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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1인자에게 듣는다 <1> 시니어 바둑 첫 통합 챔피언 조훈현

입단 이후 현재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내고 있는 조훈현 9단. 그는 “최강자는 벽을 뛰어넘는 정신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국 바둑 역사에는 독보적인 천재 기사들이 있다. ‘한국 바둑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남철(1923~2006)은 해방 직후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약 20년간 1인자의 자리를 지켰다. 그의 자리는 김인(72)이 물려받았고, 약 10년 뒤 조훈현(62)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약 20년 뒤인 1990년대에는 조훈현의 제자 이창호(40)가 1인자의 계보를 이었고, 2000년대는 이세돌(32)의 시대였다. 지금은 박정환(22), 김지석(26) 등이 그 계보를 잇고 있다. 한국 바둑사를 이끈 1인자들의 이야기를 릴레이로 들어본다. 첫 순서는 조훈현 9단이다.

바둑이 유리할 때 가장 경계한다 … 마음이 흔들리니까
나는 바둑을 도(道)로 배웠는데 …?
요즘은 기술부터 주입하니 문제
89년 응씨배 우승이 가장 기억 남아





‘바둑 황제’. 그를 설명할 다른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가 걸어온 발자취는 모두 한국 바둑사의 깨지기 힘든 기록으로 남아 있다. 여전히 현역이기도 한 조훈현 9단 이야기다.



 1970~80년대를 통틀어 20여 년간 그는 거의 모든 기전(棋戰)을 독식했다. 서봉수 9단이 끈질기게 왕좌를 넘봤지만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제자 이창호 9단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전까지 그는 독보적인 1인자였다.



 어느덧 환갑이 넘은 나이, 바둑 황제의 전설은 유효하다. 조 9단은 8일 서울 마장동 한국기원에서 열린 ‘2014∼2015 시니어 바둑 클래식 왕중왕전’ 결승에서 서봉수 9단을 208수 만에 백 불계로 꺾고 ‘시니어 바둑 클래식’의 첫 통합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조 9단을 만나 한국 바둑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들어봤다.



1968년 조훈현(당시 15세)과 아버지 조규상씨. [중앙포토]
 -오랜만의 타이틀 획득이다. 소감은.



 “타이틀 보유자 대열에 합류해 기쁘다. 하지만 나는 이미 승부사의 세계에서 떠났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바둑 둘 때만큼 치열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이제는 이기고 지는 것에 크게 연연해하지 않는다.”



 -달관의 경지가 느껴진다.



 “산에 올라가면 내려오게 마련이다. 나는 산에서 내려온 지 한참 됐다. 지금 정상에 못 올라간다고 급급해 할 때는 지났다고 본다.”



 -수많은 대국을 했다. 바둑 둘 때마다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다.



 “바둑을 재미로 둔 적은 없다. 특히 시합에서는 바둑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돈까지 걸려 있으니 즐겁다고는 할 수 없다. 이기기 위해 머리를 짜내야 하니 힘들고 괴롭다. 바둑은 내 업(業)이라고 생각하고 걸어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바둑은 무엇인가.



 “응씨배에서 우승한 대국이다. 개인적인 기쁨의 차원을 넘어 한국 바둑계의 역사적인 한판이었다. 이 밖에 수없이 많은 바둑에서 이기고 졌다. 누구나 이기면 기분 좋고 지면 기분 나쁜 법이다.”(※1989년 응씨배 우승은 일본과 중국에 비해 국제적 인지도가 낮았던 한국 바둑의 위상을 크게 높인 위대한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중요한 대국에서 동요하지 않는 비법이 있나.



 “‘무심(無心)’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평소대로 둔다는 거다. 물론 나도 사람이니까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판 이기면 몇 천만원, 몇 억원 들어오는데’라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하기 시작하면 잠도 안 오고 잘 둘 수도 없다. 무조건 최대한 평소대로 두려고 한다. 대국의 승패는 이미 내 손을 떠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89년 제1회 응씨배에서 우승한 조훈현. [중앙포토]
 -바둑 둘 때 가장 경계하는 것은.



 “내가 유리할 때다. 바둑이 불리하면 후퇴가 없으니까 무조건 최강의 수를 둔다. 한 집을 지나 백 집을 지나 지는 것은 똑같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다. 하지만 바둑이 유리하면 ‘조금 양보해도 되겠지’ 생각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조금이라도 바둑을 쉽게 풀어가려고 어려운 수를 피하다 역전당하는 경우가 많다.”



 -2013년 개인통산 1900승을 넘겼다. 2000승은 언제 달성할 것으로 보는가.



 “알 수 없다. 한창 때 100승은 1~2년이면 바로 채웠다. 하지만 지금은 한 판 이기기가 쉽지 않다. 내가 은퇴하기 전에 2000승을 채울 수 있을지 없을지도 잘 모르겠다.”



 -요즘 바둑 둘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체력이다. 젊을 때는 장고 바둑을 많이 뒀는데 오전 10시에 대국을 시작해 밤 12시까지 끄떡없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저녁 때까지 버티기 힘들다는 걸 느끼다가 언제부턴가는 점심 때까지 버티기 힘들어지더니 이제는 대국 시작하자마자 힘이 든다. 바둑을 두려고 자리에 앉으면 바로 집에 가고 싶을 정도로 체력이 떨어졌다. 또 머리가 안 돌아가니 복잡한 수읽기가 안 된다.”



 -한국 바둑계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현재 바둑계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나는 바둑을 처음 배울 때 ‘도(道)’로 배웠다. 모든 게 다 자세와 태도부터 시작됐다. 정신력을 먼저 익힌 다음 기술을 배웠다. 요즘에는 이기는 기술부터 주입식으로 가르친다. 그런 면에서 바둑이 많이 삭막해졌다.”



 -한국 바둑에서 독보적인 1인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바둑이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많이 발달했는데 정신적인 면에서는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도토리 키재기가 됐다. 최강이 되기 위해서는 정상을 뛰어넘는 정신력과 기재가 필요하다. 세월이 흐르다 보면 또 독보적인 천재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기세가 무섭다. 앞으로 한국 바둑이 중국에 밀릴 가능성은 없나.



 “중국은 정책적으로 바둑을 강력히 밀어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바둑에 지원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된다. 한국 프로기사들이 세계에서 1위를 하는 게 대견할 정도다. 객관적인 환경 자체가 중국에 비해 안 좋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낙관할 수 없다. 지금은 세계대회에서 1등 하니까 국민적인 관심이 있지만 성적이 떨어지면 잊힐까 봐 걱정이다.”



 -앞으로 한국 바둑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바둑도 대중적으로 가야 한다. 바둑이 스포츠로 자리 잡아가고 있기 때문에 팬층 확보와 홍보에 힘써야 한다. 예전에는 프로기사가 바둑만 잘 두면 됐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인기를 얻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글=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조훈현 9단=1953년 목포 출생. 62년 9세에 세계 최연소 입단. 63~72년 일본 유학. 80년 제1차 전관왕(9관왕). 82년 한국 최초 9단 승단, 제2차 전관왕(10관왕). 86년 제3차 전관왕(11관왕). 89년 응씨배 우승. 94년 후지쓰배·동양증권배 우승. 77~93년 패왕전 16연패(최다연패). 96년 한국기네스협회 선정 최다 연승·타이틀. 2014∼2015 시니어 바둑 클래식 통합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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