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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대통령 방미, 한·일 관계에 얽매여선 안 된다

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
전 외교통상부 동북아국장
‘미·일 신밀월관계’ 때문에 한국 외교가 기로에 섰다는 논쟁이 한창이다. 비판은 주로 대일외교에 집중되고 있다. 미국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방미 성과를 배경으로 한·일 관계 개선을 강하게 압박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6월 방미를 앞두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큰 부담이다. 미국이 보는 한·일 관계의 문제점은 두 가지다.



 첫째, 고위 외교채널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베 정권이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신정부 출범 후 2년 넘도록 계속되는 한·일 정상회담의 공백 상태가 점차 한국의 외교적 부담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상황에 떠밀리듯 정상회담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상회담은 적절한 환경이 마련되었다고 판단되는 시기에 개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위안부 문제를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에서 분리해야 한다. 아무리 정상회담 카드로 아베 정권을 압박한다고 해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해결책을 받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국내적 불만이 해소되지 않은 채 일본과 타협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위안부 문제는 정상회담과 연계하지 말고 별도의 트랙에서 중재위원회 회부 등의 방법으로 대처하는 것이 낫다. 명분 때문에 실리를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 외교의 기본이지만 위안부 문제만큼은 명분을 지켜달라는 것이 국민 다수의 여망이다.



 외교장관 채널의 정상화도 급선무다. 아무리 관계가 나빠도 외교장관 채널만큼은 작동해야 하는데 지난 2년 동안 한·일 외교장관회담이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 지난 3월 한·중·일 외교장관회의 때 기시다 일본 외상이 방한했으니 이제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방일해야 한다. 시기는 대통령 방미 이전이 좋을 것이다.



 둘째, 한·일 간의 안보 협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국의 안보는 한·미 동맹과 함께 한·미·일 협력으로 지탱된다. 일본의 안보적 역할 확대에 대해서는 우려도 있지만 미·일 동맹 강화가 한국의 안보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한·일 간에도 군사 정보의 교류나 해외에서의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상호군수지원 등 비록 한정된 범위나마 초보적 수준의 안보협력은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편 박 대통령 방미와 관련해 국내 관심의 초점은 두 가지다.



 첫째,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한 미국의 협조다. 미국의 압력만이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의 자세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는 주장이 많지만, 이번 아베 방미에서 보듯이 미국은 역사 문제로 일본을 압박해서 실리를 잃는 일은 하지 않는다. 아베 정권이 그런 압력을 수용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게다가 과거사 문제를 미국 정부에 호소하는 것은 한국 스스로 자존심을 깎아 내리는 일이기도 하다. 어디까지나 한국이 주체적으로 대처해야 할 사안이다.



 둘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문제다. 아베 방미로 TPP 타결이 임박한 듯하자 한국도 서둘러 TPP에 가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TPP의 최종 타결은 아직 낙관할 수 없고, 그 전제가 되는 무역촉진권한(TPA) 법안이 미국 의회에서 통과될지도 불투명하다.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강력한 기반을 가지고 있고, 유럽연합(EU)·중국 등 거대경제권은 물론 TPP 12개 회원국 중 10개국과 이미 FTA를 체결했다. 이러한 유리한 입지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을’의 입장이 되어 TPP 조기 가입을 위한 협조를 요청하고 다녀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차라리 한·일 FTA 추진이라는 역발상이 효과적일 수 있다.



 6월 대통령 방미의 진정한 시험대는 동아시아 문제와 대북정책이다. 중국이 급속히 부상하는 가운데 동아시아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지역질서가 조화롭고 안정된 모습이 되도록 하는 것은 한국 외교의 가장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다. 미사일방어(MD) 체계 구축이나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THAAD) 체계의 배치, 그리고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해서는 대북 억지력의 차원에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동아시아에서 마찰과 긴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미·일에 제기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중국에 대해서도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의 평화로운 해결과 해상교통로의 안전 확보가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군사력 증강의 투명성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리고 사통팔달의 네트워킹을 구사하며 동아시아에서 ‘미·일 대 중국’의 대립구도가 고착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를 키워 나가야 한다.



 동아시아에서 한국 외교의 주도권 확보를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개선이 필수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이 추상적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천적 이니셔티브로 작동할 수 있도록 보다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마련해 오바마 대통령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박 대통령 방미는 한·일 관계에 대한 구차한 설명보다 대북정책의 이니셔티브에 대해 합의하고 동아시아 문제를 숙의하는 것이 중심이 돼야 할 것으로 본다.



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 전 외교통상부 동북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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