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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박사와 함께하는 ‘어린이 프로파일러 설록의 사건 일지’ <14> 모리아티 게임

[일러스트=오은우]

진혁·대홍과 판타지랜드 매표소로 뛰어가면서 방구름 연구원과 통화를 한 설록은 ‘모리아티 게임’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했다. 하지만 범인이 누구며, 왜 홍주를 납치했고, 표 박사가 1995년에 만든 뒤 컴퓨터 하드디스크 한쪽에 묵혀졌던 ‘모리아티 게임’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동안 연구소에서 프로파일링에 대해 배운 바에 따르면, 범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범인의 요구대로 움직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아니, 위험하다. 범인이 정한 ‘게임의 규칙’이 아닌, 프로파일러가 정하는 ‘게임의 규칙’을 따르도록 유도해야 한다.

하지만 홍주의 생명이 걸린 위급한 상황에서 전략이나 게임의 규칙 같은 것을 따질 여유가 없다. 게다가 판타지랜드는 너무 넓었다. 거대한 도시 같은 이곳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홍주가 잡혀있는 곳을 찾을지 막막하기만 했다. 범인이 제시한 3시간은 거의 다 지나고 있었다. 그때, 제복을 입은 안내요원을 발견한 진혁이가 길을 못 찾겠다며 말을 걸었다.

“어디를 찾는데?”

“모리아티 게임을 한다는 말을 듣고 왔거든요.”

안내요원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셜록 홈즈와 관련 있다는 말에 알았다는 듯 표정이 밝아졌다.

“전용 극장, 오른쪽 길을 따라서 매직랜드 방향으로 가다 보면 ‘도전, 셜록 홈즈’라는 안내판이 보일 거야. 판타지랜드에서 셜록 홈즈 관련은 그곳밖에 없어.”

세 친구는 고맙다는 인사말과 함께 오른쪽 길로 뛰었다. 과연 극장 안에서는 ‘도전, 셜록 홈즈’ 행사의 최종전에 오른 두 사람간의 ‘모리아티 게임’ 맞대결이 벌어지고 있었다.

모리아티 게임은 기본적으로 두 사람이 각자 뽑은 ‘암호 카드’에 적힌 단어를 맞히는 게임이다. ‘스무고개’ 방식이지만 질문은 20개가 아닌 13개. 표 박사의 문서에 따르면, M의 제안으로 서구 기독교 문화권에서 ‘악마의 숫자(예수와 12인의 제자 중 예수를 배신해 밀고한 제자, 가롯 유다를 상징)’인 13개를 질문 수로 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번갈아 13번의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가운데 먼저 상대방의 ‘암호’를 맞히는 사람이 이긴다. 표 박사는 여기에 다양한 ‘카드’를 추가해 치열한 두뇌싸움을 하게 만들었다.

먼저 ‘아이린 카드’. 셜록 홈즈의 연인으로 알려진 ‘아이린 애들러’의 이름을 딴 이 카드는 2장씩 주어진다. 자신이 뽑은 ‘암호’가 너무 쉽거나 어려워 상대방이 너무 쉽게 맞히거나 자신이 답변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아이린 카드’를 사용해 다른 암호를 뽑을 수 있다.

‘모리아티 카드’는 M의 제안을 표 박사가 받아들여 추가한 규칙으로, 참가자는 13번의 문답 중 ‘반드시 한 번 거짓말’을 해야 한다. 거짓말 답변을 하지 못하면 무조건 진다. 표 박사는 여기에 참가자를 벼랑으로 몰기 위한 조건을 추가했다. ‘거짓말은 8번째 질문부터 사용할 수 있다’는 것과 ‘거짓말 답변을 하는 질문의 단계가 높을수록 많은 점수를 받는다’는 것. 즉, 8번째 질문에서 ‘모리아티 카드’를 쓰고 들키지 않을 경우 8점, 13단계의 경우 13점을 얻는다. 첫 질문에 거짓말을 해치우고 편하게 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반드시 거짓말 답변을 한다는 의사표시를 해야 한다(상대는 모르고 심판은 알 수 있도록). 지금 판타지랜드에서는 버튼을 누르면 상대방을 제외한 모든 관객이 볼 수 있도록 빨간 불이 켜지는 방식이 사용되고 있었다. 거짓말을 한다는 의사표시를 하지 않고(‘모리아티 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거짓말을 할 경우, 즉시 패배가 선언된다.

