.

대영제국 빅토리아 여왕의 혈우병 유전자도 손녀인 알렉산드라 공주에게 대물림됐다. 공주가 러시아의 니콜라스 2세와 결혼하면서 혈우병 유전자는 아들인 알렉세이 황태자에게 전달됐다. 혈우병은 피가 났을 때 지혈이 잘 안 되는 병으로 작은 상처도 치명적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픈 어머니 알렉산드라 황후는 라스푸틴이란 주술사를 데려온다. 우연의 일치인지 그가 다녀간 후 알렉세이의 혈우병이 호전됐다. 현란한 말로 심리 치료를 했다거나 신통력만으로 치료하려고 아스피린 복용을 중단한 것이 피를 묽게 하는 아스피린의 부작용을 없앴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결국 러시아 제정은 무너졌고 혈우병의 황태자도 가족과 함께 혁명군에 처형당했다. 라스푸틴을 황실에 불러온 황후를 탓하는 역사가도 있다. 하지만 혈우병으로 죽어가는 아들을 치료하겠다던 어머니를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운의 황태자가 지금 다시 태어난다면 주술사를 부르지 않고도 유전자 치료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만약 내 가족이 황태자 알렉세이 같은 혈우병이나 안젤리나 졸리 같은 유방암 유전자를 물려 받았다면 무슨 방법이 있을까.

비정상 유전자의 정상화로 근본 치료
씨도둑은 못한다. 아버지와 아들 사진을 보면 ‘국화빵’이다. 외모만 같으면 다행이다. 부모가 앓고 있던 병이 대물림되면 이런 자식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산산조각이 난다. 하지만 대물림되는 유전병은 주로 희귀병이 많다. 밝혀진 766가지 유전병은 고장난 유전자가 정자·난자를 통해 자식에게 전달돼 생긴다. 혈우병처럼 하나의 유전자가 고장난 경우는 원인·진단·대물림이 확실하다. 그러나 암·당뇨·파킨슨병은 여러 개의 유전자 고장과 환경 영향으로 생긴다. 따라서 정확하게 왜, 어떻게 그 병이 생기는지 알기 어렵다.

안젤리나 졸리의 유방암 걱정은 유방암 환자의 10%에 해당하는 BRCA1 유전자 이상 탓이다. BRCA1 유전자에 의한 유방암의 경우 확실히 대물림되는 유전병이라기보다는 그럴 가능성이 높은, 소위 가족력이 있는 병이다. BRCA1 유전자 하나에 이상이 있다고 해서 모두 유방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다른 원인, 예를 들면 다른 유전자와 식생활 습관, 주위 환경이 유방암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 부모 유전자에 이상이 있으면 정도 차이가 있지만 자식 대에 병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혈우병을 치료할 방법은 어떤 것일까. 혈우병은 출혈시 혈액을 응고시키는 응고 보조단백질(Factor VIII)이 비정상이다. 비정상은 아주 사소한 데서 출발한다. 즉 전체 7000개 DNA 염기 중에서 2166번째 염기가 사이토신(C) 대신 구아닌(G)이다. 그 결과 응고단백질 생산이 중간에 멈춰 정상응고 단백질이 안 생긴다. 따라서 치료법은 두 가지, 즉 응고단백질 주사를 계속 맞거나 내부의 비정상 유전자를 고치는 것이다. 전자는 임시방편, 후자는 근본 치료다. 현재 혈우병 환자는 주기적으로 응고단백질 주사를 맞는다. 하지만 계속되는 주사로 혈관 찾기가 어렵고 또 연간 1000만원의 주사 비용도 만만치 않다. 최상의 치료는 결국 유전자를 정상으로 만드는 유전자 치료다.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난 데이비드 비터는 ‘버블보이 (Bubble Boy)’라고 불렸다. 그는 버블, 즉 비누 방울 모양의 병원 비닐보호막 속에서만 몇 년을 살아야 했다. 그는 ‘감마C’라는 하나의 유전자 고장으로 면역이 없어 공기 중 바이러스에 노출되기만 해도 생명이 위험했다. ‘버블보이병’처럼 하나의 유전자 이상으로 생긴 병은 당뇨처럼 여러 유전자 이상으로 생기는 병보다 치료가 상대적으로 쉽다.

인간 배아 줄기세포. 유전자를 편집하면 유전병 대물림도 없어지지만 영향이 자자손손 전해질 수 있다.
바이러스 파괴하는 세균 효소에서 힌트
유전자 치료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는 비정상은 놔두고 정상 유전자를 추가로 넣는 방법, 둘째는 비정상을 잘라내고 정상을 넣는 경우다. 둘째가 완벽하지만 더 어렵다. 지난 15년간 유전자 치료는 첫째 방법, 즉 정상 유전자를 바이러스에 실어 들여보내는 연구에 매달렸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즉 죽인 바이러스를 이용해 세포 핵 속으로 유전자를 넣었다. 하지만 죽인 바이러스가 종종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운반된 유전자가 목표장소인 사람의 염색체에 삽입되지 않거나 혹은 엉뚱한 곳에 끼어 들어가 암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즉 제대로 전달도 안 되고 삽입도 안 돼 고전을 했다. 하지만 과학은 드디어 해답을 찾았다. 바로 초정밀 유전자 가위다.

