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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잔혹 동시’ 논란이 남긴 숙제

‘잔혹동시’ 논란을 빚은 동시집 『솔로강아지』를 펴낸 가문비 출판사가 책을 파쇄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채윤경
사회부문 기자
지난 12일 오후 3시. 경기 고양시의 한 폐지 처리장에서 ‘잔혹 동시’ 논란을 빚었던 이모(10)양의 동시집 『솔로강아지』 439권이 폐기됐다. “책을 전량 폐기했다는 증거를 제시하라”는 학부모들의 요구가 잇따르자 출판사는 현장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겼다. 책이 파쇄되는 데 걸린 시간은 3분. 책은 출판된 지 40여 일 만에 시장에서 사라졌다.



 『솔로강아지』 폐기는 ‘아동’과 ‘아동문학’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 수준을 보여준 사건이다. 이양은 “시는 시일 뿐인데 어른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며 “공포영화나 TV프로그램, 만화를 보고 생각한 것들을 시로 썼다”고 말했다. 이양의 설명과 달리 네티즌들은 ‘정신 감정을 받아야 한다’거나 ‘사이코패스나 패륜아’라는 등의 비난을 쏟아냈다. 폐기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이양의 부모에게는 ‘부모도 미쳤다’고 손가락질했다. 성인 작가의 작품이 잔인하다고 해서 그의 정서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다. 반면 초등학생의 시는 아이의 정신상태와 직접 연결시켜 재단한 것이다.



 논란이 된 시 ‘학원가기 싫은 날’에서 이양이 하고 싶었던 말은 ‘엄마’ ‘학원’으로 표현되는 세상의 압력이었다. 시를 접한 어른들은 표현에만 주목했다. “우리 아이가 읽을까 두렵다”거나 “시를 태워버리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했다.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는 “(이양은) 엄마로 대변되는 사회적 압력이 싫다고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출판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시장에 작품을 내놓는 순간 작가로서의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작가는 작품에 대한 호불호, 종교적·윤리적 비난, 사회적 반향과 각종 오해에 고스란히 노출돼야 한다. 이양의 시는 초기에 잔혹성 때문에 비난받다가 ‘외로움이 납작하다’(솔로강아지 중)나 ‘눈물과 얼굴이 만나 삼각형이 되어버린 표범’(표범 중) 등 통찰력 있는 표현을 담은 시가 공개되면서 ‘대필 논란’에 휩싸였다. ‘아홉살 랭보’ ‘그림형제+카프카스러운 세계감정’이라는 평가까지 등장했다. ‘스펙쌓기’용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칭찬이든 비난이든 어린 저자가 온갖 평가를 홀로 감당하기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평론가들이 “문학교육의 핵심은 어린이가 자신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만 출판은 신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동시집 『솔로강아지』는 시장에서 사라졌지만 그 책이 우리 사회에 남긴 과제는 이제부터 논의돼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어떤 글을 읽고 쓰는지, 이들의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지켜줄지, 문학적 감수성을 가진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글=채윤경 사회부문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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