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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역사] 국내 첫 돌고래 쇼, 동물원엔 75만 명이 몰렸다

지난 7일 서울동물원 전돈수 사육사가 20년을 함께 한 돌고래의 부리를 쓰다듬고 있다.사진 속 돌고래의 자세는 사람의 ‘차렷’ 자세와 같다.


서울동물원 ‘40년 사육사’ 전돈수씨

“동물은 순수하고 꾸밈이 없지요. 사람처럼 머리 써서 남을 속이는 일도 없고. 말은 안 통해도 이젠 눈빛만 보면 알아요. 어디가 아픈지, 뭐가 불편한지.”

전돈수(58) 과천 서울동물원 사육사가 동물원에서 일하기 시작한 건 1976년, 당시 ‘창경원 동물원’에서 새를 돌보며 동물과 함께 하는 인생을 시작했다. 84년부터는 돌고래 쇼를 20년간 진행했고, 이후 캥거루·사슴 등을 돌봤다. 요즘 그는 황새·큰물새 등 조류 관리를 책임지고 있다. 100여 명의 서울동물원 소속 사육사 가운데 오랜 경력을 지닌 ‘1세대 사육사’다. 전씨를 만난 건 근로자의 날이었던 지난 1일 오후 과천 서울동물원에서였다. 휴일을 맞은 이날 동물원은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온 가족들로 붐볐다.


70·80년대 사육사, 지금보다 바빴다

“그땐 철망 사이로 우산대를 넣어 동물을 쿡쿡 찌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철망을 넘어 우리 안으로 들어가는 관람객들도 있었고. 그러다 맹수한테 팔을 잘린 관람객도 있었어요. 벚꽃놀이 철엔 동물원에서 술판을 벌이는 사람들도 있었고, 확성기로 동물을 놀라게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니까.”

 70~80년대 사육사들은 지금보다 더 바빴다. 오전에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고 나선 관람객들로부터 동물을 보호하는 일도 해야 했다.

 “동물들한테 아무거나 주면 안 되거든요. 이를테면 하마는 초식동물이라 고기나 과자를 주면 안 되는데 그런 걸 입에 넣어주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비닐이나 쓰레기를 우리 안에 던져넣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러는 관람객을 제지하면 ‘돈 내고 왔는데 왜 그러냐, 뭐가 잘못됐냐’며 시비를 거는 이들도 있었고. 진땀 나는 일들 많았어요.”

 
69년 개원 60주년을 맞은 창경원 동물원 정문.


 그가 처음 동물원에서 일하기 시작했던 76년엔 창경원 동물원에 있던 동물은 모두 153종 743마리였다. 현재 과천 서울동물원에 있는 동물이 모두 325종 3785마리니 그때에 비해 세 배 정도로 늘어난 셈이다. 창경원 동물원이 84년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이전하면서 전씨의 소속도 서울대공원 소속 동물원(현 서울대공원)으로 바뀌었다. 동물원 개장과 함께 그는 돌고래 쇼를 담당했다.

 “일본에서 돌고래 세 마리를 한 마리당 4만여 달러에 사왔어요. 일본인 사육사들로부터 염분의 농도, 사육법, 돌고래 훈련법 등을 6개월간 전수받았지.”

 초창기엔 돌고래를 돌보고 훈련시키는 것만큼이나 풀장을 관리하는게 힘들었다. 여름에 폭우가 쏟아지면 염분 농도가 옅어지기 때문에 사육사들이 나가 소금을 쏟아부어야 했다. 풀장에 낀 이끼를 긁어내는 것도 큰일이었다. “이끼를 긁어내는 건 중노동에 가까운 일이었어요. 정수기로 물을 빼내고, 이끼를 긁어내고, 관람객들이 던진 깡통이니 쓰레기를 건져내고….”
 
78년 열린 과천 서울대공원 기공식.
 돌고래 쇼가 처음 문을 연 84년 5월 1일엔 75만 명 넘는 인파가 몰렸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 부부를 비롯해서 국회의원들, 연예인들까지 와서 돌고래 쇼를 관람했다. 공중제비를 돌고 링을 통과하는 돌고래들의 묘기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하루 3~4회의 돌고래 쇼마다 2000~2500여 명이 들어와 구경을 했다. 미처 행사장에 못 들어온 관람객들이 몰리면서 행사장 외곽 펜스가 무너지기도 했다. 전씨는 “다음 날 쇼를 해야 해서 무너진 펜스를 밤새 고쳤다”고 회상했다.


아버지 임종 때도 멈출 수 없었던 쇼

그로부터 20여 년간 전씨의 인생은 돌고래 쇼과 함께였다. 자신의 결혼식도, 아버지의 장례식도 그랬다.

