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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버리고 제조업… GE 샐러리맨 사장의 혁신

[이코노미스트] 금융→제조로 전략 급선회 발표 ... 샐러리맨의 꿈 이룬 살아있는 롤모델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

제프리 이멜트(59) 제너럴 일렉트릭(GE) 회장은 올해 하반기에 CEO 취임 15주년을 맞는다. 내년에는 이사회 의장 취임 15주년이다. GE는 한마디로 공룡기업이다.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한다. 뉴욕증시에 공시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매출 1485억8900만 달러, 순이익 152억3300만 달러를 각각 올렸다. 시가총액이 2713억2100만 달러에 총자산이 6483억4900만 달러에 이른다. 이토록 거대한 GE의 조타수를 15년간 맡았다는 것 자체가 이멜트 회장의 무게를 보여준다.

이 ‘고난의 15년’을 거치면서 이멜트 회장은 한 마디로 ‘산전수전의 경영인’으로 통한다. 전임인 잭 웰치 회장으로부터 낙점이 되는 과정도 혹독했지만 회장 취임 이후 닥친 경영 환경은 이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급박했다. 그런 위기를 무사히 넘긴 그는 재임 중 회사의 주식 가치를 무려 60배 이상 올려놓으며 ‘경영의 신’으로 불린 웰치 회장을 뛰어넘으려는 새로운 감각의 경영인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전임 잭 웰치의 경영 성과 뛰어 넘어

2001년 4월 25일 GE의 잭 웰치 회장(왼쪽)과 차기 회장으로 내정된 제프리 이멜트가 주주총회를 마치고 나오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멜트가 2001년 이사회 의장에 취임할 당시만 해도 GE는 생산성과 효율을 중시하는 전통이 굳어진 기업이었다. 사업과 인력의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내실을 기하자는 것이었다. 전임 잭 웰치 회장 시대에서 비롯한 그 유명한 6시그마를 앞세워 제품과 서비스 품질을 높이고 원가혁신을 이루며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걸 기업의 모토로 삼고 있었다. 체계적인 관리와 철저한 실행을 중시하는 조직문화 속에 재무가 모든 부서의 핵심이었다. ‘관리의 GE’였던 것이다. 웰치는 수익과 성장을 비롯한 가시적인 성과를 중시했다. 1, 2등이 아니면 해당 분야에서 손을 뗐다. 대신 유망한 기업을 사들여 해당 분야 최고로 키우는 경영 전법을 구사했다. 신기술 개발보다 입증된 기술과 시장을 보유한 기업을 아예 사들이는 데 치중했다. 이에 따라 한 해 100건이 넘는 인수·합병(M&A)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글로벌 영업에서는 안정적인 미주와 유럽 시장을 중시했다. 한마디로 효율을 핵심 철학으로 삼아 조금씩 전진하는 거대 공룡이었다. 수익 창출을 중시해 사업 포트폴리오도 금융·서비스가 중심이었다.

이멜트가 부임하자 전임 웰치 회장의 명성에 해나 끼치지 말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이멜트도 처음에는 그런 분위기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웰치 회장이 워낙 거물인데다 직원들이 그를 ‘경영의 신’으로 받들 만큼 GE에 남긴 업적이 엄청나고 미친 영향이 막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멜트가 부임하면서 이 모든 것이 조금씩 변했다. 물론 변화의 속도는 초기에는 더딜 수밖에 없었지만 방향은 명확했다. 경영 철학을 효율 중시에서 효과 중심으로 바꾼 것이다. 즉, 미래를 이끌어 나갈 성장엔진을 선도적으로 발굴해 신규 사업과 신흥 시장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었다. 이른바 ‘상상력 돌파(Imagination Breakthrough: IB)’라는 이름의 새로운 성장엔진 발굴 프로젝트를 자신이 직접 챙기며 드라이브를 걸어왔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사업·상품·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해 GE에 활력을 주는 수단으로 삼아왔다. 모험가형의 적극적인 경영을 추구한 것이다.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의적인 발상으로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 문화를 요구했다. 이에 따라 재무가 아닌 마케팅을 경영의 선봉장으로 내세웠다. 해외 시장 개척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인도·브라질 등 신흥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GE의 핵심인 에너지 인프라와 환경사업뿐 아니라 바이오·보안·콘텐트 등 신규 사업을 신흥시장에서 과감하게 시작했다.