상대방의 거짓말을 포착했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셜록 카드’를 사용하면서 “당신은 모리아티야!”라고 외친다. 거짓말이었을 경우, 들킨 사람은 상대방에게 “당신은 셜록 홈즈야”라고 답을 해야 한다. 셜록 홈즈와 모리아티가 누군지 밝혀지면 게임은 끝난다. 만약 거짓말이 아닐 경우, 억울하게 모리아티로 지목된 사람은 상대를 향해 “당신은 레스트레이드(셜록 홈즈 소설에 등장하는 경찰관. 성실하나 그리 영리하지는 않다)야!”라고 외친다. 이 경우 게임은 계속된다.

앞선 7번 이상의 질문과 답변으로 좁혀지는 암호의 정체, 상대의 답변이 거짓일 가능성이 포착되었다. 하지만 함부로 “당신은 모리아티야!”라고 외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카드는 단 한 장뿐. 만약 거짓말이 아닐 경우, 이후 상대가 대놓고 거짓말을 해도 그저 당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모리아티 카드’와 ‘셜록 카드’는 참가자로 하여금 머리에 쥐가 나고 입술은 바짝바짝 마르게 한다. 질문과 답 모두 15초 이내에 해야 한다. 15초를 넘기면 ‘시한 폭탄(time bomb)’이 터지며 게임이 끝나고 승부가 결정된다.

결승전에 오른 두 사람의 대결은 팽팽했다, 적어도 7번째 질문까지는. 살아 있는 지, 움직이는 지, 눈에 보이는 지 등 범위를 좁혀 들어가는 논리적인 전략이 우위를 가리기 어려웠다. 200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숨을 죽인 채 무대를 주목하고 있었다. 8번째 질문에서 승부가 갈렸다. ‘모리아티 카드’를 쓰고 거짓 대답을 한 것을 다른 한 명이 ‘셜록 카드’를 써서 잡아낸 것이다. 객석에서는 탄성과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사회자의 질문에 우승자는 지난 7번의 답변을 모두 정리해 두고 언제든 상대의 거짓말을 알아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답했다. 빨리 ‘거짓말 부담’을 덜어버리고 싶은 게 일반적인 참가자의 심리라는 말도 덧붙였다. 사회자는 그가 지난 3번의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고 4연승에 도전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때, 사회자에게 누군가 메모를 전달했다. 메모를 읽은 사회자는 크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긴급 발표를 했다.

“지금 객석에 대단한 추리 천재가 있다는군요. 여자친구를 구하기 위해 고난 시에서 달려 온 어린이 프로파일러 셜록, 아니 설록! 어디 있나요?”

사회자의 시선을 따라 스포트라이트가 객석을 이리저리 비추며 이동했다. 설록은 망설였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이미 설록을 비추고 있었다. 옆에서 대홍이 두 손을 흔들며 설록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아, 저기 있군요. 오늘 4연승을 달성한 이지용군이 동의한다면, 어린이 프로파일러 설록군과 특별 대결을 마련하고 싶은데요. 이지용군, 도전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이지용이라고 불린 우승자는 잠시 머뭇거린 뒤 미소를 지으며 수락했다. 설록의 의사 따위는 물을 필요도 없다는 식이었다. 사실 설록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사회자는 홍주의 목숨이 걸린 상황이란 걸 아는 지 모르는 지, 가볍게 춤까지 춰가며 흥을 돋우고 있었다.

“자, 정말 흥미로운 대결이 성사되었습니다. 공식 IQ 152 천재들의 모임인 멘사 회원, 모리아티 게임 4연승을 거둔 챔피언 이지용군과 아무도 모르게 숨어있던 추리 천재, 어린이 프로파일러 설록군의 절체절명의 대결이 시작됩니다. 관객 여러분, 설록군을 큰 박수로 맞아주세요!”

설록은 무대로 걸어나갔다. 설록과 대홍·진혁, 그리고 이곳 어딘가에 감금되어 있을 홍주를 제외한 사람들에게는 그저 흥미진진한 게임일 뿐이었다. 설록이 무대 위로 올라가자 사회자에게 또 하나의 메모가 전달되었다.

“단 한 번의 승부, 승자에겐 원하는 소원 한 가지를 들어준다는 파격적인 상이 내걸린 특별한 대결이 시작됩니다. 이지용군, 준비됐습니까?”

이지용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훤칠한 키에 수려한 용모, 온갖 수학과 과학 경시대회 우승을 휩쓸며 언론에도 여러 차례 보도된 천재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설록군, 갑작스레 행운의 기회가 찾아왔는데요, 당연히 준비가 됐겠죠?”