미국 버클리 대학의 제니퍼 도두나 교수는 박테리아(세균)가 바이러스와 싸우는 장면을 보다가 무릎을 탁 쳤다. 침투한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박테리아가 ‘싹둑’ 잘라버리는 것이다. 그녀는 이 ‘싹둑 기술’을 발전시켰다. 즉 실험자가 원하는 유전자 부위에 달라붙도록 가위를 디자인하면 효소(cas9)가 그곳에 정확히 달라붙어서 싹둑 잘라내고 동시에 그곳에 원하는 유전자를 붙이는 ‘유전자 가위 (CRISPR/cas9)’ 기술을 완성했다. 외부에서 편집된 정상 유전자를 넣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편집기능을 이용해서 비정상을 고치는 것이다. 이 가위 기술로 유전자 치료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 가위 기술에 줄기세포기술을 더하면 금상첨화다.

지난 3월 저명 학술지 ‘네이처 제네틱스’는 급성림프성 백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즉 이 백혈병이 대물림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백혈병은 국내 소아암 중 가장 많은 암이며 주로 2~5세 소아에게 생긴다. 현재는 백혈병을 치료하려면 매번 뼈에 바늘을 꼽아 골수를 뽑는 힘든 시술을 해야 한다. 하지만 본인 줄기세포를 이용한 유전자 치료 기술은 한 번이면 된다. 즉 본인의 줄기세포에서 고장난 유전자 부분을 유전자 가위로 고치고 다시 골수에 넣으면 끝이다. 세포 내의 유전자를 마음대로 ‘편집’하는 이러한 유전자 치료 기술이 유전자 이상을 치료하는 ‘그린 라이트’일까. 아니면 인간개조의 금지된 선을 넘는 ‘레드 라이트’일까.

유전자 치료기술은 양날의 칼
지난 3월 저명 학술지인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보기 드물게 같은 글이 동시에 실렸다. 인간배아 편집 실험을 즉시 중단하라는 ‘경고’였다. 중국 광저우의 한 과학자가 인간배아, 즉 수정란 유전자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서 편집했다. 이는 원하는 태아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사건은 과학계의 배아 편집 논쟁에 불을 붙였다. “학문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와 “선을 넘었다”라는 의견이 팽팽하다. 정자·난자의 유전자를 편집하면 후손의 유전자가 바뀐다. 대물림 병을 막을 수도 있지만 잘못되면 그 영향이 자자손손 전달된다. 이런 위험성으로 현재 유전자 치료는 정자·난자가 아닌 피부·근육 같은 일반 체세포에 제한한다. 따라서 환자 본인만 치료되고 자손은 치료되지 않는다.

이 배아 편집 문제는 과학자들의 문제만이 아니다. 태어날 아기의 건강을 염려하는 산모에게도 유전자 검사와 치료는 중요한 관심사다. 국내 산모 평균 나이가 32세이다. 늦은 출산으로 생길 수 있는 태아의 유전자 이상 여부를 검사해야 한다. 검사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직접 태아에게 주사침을 꽂지 않아도 산모 혈액에 섞여있는 태아세포의 유전자를 검사할 수 있다. 하지만 유전자 이상 이외에도 외모·지능·신체 능력도 알고자 하면 알 수 있다. 태아검사로 좋은 태아를 고르려는 유혹이 당연히 생길 수 있다. 현재 법규는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노산·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만 태아 유전자 검사를, 그것도 유전병으로만 제한하고 있다. 태아 선별은 물론 금지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규제 때문에 거꾸로 관련 산업발전의 발목을 잡아서는 곤란하다. 현재의 국내법은 글로벌 시장은커녕 국내 시장에서 유전자 치료제의 임상 허가도 힘들게 하고 있다. 현실 감각을 갖춘 균형이 필요하다.

미국 수필가 랠프 에머슨(1802~1883)은 병의 대물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은 그 조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아버지 또는 어머니에게서 흘러든 검은 방울을 어떻게 하면 그 혈관으로부터 빼낼 수 있을까. 흔히들 보면 조상의 모든 성격이 마치 몇 개의 단지에 나뉘듯 집 안에 갈라지는 것 같다”. 이제 부모의 ‘검은 방울’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과학은 찾았다. 어느 선까지 대물림의 ‘검은 방울’을 빼고, 인간 본연의 질서를 지키는가는 이제 우리의 몫이다.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인하대 바이오융합연구소(www.biocnc.com)와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바이오테크놀로지(BT)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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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