이러한 이멜트의 경영 방식은 유기적인 내부 성장이 중심이었다. 성장하는 기업을 사들이는 데 의존하는 대신 내부 자원과 아이디어를 총동원해 매년 고속의 매출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상황이었다. 그가 회장에 부임한 해에 벌어진 9·11테러 때문이었다. GE의 재보험 사업은 100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테러로 항공보안이 강화되면서 전 세계 항공산업이 얼어붙어 GE의 항공기 엔진사업 부문이 휘청거렸다. 에너지 기업 엔론이 회계부정 스캔들에 휩싸여 회사가 사라지면서 엔론이 추진하던 신규 발전소의 가스터빈 발주가 취소됐다. 이전에 선호됐던 원가 절감이나 효율, 기업 M&A는 어려움을 감수하는 과감한 도전, 저돌적인 마케팅, 과감한 혁신으로 대체됐다. 기업 경영의 골수가 바뀐 셈이다. 이멜트는 신흥시장 중심의 해외 진출과 헬스케어, 금융, 보안, 운송, 에너지, 첨단소재, 엔터테인먼트 등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았다. 이익 성장보다 사업의 범위를 확대하는 가치 성장에 집중한 셈이다.

지난 10년간 GE의 사업 분야별 변화를 보면 이멜트의 비전이 보인다. 2005년에는 인프라(27.9%)가 가장 컸고 금융(26.7%), 플라스틱 등 종합산업(21.7%), 헬스케어(10.1%), 엔터테인먼트(9.8%)의 순이었다. 하지만 2015년(전망)은 금융(40%)이 가장 크고 헬스케어(30%), 인프라(20%), 종합산업과 엔터테인먼트(10%)의 순이다. 이 포트폴리오는 이제 2년 뒤 다시 극적으로 변하게 된다. 이멜트 회장이 지난 4월 11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야심찬 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 GE 전체 순이익의 40~50%를 벌어온 금융 부문의 자산 75%를 2년 안에 모두 매각하기로 했다. 25%는 GE의 상품을 구매하는 고객에게 금융 서비스를 하기 위해 남겨둔다. 여기서 얻은 2000억 달러의 자금을 항공기 엔진 제작, 여객기 리스, 발전설비 제작, 의료장비 등 헬스 사업에 투입해 전통의 제조업에 주력한다는 게 이멜트의 포석이다. 이미 이멜트는 지난해 프랑스 알스톰사의 발전 장비 부문을 인수하는 등 GE의 주포를 제조업 부문으로 돌리고 있다. 이를 통해 금융 부문을 상당수 매각한 2년 뒤에는 제조업 부문이 GE 전체 순이익의 90%를 차지하도록 포트폴리오를 바꾸기로 했다.

금융 부문 매각해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

GE의 금융 부문은 전임 웰치 회장이 확장을 주도했다. 금융은 장기 부진에 빠졌던 GE의 되살리는 활력제가 됐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동안 경영 여건이 변했다. 이멜트는 금융 부문을 매각하는 이유에 대해 “저성장과 낮은 금리, 풍부한 유동성, 투자자들의 고수익 추구”를 꼽았다. 궁극적으로는 전임 웰치 회장을 뛰어 넘으려는 이멜트의 야심과 자신감이 엿보인다.

사실 이멜트는 웰치가 낙점한 인물이다. 제프리 이멜트는 2000년 9월 불과 45세의 나이에 GE의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철저한 검증을 거친 준비된 CEO였다. 이멜트는 혹독하기 이를 데 없는 경쟁 과정을 거쳐 GE의 조타수로 낙점 받았다. ‘경영의 신’으로 불리던 웰치 전임 회장이 직접 후계자 선출 과정을 맡았다. 웰치의 후계자 선정에는 무려 6년 5개월이 걸렸다. 선정 과정은 웰치가 59세였던 1994년 6월에 시작돼 그의 은퇴로 이멜트가 이사회에서 CEO에 선임된 2000년 11월까지 계속됐다. 웰치 회장은 우선 치열한 사내 경쟁을 거쳐 부서장 자리에 오른 간부를 다시 장기간의 스파르타식 리더 교육프로그램으로 조련했다. 그런 다음 1994년 6월 후계 승계 작업을 본격화했다. 이사회 부속 ‘경영 개발 및 보상위원회’에서 후보를 뽑아 3개의 그룹으로 나눈 것이 시작이었다. 첫째 그룹은 대형 사업체 경영을 책임진 7명을, 둘째 그룹은 바로 그 다음 단계의 이사 4명으로, 셋째 그룹은 잭 웰치가 선호한 중간 간부 13명으로 이뤄졌다.

