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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다다오는 왜 나무를 심는가?

[레몬트리]

1 일본 효고 현 아와지 섬의 복합 문화 리조트를 건축할 때는 산의 경사면을 따라서 화단을 조성했다. 2, 3 안도가 만든 세토우치 올리브 재단은 테시마 섬에 100만 그루 올리브 나무를 심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수확한 올리브를 판매해서 지역 학생들을 돕는 기금도 마련한다.


이 타이틀은 일본에서 발행되는 잡지 『카사 브루투스』의 특별판 ‘Why does Ando plant trees?’에서 가지고 왔다. 올해 초, 일본 출장 후 공항으로 가기 전 나고야 역에서 어중간하게 서점을 찾았던 때다. 건축 코너에 새로운 게 눈에 뜨이지 않고 여기서도 안도 다다오, 렌조 피아노, 프랭크 게리, 토요 이토 등 낯익어 별로 손이 가지 않는 이름만 보였다.

덴마크 젊은 무명 건축가의 책을 사면 샀지, 안도 선생의 건축 화보는 서울에도, 밀라노 아르마니 카페에도, 스위스 찻길 끝나는 동네 발스 카페에도 놓여 있으니. 그때 발견한 『카사 브루투스』 표지에 ‘안도 다다오의 최신 그리고 베스트 건축 가이드’. 최신 그리고 베스트니 훑어는 보자.

브루투스 안도 특별판을 넘기던 나는, 그냥 하느님. 나는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안도 다다오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여러 저작을 어지간히 봐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세상에 이렇게 흥미로운 건축을 스리랑카에서, 카리브해에서, 그리고 아일랜드에서 언제 다 진행했을까. 그리고 뒤편 영어 발췌분에는 ‘Why does Ando plant trees?’. 이 아티클 제목을 보고 그냥 계산대로 들고 갔다.

그리고 이 글을 쓴다. 안도 다다오와 첫 미팅을 가진 지난해 초, 그의 사무실 1층 문으로 들어갔더니 바로 안도가 앉아 있었다. 전화를 받고 있었던지라 4층으로 손님을 모시라고 여직원에게 머릿짓을 했다. 자리에 앉고, 주변이 채 내 눈에 들어오기도 전에 안도 선생이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그런데 누가 일본인들을 겉으로 표현하는 것(建前, 다테마에)과 속내(本音, 혼네)가 다르니 주의를 기울여 들으라고 했나?

이 미팅은 작년 5월 제주 평화 포럼에 안도 선생을 초청하려고 제주 총영사인 스즈키 미쓰오가 주선한 자리였다. 일본 외무성의 고위 공직자가 임지 제주도에서 민간인 안도를 모시기 위해 오사카까지 찾아온 자리니, 나 같으면 ‘생각해보겠습니다’, ‘시간이 될지 모르겠네요’ 이렇게 대답했을 것 같다.

그때 안도는 요청에 대해 “시간이 없어 갈 수 없다” 단번에 거절하더라. 분위기가 썰렁한 것 같아, 가지고 있던 내촌목공소 카탈로그를 안도 선생 앞으로 밀어놓았다. “이 사람 누구야?” 스즈키 총영사가 자세히 설명했다. 얼른 못 알아들었는지, 내가 목수 이정섭인 줄로 알았던 듯싶다.

여하튼 목수 이정섭의 가구 카탈로그를 본 안도 선생은 “요즘 한국 젊은이들은 뭐든 다 잘한다, 건축도 잘하더라”고 답했다. 안도 선생이 “잠깐만”이라며 뛰어 나가버릴 때까지 그날 테이블 위의 대화 주제는 한일 문화 교류가 아니라 한국 목수의 작업으로 바뀌어 있었다.

오사카를 다녀오고 한 2주가 지났을까, 안도 다다오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실례합니다마는, 혹시 안도 다다오 프로젝트에 내촌목공소에서 가구를 제작해줄 수 있을까요?” 그리고 또 두어 달 후 안도 선생이 직접 드로잉한 가구 도면을 받았다.

오사카 공업 고등학교가 최종 학력인 이 건축가는 다음의 말을 덧붙였다. “일본 속담에, 떡 맛은 떡 만드는 사람이 제일 잘 안다. 내 가구 도면 디테일은 제작하는 내촌목공소의 이정섭 제안으로 해도 된다.”

1 높이 11m의 공간에 2만여 권의 책이 채워진 시바료타로 기념관. 안도 다다오의 대표작 중 하나다. 2 그룹 U2의 가수 보노와 함께 해변에 나무를 심는 모습. 3 헤이세이 시대 골목에 벚꽃 나무를 심자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4 1988년 안도 다다오는 오사카에 떠 있는 작은 섬이었던 나카노시마에 공원을 만들고 나무를 심으며, 이곳을 확 바꿔놓았다.


