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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잔혹 엄마’

양성희
논설위원
2013년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는 ‘부친살해’ 모티프의 영화였다. 범죄 집단에 유괴돼 5명의 범죄자 아버지 손에 길러진 소년(여진구)이 그들의 정체를 알게 된 후 처단하는 얘기다. “괴물을 보지 않으려면 괴물이 되어야 한다” “아버지가 괴물이면 너도 괴물이어야지” 같은 대표 아버지(김윤석)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말하자면 ‘괴물 아버지’가 이룩한 괴물 같은 세상에 총구를 겨눈 영화였다.



 개봉 중인 영화 ‘차이나타운’은 ‘화이’의 여성버전이라 할 만하다. 갱스터 누아르로, 조직 보스가 남자 아닌 여자(김혜수)다. 잔혹한 범죄를 일삼는 김혜수는 조직원들에게 ‘엄마’라고 불리며 유사가족과도 같은 범죄 패밀리를 이끈다. 엄마는 조직원들에게 늘 “쓸모 있음을 증명하라”고 한다. 이들에게 쓸모 없는 것, 밥값 못하는 것은 곧 용도폐기, 죽음이다.



 고아 출신에 수양딸 격인 부하(김고은)가 보스인 ‘엄마’의 뜻을 거스르고 나서면서 피비린내 나는 살육극이 시작된다. 영화의 엔딩은, 조직의 남자들이 전부 죽고 홀로 살아남은 김고은이 엄마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김혜수 역시 자기 엄마를 죽인 것으로 설정돼 있으니 대를 이은 ‘모친살해’ 모티프의 영화인 셈이다. ‘화이’의 아들이 아버지와 아버지를 사주한 권력자들을 죽이고 어디론가 떠났다면, ‘차이나타운’의 딸은 어머니의 자리를 물려받는 것으로 끝난다.



 사실 ‘차이나타운’의 엄마는 그간 충무로에 없던 엄마다. 희생하는 전통적인 엄마가 아닐 뿐 아니라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서처럼 오직 자식을 살리기 위해 끔찍한 악행을 저지르는 엄마도 아니다. 여기서 엄마는 껍데기만 여자일 뿐 기존의 아버지로 상징돼온, 괴물 같은 기성 시스템의 수호자와 동의어다. 최유준 전남대 HK교수의 말을 빌리면 이제 “부친 살해는 모친 살해로, 우리 사회의 오이디푸스는 성전환”한 셈이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최근 논란이 된 ‘잔혹동시’가 다시 떠올랐다. 10살 소녀가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엄마를 씹어 먹어”라고 써서 세상을 발칵 뒤집었다. 학원으로 등 떠밀며 공부를 강요하는 가혹한 엄마들에 대한 적개심, 아니 무의식적 살의가 담긴 섬찟한 시적 표현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엄마와 잔혹이 이처럼 쌍으로 잘 묶이는 단어가 된 것일까. 참된 모성이란 괴물 같은 시스템에서 낙오하는 자들을 끌어안는 것 아니었나. ‘차이나타운’에서 그리고 ‘잔혹동시’에서 어머니란 이름의 또 다른 괴물을 본다. ‘잔혹한 동심’보다 ‘잔혹한 엄마’가 더 문제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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