웰치는 이들을 장기간 관찰해 세 명으로 압축한 뒤 공평하게 기회를 부여했다. 1997년 3명에게 GE 3대 부문의 CEO를 나눠 맡겨 경쟁을 시킨 것이다. 제임스 멕너니 항공엔진 CEO, 제프리 이멜트 메디컬시스템 CEO, 로버트 나델리 전력시스템 CEO가 최종 후보였다. 이들은 자신이 맡은 부문과 함께 그룹 경영을 웰치와 함께 논의하며 ‘회장 수업’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이멜트는 자신이 맡은 메디컬 시스템 부문 매출을 두 배로 늘렸을 뿐 아니라 웰치의 혹독한 경영자 수업을 이겨내며 자신을 단련했다. 경쟁자였던 맥너니는 3M 회장을 거쳐 보잉사 회장이 됐으며, 나델리는 미국 최대 주택용품 전문회사인 홈데포 회장이 됐다.

이멜트는 2001년 9월 7일에 GE의 이사회 의장에 오르면서 명실상부한 GE의 최고 수장이 됐다. 회장 취임 나흘 뒤에 9·11테러가 터졌다. 9·11은 미국 전체에 재앙이었지만 GE는 특히 심한 타격을 입었다. 취임하자마자 이전에 누구도 겪지 못한 어려운 경영 환경이 펼쳐졌다. 더구나 잭 웰치 회장이 퇴진하며 엄청난 특전을 받았다며 여론도 등을 돌렸다. 몸도 풀기 전에 자신이 결정하지 못한 일로 사방에서 뭇매부터 맞았다. 9·11사태로 인한 주가 폭락, 관련 분야 침체, 엔론 파산으로 인한 경영 투명성 강화 요구 등이 줄을 이었다. 2009년에는 세계적 신용 위기로 계열 금융사들이 줄이어 손실을 입어 GE의 시장가치가 한때 2600억 달러나 공중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전체의 65%나 되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이멜트는 강인했을 뿐 아니라 현명했다. 그는 경영 투명성을 강화하면서 내부 핵심역량을 최고도로 끌어내 이를 개혁의 동력으로 삼았다. 초기의 혼란을 극복한 것은 물론 잭 웰치와 차별화에도 성공했다. 그 결과는 GE를 세계 최고 기업으로 재등극시켰다. 초기 혼란이 진정된 2004년 2월 그는 신사업 육성, 매출 증대, 신흥시장 진출 본격화라는 새 경영전략을 펼쳤다. 매년 매출을 8% 늘리고 수익을 10% 증가시키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제시했다. 중국·인도·러시아·베트남 등 신흥시장 매출 비중을 5년내 2배로 늘린다는 구상도 밝혔다. 그러면서 환경·경제·상상력을 결합한 ‘에코매지네이션(Ecomagination)’을 21세기 경영전략의 핵심으로 내놨다. 이멜트식 경영이 시동을 건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성을 쌓아온 이멜트가 이제 금융을 배제한 새로운 출발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 부문 매각해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

더욱 중요한 것은 이멜트가 GE 특유의 혁신적인 기업문화를 되살려 놨다는 점이다. GE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기업이다. 1878년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설립한 에디슨 전기조명회사가 출발이다. 1892년 에디슨 종합전기와 톰슨-휴즈 전기회사가 합병해 GE가 탄생했다. 하지만 GE는 혁신을 통해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생존해왔다. 과거를 자랑하지 않고 과감하게 미래를 위해 투자해왔다. 1970~80년대 황금알을 낳았던 가전 부문이 후발주자의 추격으로 시들해지자 스웨덴 일렉트로룩스에 가전 사업을 매각했다. 여기서 확보한 자금으로 발전·엔진·태양광·헬스케어 분야의 회사를 사들였다. 이멜트의 새로운 도전은 전통 제조업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한 주목거리다.

이멜트는 대를 이은 GE맨이다. GE의 항공 엔진 부문 간부인 조세프 이멜트와 학교 교사인 도마 이멜트 사이에서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났다. 다트머스대에서 응용 수학을 전공하고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 1982년 GE에 들어가 다양한 부문에서 경력을 쌓았다. 샐러리맨의 꿈을 이룬 살아있는 롤모델이다.

글=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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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