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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 책책책] 구쌤과 함께하는 ‘재미있다! 한국사’ 현장 수업 (2) 서울 암사동 유적

서울 암사동 유적 답사

서울 암사동 선사유적지 야외에 복원한 움집. 체험용 움집도 있다.
가는 길 지하철 8호선 암사역 4번 출구로 나와 걸어서 15분, 1번 출구에서 마을버스를 타면 5분 관람 소요 시간 1시간 휴관 매주 월요일, 1월 1일 홈페이지 sunsa.gangdong.go.kr 추천 코스 전시관을 본 다음 야외 움집 모형을 보고, 선사 체험 마을을 답사해 보자.

지난번에 본 경기도 연천 전곡읍이 우리나라 대표적인 구석기 유적지라면 서울 암사동은 신석기시대 대표 유적지입니다. ‘구석기’란 옛날 석기, ‘신석기’란 새로운 석기를 뜻하죠. 신석기시대가 시작되면서 인류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어요. 이를 ‘신석기 혁명’이라고 해요. 지금으로부터 약 1만 년 전 한반도에도 신석기가 등장했습니다. 새로운 석기를 만들어 쓰던 사람들이 암사동에 모여 살았죠.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요? 암사동에서 1만 년 전 신석기시대의 도구와 집터가 발굴되었기 때문이에요.


뾰족뾰족 뗀석기에서 반질반질 간석기로

서울 암사동 유적은 제1·제2전시관과 야외의 선사 체험 마을 등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구석기와 신석기가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려면 우선 전시관을 들러야겠죠.

돌도끼부터 살펴볼까요. 지난번 전곡선사박물관에서 본 주먹도끼는 돌을 떼어 낸 듯 뾰족뾰족했는데, 이건 갈아낸 듯 반질반질해요. 돌을 떼어서 만든 석기를 ‘뗀석기’라 부르듯 갈아서 만든 석기를 ‘간석기’라고 합니다. 신석기 도구는 점점 다양하고 정교해집니다. 언뜻 봐서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건 대단한 변화예요. 뗀석기에서 간석기로 바뀌는 데 무려 249만 년이 걸린 셈이니까요.

암사동에서 출토된 신석기 대표 유물 ‘빗살무늬토기’.
암사동 유적에는 전곡선사박물관에서 보지 못했던 유물이 또 있어요. 뾰족한 바닥에 마치 빗으로 죽죽 빗겨 그은 것 같은 줄무늬를 넣은 ‘빗살무늬 토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토기를 만들려면 진흙을 반죽해서 그릇 모양을 만든 다음 불에 구워야 해요. 이것 역시 대단한 일입니다. ‘진흙을 구우면 단단해진다’는 ‘과학적 사실’을 알아야 했으니까요. 토기는 사람들의 생활을 확 바꿔 놓았습니다. 토기 덕분에 먹을 수 있는 식량이 크게 늘어났거든요.

대표적인 것이 도토리입니다. 옛날부터 한반도에 흔했던 도토리는 영양이 풍부하지만, 타닌이라는 성분 때문에 떫을 뿐 아니라 날것으로 먹으면 소화가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토기에 넣고 물에 우려내거나 삶아서 타닌을 빼내면 훌륭한 음식이 되었죠. 다른 음식물들도 삶거나 찌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살균이 되고 부드러워져 소화가 더 잘되었고요. 먹을 수 있는 식량이 늘어나니 자연스레 영양 상태도 좋아졌지요.


신석기 혁명? 농업 혁명!

혁명이란 한마디로 엄청나게 빠르고 거대한 변화를 말합니다. 이전의 관습·제도·방식 등이 단번에 무너지고 온 세상이 달라질 정도로 근본적인 변화 말입니다. ‘신석기 혁명’이라고 하면 마치 신석기(간석기)를 만든 것 자체가 혁명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농업 혁명’이 본질이에요.

신석기시대에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람들의 생활은 그야말로 혁명적으로 변화했어요. 식량이 늘어났고, 더불어 인구도 늘어났죠. 더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식량을 찾아 돌아다니지 않고 한곳에 머물러 살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씨를 뿌리면 거두어들일 때까지 기다려야 했으니까요.

정착 생활을 하려면 집이 필요했어요.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주로 동굴에서 살았던 것은 집 짓는 기술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곧 옮겨야 하니까 굳이 애를 써서 집을 지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아무 데나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아직은 기술이 부족해서 농사를 통해 얻는 식량이 많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농사짓기 편하고 물고기가 풍부한 강이나 바닷가에 먼저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살던 움집터가 많이 발견된 서울 암사동 유적 바로 옆에는 한강이 흐르고 있지요.


다 같이 돌자, 신석기 마을 한 바퀴

서울 암사동 유적에서는 관람객들이 신석기인 복장을 하고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전시관에는 신석기시대 마을을 재현한 작은 모형이 있어요. 원뿔 모양 움집 옆에서 사람들은 넓적한 돌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고 둥근 방망이 모양의 돌로 열심히 갈고 있어요. 바로 ‘갈판’과 ‘갈돌’입니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갈판 위에 도토리 같은 것을 놓고 갈돌로 갈아서 가루를 내어 먹었죠.

그 옆에는 개 한 마리가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어요. 구석기 땐 사냥만 했지만, 신석기시대가 되면서 소나 양처럼 온순하면서도 젖과 고기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가축들을 길렀죠.

전시관 바깥에는 실물 크기의 움집들이 있어요. 입구는 머리를 숙여야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데, 안은 제법 널찍해요. 땅을 1미터쯤 파고 그 위에 집을 지었기 때문에 두꺼운 벽이 없어도 바람을 피할 수 있고, 온기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죠. 움집 안에는 사람들이 나무를 쌓아 불을 피워 놓고 둘러앉아 있어요. 실제로 서울 암사동 유적에서 발견된 움집에는 가운데에 불을 피운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음식을 저장하던 구멍, 기둥을 세웠던 구멍들도 있고요. 이렇게 직접 유물을 보고 마을과 움집 안까지 구경하면 머릿속에 신석기시대가 그려질 거예요.


글=구완회 선생님


※ 초등 교과서의 핵심을 담은 『재미있다! 한국사』(창비) 시리즈의 저자 구완회 선생님이 한국사의 중요 장면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장 수업만 가려 뽑아 소년중앙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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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