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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르누아르 그림 속에 있다 예술 도시 파리의 탄생

시대를 훔친 미술
이진숙 지음
민음사, 556쪽, 3만원


“밭 언저리에 핀 꽃은 이미 꽃이 아니라 색채의 반점, 아니 오히려 빨갛고 하얀 띠일 뿐입니다. 곡식밭은 엄청나게 긴 노란 띠 행렬, 클로버 밭은 길게 땋아 늘어뜨린 초록 머리칼로 보입니다. 마을도 교회의 탑도 나무들도 춤을 추면서 미친 듯이 곧장 지평선으로 녹아듭니다.”

 1837년 빅토르 위고는 한 편지에서 기차를 타고 가면서 바라본 광경을 이처럼 묘사했다. 이렇게 해서 기차 여행, 거리의 산책, 흥겨운 무도회, 강변의 뱃놀이 등이 그림의 주제가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시속 300㎞ 고속철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 글을 통해 기차가 시공간을 얼마나 단축했는지, 속도가 시선에 얼마나 충격을 주었는지 짐작한다.

 어느 하나 불행해 보이는 사람이 없는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1876), 르누아르의 이 그림을 두고 미술평론가 이진숙은 “인상주의가 탄생한 순간은 정치적 시위의 도시 파리 위에 사랑과 문화의 도시 파리가 새로 올려지는 순간이기도 했다”고 썼다. 이 사람들이 흥겨운 파티를 벌이는 이곳은 파리코뮌 시절 지도부가 있던 처절한 저항의 장소였다. 몇 년 전의 고통스러운 역사의 흔적은 그림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예술가들은 본능적으로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아차렸고, 이런 변화에 열렬하게 반응했다. 모두 시대의 기록자가 되어서 이 과정을 이미지로 남겼다. 그리고자 하는 모든 것이 그림이 되던 행복한 시대였다.”

 그림으로 보는 서양문화사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1510)으로 화려한 피렌체 르네상스를, 고야의 ‘전쟁의 참화’(1815) 연작으로 나폴레옹 전쟁과 그 참상을, 우드의 ‘아메리칸 고딕’(1930)으로 아메리칸 드림의 붕괴와 대공황을 설명한다. 예술에 남은 인간의 자취, 시대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는 왜 예술을, 역사를 공부할까.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인류의 오래된 꿈을 확인하고 그 꿈을 이어가기 위해서”라는 게 저자의 답변이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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