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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공무원연금은요?”

이정재
논설위원




애덤 스미스는 인간이 이기적 존재며, 이기적 유전자의 총합이 경제·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믿었다. 처음 반론을 제기한 건 19세기 심리학자들이다. ‘사회적 경제’ 같은 인간의 이타적 경제행위가 설명되지 않았던 거다. 왜 이기적인 존재라는 인간이 가끔 이타적 경제행위를 할까. 제러미 리프킨은 ‘공감’을 이유로 꼽았다. 그는 현대인을 ‘공감하는 존재’로 규정하고 “공감은 진정성에서 온다”고 봤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이해 당사자가 자기를 버릴 때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이타적 경제 행위다. 리프킨의 말을 빌리면 이타적 경제 행위엔 국민 공감이 꼭 필요하다. 문제는 공감을 끌어내는 능력, 진정성이 대통령에게 있느냐다.



 이틀 전 국무회의를 보면 ‘아니다’ 쪽이다. 대통령은 이날 공무원연금 개혁을 말하며 격하게 반응했다. 크게 한숨도 쉬었다. “시한폭탄” “미래 세대에 물려주는 빚더미”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었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하나도 감동스럽지 않았다. 대통령은 예의 ‘유체이탈 화법’을 반복했다. 이런 화법의 치명적 단점은 전혀 진정성을 느끼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아예 진정성이 뭔지 모르는 존재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2006년 5월을 돌아보라. “대전은요?”라고 물었을 때 박근혜는 진정이었을 것이다. 그때 그는 꼭 이기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니 오른쪽 뺨을 11㎝나 베인 그가, 수술 후 처음 꺼낸 말이 ‘대전은요’였을 것이다. 그런 진정이 민심을 움직였다. 철옹성 같았던 열린우리당이 무너졌다. 유정복 당시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은 뒷날 “80초짜리 진정이 기적을 만들었다”고 했다.



 어느 쪽이냐면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 쪽이다. 그런데 요 며칠 생각이 달라졌다. 기적이란 게 있다면 지금 이 순간, 다시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가 기다리는 기적은 “대전은요”보다 어려운 것이다. ‘대통령이 완전히 달라졌어요’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구중궁궐 청와대에 앉아 ‘유체이탈 화법’을 늘어놓는 대신 TV에 나와 이해 당사자들과 밤새 끝장 토론하는 대통령을 보는 것이다. 하루로 안 되면 몇 날 며칠, 몇 달이라도 좋다. 부딪치고 깨져 만신창이가 돼도 괜찮다. 딱 하나, 진정성만 국민 앞에 보여주면 된다.



 말주변이 달리고, 기억이 흐릿해 조롱을 받게 되면 어쩌느냐고? 걱정 붙들어 매시라. 가깝게는 3년 전을 떠올려보라. 그토록 피하고 싶었지만 결국 해야 했던 대선 주자 TV토론. 새까맣게 어린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는 “이런 거 잘 모르죠? 알 턱이 없죠” 수없이 비아냥거리더니 급기야 “나는 당신을 떨어뜨리려고 이 자리에 나왔다”며 조롱했다. 그런 이정희 앞에서 박 대통령은 입술을 악 다물고 파르르 떨어야 했다. 변변한 반격 한 번 못했다. 온 국민 앞에 바보가 된 심정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때문에 부동표가 박근혜 지지로 돌았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한 번 바보가 된 덕분에 대권을 쥘 수 있었다.



 지금 필요한 게 그런 바보 용기와 진정성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미 노동시장 개혁이 물 건너 갔다. 창조경제며 규제개혁 외침도 공허해진 지 오래다. 공무원연금 개혁마저 실패하는 순간, 박근혜 정부는 개혁 동력을 완전히 잃고 식물 정부가 될 것이다. 경제가 뒷걸음치고 선진국의 꿈이 좌절될 것이다. 역사는 박근혜 정부 5년을 ‘잃어버린 OO년의 시작’으로 기록하게 될 것이며 박근혜를 ‘무능의 상징’으로만 기억할 것이다. 국민에게도, 대통령에게도 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누구보다 대통령이 잘 알 것이다. 지금이 바로 자신이 나설 때란 사실을. 어렵게 이뤄낸 여야 합의마저 깬 대통령 아닌가. 국민 앞에 온몸을 던질 각오가 돼 있었으니 저지른 일일 것이다. 하기야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여전히 그런 기적은 없을 것이라고 믿는 쪽이다. 그래도 진정으로 원한다. 대통령이 9년 전 그날처럼 절박한 마음으로 국민에게 묻게 되기를. “공무원연금은요?”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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