오사카에서의 미팅 후 회의실 방에 뛰어 들어오고, 뛰어 나가는 안도 선생을 보고 ‘안도는 뛴다’는 제목으로 글 하나를 써볼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올해 2월 『카사 브루투스』 잡지의 안도 다다오 특집을 보기 전까지 말이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오래 전부터 ‘동경 재생 위원회’의 고문을 맡고 있는데, 도시 재편 프로그램 중에 동경 만에서 불어오는 바람 길을 따라 녹지를 조성한다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화려한 동경, 정돈된 동경만 있겠는가. 초거대 도시의 이면에는 엄청난 쓰레기 더미, 산업 폐기물이 동경 만 매립지에 버려져 있었다. 이 매립지에 나무를 심자는 캠페인을 주도한 사람이 그였다는 것. 그것이 그 유명한 ‘바다의 숲’이 됐다.

지금은 동경이 아니라 세계의 숲이 되었는데 안도는 여전히 만나는 사람마다 1천 엔 기부를 강요(!)하며 후원자 50만 명 만들기 캠페인을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 유명 그룹 U2의 가수인 보노, 프랑스 대통령 시라크,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케냐의 왕가리 마타이까지 동참했으니, 이것이 오사카 출신 건축가의 힘이다.

2007년 ‘바다의 숲’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한참 전, 그러니까 1995년에는 고베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주거지를 재건축하기도 했다. 당시 하얀 목련을 비롯해 묘목 30만 그루를 심었는데, 하얀 목련은 망자를 위로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고베의 폐광 산지에서 진행된 프로젝트에서는 먼저 50만 그루의 나무를 심고서 건축을 시작했다. 덧붙여 안도 선생이 만든 ‘세토우치 올리브 재단’은, 산업 폐기물로 가득 찬 테시마 섬에 100만 그루 나무를 심어 자연을 살리자는 실천을 진행했다. 나오시마 미술관 프로젝트에 다녀온 세계의 여러분, 그 앞 올리브 나무 풍경이 다 안도 다다오의 작품입니다. “왜 건축가가 이렇게 나무 심기에 전력을 기울이나?” 안도에게 물었다.

“우리는 지금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또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뉴스를 들으며 살고 있다. 지역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고, 나라가 분열되고 있다. 나는 이 재앙들이 우리 사회에서 아름다운 풍경이 사라지는 것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믿는다. 마음에 아름다운 풍경 하나를 간직한 사람을 찾기 힘들다. 그래서 건축과 특정 장소에는 특히 나무가 필요하다. 나무는 풍경을 만든다. 나는 이 풍경을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도는 나무 심기 운동을 주도하며 늘 묘목을 심는다고 한다. 어린아이 키우듯 나무를 돌보자, 한 그루 묘목이 숲이 될 20년, 30년의 유지 관리비를 시민 각자가 맡아보자는 거다. 이렇듯 시민의 참여에 주목하는 건 나무 심기를 통해 인간의 ‘선한 관계’를 회복해보자는 선생의 외침이다.

언젠가 목수 이정섭 군에게 ‘20세기 그리고 지금까지 딱 한 개 건축을 꼽는다면?’ 하고 질문을 던진 바 있다. 늘 표현이 어눌한 목수가 단박에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라 답했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나, 루이스 칸, 혹은 피터 줌터도 있지 않느냐?” 마산 출신 목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르 코르뷔지에는 예수님이고, 루이스 칸과 줌터는 시인이지예. 안도는 건축가 아임니꺼.”

안도가 설계한 빛의 교회는 어지간히 가난한 교회라고 한다. 몇 년 전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읽었는데, 지난 미팅 때 안도가 붉은 펜으로 빛의 교회를 그리고 서명을 해서 선물한 같은 책을 이번 기회에 읽었다.

안도 본인의 건축 역정, 젊은 날, 가난한 시절, 가난한 건축 ‘빛의 교회’를 의뢰받아 고민했던 때를 회상하며 책은 끝이 났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을 것이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요.” 예수의 산상 설교다. 오사카의 가난한 이들이 빛의 교회를 만들었다.

그들이야말로 예수가 보증한 천국을 소유한 것이리라. 지금 안도는 100만 그루 묘목으로 또 천국을 짓고 있다. 그가 예의 그 큰 목소리 그대로 간직하며 백수(百壽), 이백수(二百壽) 건축가로 우리 곁에 있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김민식은… 이정섭 목수가 만드는 가구 브랜드 내촌목공소의 고문이자 목재 상담역. 홍천 내촌목공소에 머물며 방문자들에게 나무 이야기를 들려준다. 30년 넘게 목재 산업 분야에서 일했으며, 유수의 독일 목재 회사 자소(Jaso)의 고문으로 일할 때는 세계 최초로 ‘엔지니어드 자작마루판’을 설계했다.


기획 레몬트리 홍주희, 사진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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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