사회자는 히죽히죽 웃으며 설록을 조롱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설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테이블 위에 카드들이 놓인 작은 박스 안,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박스 위에 설치된 스크린에는 게임에 임하는 두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정보들이 표시되었다. 두 사람이 버튼을 누를 때 선택되는 암호, 질문마다 주어진 15초의 시간을 표시하는 타이머, 각자에게 주어진 카드들과 사용된 카드, 질문과 답변 내용, 그리고 모리아티 카드가 사용될 때 빨간 신호등이 번쩍이는 화면 등이 번갈아가며 스크린에 보여지는 방식이다.


갑자기 시작된 두 사람의 모리아티 게임

게임이 시작됐다. 먼저 도전자 설록이 암호를 정하는 버튼을 눌렀다. 컴퓨터 데이터베이스에서 무작위로 추출된 암호가 스크린에 표시되었다. ‘먼지’. 설록만 볼 수 있는, 이지용의 등 뒤에 있는 스크린에도 ‘먼지’가 표시되었다. 관객들의 탄성이 터져나왔다. 사회자는 설록에게 이 암호를 받아들일 지, 아니면 ‘아이린 카드’를 써서 암호를 다시 고를 지 선택하라고 했다. 설록은 받아들이겠다고 답했다.

이번엔 이지용의 차례. 스크린에서 수많은 글자들이 마구 뒤섞이다 버튼을 누르자 모두 모이며 한 단어로 고정되었다. 객석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먼지’. 같은 단어였다. 두 사람 모두 얼굴에 의문과 혼란의 빛이 역력했다. 지용 역시 암호를 받아들이겠다고 답했다. 두 명의 천재는 15초 제한 시간을 적절히 활용하며 서서히 상대방을 조여나갔다.

“살아있는 생물입니까?”

“아닙니다.”

“가구입니까?”

“아닙니다.”

“집 안에 있나요?”

“네.”

“사람보다 큽니까?”

“아닙니다.”

“눈에 보입니까?”

이 질문에 설록이 14초를 쓴 뒤 어렵게 답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지용이 미간을 좁히며 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8번째 질문, 설록이 공격했다.

“사람의 건강에 좋습니까?”

0.1초도 지체하지 않고 지용이 “아니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설록은 바로 ‘셜록 카드’를 들고 “당신은 모리아티야!”라고 외쳤다.

실수였다. 경험 부족, 지나친 긴장, 게다가 능숙한 지용의 심리게임에 말려들었다. “누구나 거짓말에 대한 부담을 일찍 털고 싶다는 심리가 형성된다”던 지용의 말이 설록의 머릿속에 ‘각인효과’를 발생시킨 것이다. 거짓말 답변을 할 수 있는 첫 단계인 8번째 질문, 체계적인 질문으로 범위를 좁혀가는 상황에서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면 바로 잡아내야 한다는 강박의식이 긴장을 불러 일으킨 그 순간, 이지용은 지체 없이 답변했고 설록은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마치 기계의 동작버튼이 눌린 것처럼 ‘모리아티 카드’를 집어든 것이다.

지용은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당신은 레스트레이드야!”를 외쳤다. 설록은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리고 초조해졌다. 머릿속이 하얘지며 자기의 멍청한 실수 때문에 홍주가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게 됐다. 완전히 그로기 상태에 빠진 설록에게 이지용은 최후의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왓슨 카드’를 든 것이다. 사회자와 관객들은 모두 충격과 놀라움에 빠졌다. 사회자가 개입했다.

“이지용군, 아직 8번째 질문인데 과감하게 ‘왓슨 카드’를 들었습니다. 답이 뭔지 안다는 뜻인데요, 너무 성급한 것 아닌가요?”

여전히 미소를 띤 지용은 매력적인 목소리로 “사실 3번째 질문 때 답을 알았다”고 했다.

“아니, 어떻게요?”

“아마 설록군도 저와 같은 경험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면 당연히 알아냈을 텐데요, 제 암호가 공개되었을 때 관객이 보인 충격적 반응에서 일단 이상신호를 감지했고요.”

“설록군 암호에 이어서 지용군의 암호가 공개되자 관객들이 소리를 질렀죠.”

“그땐 의문만 가지고 있었지만, 3번째 질문까지 저와 설록군이 했던 질문과 답변이 서로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래서요?”

“관객들이 놀란 이유도 짐작이 갔죠.”

“그래요? 그럼 설록군의 암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당연히 ‘먼지’입니다.”


표창원 박사는… 1966년생. 범죄심리학자. 탐정 셜록 홈스에 매료돼 경찰대학에 진학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경험하고 전문적인 범죄수사를 배우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 1997년 엑서터 대학에서 범죄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 최초 범죄심리분석관으로 활동하다 2001년 경찰대 교수로 임용, 2012년까지 재직했다. 퇴직 이후 표창원의 범죄과학연구소를 열고 범죄심리학에 관한 연구를 활발히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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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