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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잘난 척’ ‘아는 척’ 남자들 … 왜 그러는 걸까요

멕시코 출신 화가 아나 테레사 페르난데스의 ‘급한 일’ 연작 중 ‘무제’. 미국 문화비평가 솔닛은 그림 속 여자에게서 “존재하지만 지워진 존재”를 읽는다. [그림 Ana Teresa Fernandez]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사사건건 설명하려는 태도 해부
‘맨스플레인’ 유행시킨 화제작
“여성은 오직 비논리·무지의 대상”
뿌리 깊은 차별·혐오심리 파헤쳐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창비

240쪽, 1만4000원




# “모르실 수도 있는데, 우라사와 나오키라는 만화가가 있죠. 그의 작품은 흔히 말하는 가벼운 만화들과는 달리….”



 귀를 의심했다. 남자의 ‘우라사와 나오키론’은 이후 30분 가량 계속됐다. 조금 전까지 내가 일본 만화를 매우 좋아하며, 한때 신문에 관련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심지어 재밌게 읽은 만화 중의 하나로 ‘그’ 우라사와 나오키의 『야와라』를 언급했던 걸 듣기는 한 건가. 몇 년 전 소개팅에서 기자가 직접 겪은 ‘맨스플레인 ’ 체험담이다.



 #미국 문화비평가 리베카 솔닛은 2008년 한 파티에서 만난 남자에게 자신이 사진가인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에 대한 책을 썼다고 말한다. 남자는 “최근 마이브리지에 대한 중요한 책이 나온 걸 아느냐”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남자가 설명하는 그 책은 바로 솔닛의 저서였다. 옆에 있던 친구가 “그게 바로 이 친구 책입니다”라고 연거푸 말했지만 그는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홀린듯 자기 말을 계속할 뿐이었다.



 이쯤되면 눈치챘을 것이다. 최근 온라인에서 큰 화제가 됐던 ‘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맨(Man)과 ‘설명하다’라는 뜻의 익스플레인(Explain)을 합성한 이 단어는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잘난 척 하며 설명하려 드는 행태’ 정도로 번역될 수 있겠다. 이 단어를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글이 바로 이 책의 저자 솔닛이 위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쓴 에세이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Men explain things to me)’였다. 온라인 비평사이트에 실린 이 글은 비슷한 경험을 한 여성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남성들의 온갖 비난을 받았고 ‘맨스플레인’을 2010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단어에 올리는 데 기여했다. 관련 논쟁이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이 말은 지난해 옥스퍼드 온라인 영어사전에도 실린다.



 한국어판 출간 시기도 적절했다. 최근 ‘무뇌아적 페미니스트가 IS보다 위험하다’는 한 칼럼니스트의 글과 “여자들은 멍청해서 남자한테 머리가 안돼”라는 한 개그맨의 여성비하 발언 등이 논란이 되면서 ‘맨스플레인’이란 단어가 국내에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한국 남자들 역시 “여자들 중에도 설명병에 걸린 사람은 많다”거나 “일부 인간들의 특징을 젠더 문제로 보는 것은 무리다”라고 반박했다. “여자들은 맨스플레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건 말이지…”라는 또 다른 맨스플레인이 등장하기도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저 지적 능력을 뽐내려는 남자의 ‘핵존심’에 대한 여성들의 조롱 정도로 이해될지 모른다. 하지만 저자의 문제의식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의 바탕에 있는 여성혐오의 심리적 구조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맨스플레인’은 여성을 발언하고 경청될 권리가 있는, 신뢰할만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세다. 이는 결국 젠더 문제의 핵심에 가 닿는다. 미국에서 6.2분마다 한건씩 신고된다는 강간이나 한 해에 1000건 이상 일어나는 남성에 의한 배우자, 혹은 전 배우자 살해 사건을 보자. 이런 폭력 역시 그 바탕에는 내가 상대방을 통제할 권리가 있다는 의식, 여성은 침묵과 처벌의 대상이라는 생각이 있다. 결국 일상의 대화든, 물리적 협박과 폭행이든 그 기저에 있는 의식의 패턴은 같다. 이것이 이 책에 실린 9편의 에세이에서 저자가 일관적으로 주장하는 논리다.



 저자는 호텔 여직원을 성추행한 도니미크 스트로스 칸 IMF 전 총재를 비롯해 여성혐오에서 촉발된 각종 살인사건 등을 예로 들며 이야기를 확장해나간다. 이런 젠더간의 권력 문제는 흑백갈등, 남북문제 등 양분된 세계의 여러 문제들과도 이어질 수 있다. 결국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을 ‘침묵과 무기력의 자리’에 놓아두려 하는 이들과의 싸움이며, 이는 인종차별을 비롯한 세계의 거대한 폭력구조에 균열을 일으키려는 행위다. 버지니아 울프와 수전 손택의 문학, 아나 테레사 페르난데스의 그림 등 다채로운 소재를 이용해 묵직한 주제를 발랄한 문체로 풀어나가는 저자의 내공이 보통 아니다.



 전제해야 할 것이 있다. 저자가 모든 남자들을 지적 오만에 빠진 ‘맨스플레이너’라거나 잠재적인 성범죄자나 살인자라 칭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에게 지적 대화의 즐거움을 알려준 많은 남자들의 이야기를 하며 “우리는 모두 서로 주기도 받기도 하는 그 행복한 중간지대에서 만나야 하며,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여성해방운동은 남성의 힘과 권리를 침해하거나 빼앗으려는 의도를 가진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고 거듭해서 강조한다. 하지만 귀 기울여야 할 것은 제니 추 라는 여성이 트위터에 쓴 것처럼, “모든 남자가 다 여성혐오자나 강간범은 아니지만, 모든 여자는 그런 남자를 두려워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에 즉각적인 거부감을 느꼈던 남성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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