 친구 집들이에서 만나 한눈에 반한 신부 형경자씨와의 결혼식 날짜는 돌고래쇼가 한창 인기를 끌던 84년 8월이었다. 돌고래 전문가 전씨가 한시도 자리를 비우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결혼식을 서울대공원 입구에 있는 현 종합안내소 2층에서 올리기로 했다. 안내소를 예식장으로 꾸미고, 서울대공원 식물원에서 빌린 꽃으로 식장을 장식했다. 결혼식 음식은 공원 매점 직원들이 준비했다. 주례는 오창영 당시 한국동물원장이 섰다. 그가 식을 올리는 동안 63빌딩 수족관에서 서울대공원으로 실습 온 직원 두 명이 대신 돌고래 쇼를 진행했다.

 아버지 전용배씨가 폐암으로 돌아가시던 91년 그날도 그는 돌고래 쇼를 했다. “아침부터 무선 호출기가 정신없이 울렸어요. 하지만 진행 중이던 쇼를 멈출 순 없었죠.” 교대해 줄 다른 직원은 휴가 중이었고, 오후에 네 번의 쇼가 남아있었다. 남은 쇼를 모두 마치고야 그는 고향으로 가는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85년 서울동물원 돌고래 쇼.


1984년 일본서 돌고래 3마리 들여와 국내 최초로 공연
대통령·국회의원·연예인…사람이 너무 많아 펜스가 무너졌죠
돌고래 화나면 꼬리로 때리고 밀쳐…2012년부터 생태설명회로



 “돌고래 쇼 보러 지방에서 대공원까지 찾아온 관객을 돌려보낼 순 없었으니까요. 참 얄궂다 싶었지만 그래도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이다’ 했어요. 아직도 삐삐가 울리던 그 순간이 기억에서 지워지지를 않아요.”

 충남 홍성 출신인 그가 사육사의 길을 걷게 된 건 어린 시절 토끼를 키우던 기억 때문이었다. “6남매의 장남으로 어머니가 농사를 지으면서 키우던 토끼·닭·소·염소 등을 돌봤죠. 토끼를 키워서 장에 내다 팔기도 했구요. 그러면서 뭔가를 기르는 게 체질에 맞는다는 생각을 했어요.”

 73년 홍성중학교를 졸업하고 고교 진학은 포기한 채 돈벌이에 나섰다. 가난한 살림에 진학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 전씨는 “무작정 서울에 상경했지만 취업이 쉽지 않았다”며 “약 2년간 사촌 집에 얹혀 살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다 창경원에서 조류 번식장 관리일을 맡게 됐다. “하루 세 끼를 제공하고 한 달 3만3000원의 월급을 준다는 말에 지원했어요. 면접장에 가니 ‘일이 고되다’는 이유로 지원자들이 많이 빠져나간 덕분에 경쟁자는 별로 없었죠.”


돌고래는 사람과 가장 비슷한 동물
 
84년 5월 1일 과천에서 개장한 서울대공원.
평소 보기 힘든 희귀 조류들을 돌보는 게 그는 재미있었다. 70~80년대엔 호반새니 딱따구리니 같은 새들을 동물원에 기증하는 이들도 많았다. “처음엔 새라고 하면 다 똑같은 새인줄 알았지. 하지만 새들도 각각의 특징이 있어요. 노랑부리저어새랑 큰물새는 추위에 약해. 겨울에도 30도 이상을 유지해야 하죠. 황새는 추위에 강하지만 여름엔 꼭 방사를 시켜줘야 하고요.”

 조류의 먹이는 보통 오전과 오후 한 끼씩 준다. 황새는 미꾸라지, 물새는 전갱이를 주로 먹는다. 전씨는 “새들이 경계심이 강하지만 먹이를 가져올 때면 수십여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든다”고 말했다.

 가장 사람과 비슷한 동물은 돌고래다. 감정 표현도 풍부하다. “대개 야생동물은 사람이 접근하면 겁을 먹어 도망가기 마련인데, 돌고래는 사람을 잘 따르고 우호적이에요. 돌고래는 고등어와 오징어를 주로 먹는데 배가 고프면 ‘끽끽’ 울어대면서 사람을 따라다니기도 하죠.”

 훈련을 무리하게 시키면 꼬리로 사육사를 치거나, 벽으로 밀어부치는 식으로 적극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것도 돌고래의 특징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번 묘기를 가르쳐주면 끝까지 배우는 등 사람처럼 성실한 구석도 있다. 아무리 가르쳐도 묘기를 따라하지 못하는 돌고래도 있고, 금방 따라하는 돌고래도 있는 등 편차가 큰 것도 다른 동물과 다르다. 돌고래 쇼의 또 다른 주인공인 물개는 돌고래보다 난폭한 편이다. 전씨의 손에는 아직도 물개에게 물린 상처가 남아 있다.

 캥거루는 예민하고 겁이 많고 소리에 민감하다. “상당히 먼 거리에서 밤중에 공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캥거루 20~30여 마리가 그 소음이 놀라 밤새 쿵쿵 뛰었다”라고 한다.

 동물들이 예민해지는 건 수컷은 발정기일때, 암컷은 새끼를 낳았을 때다. “새들도 캥거루도 새끼를 품 안에서 돌보는 시기에는 극도로 예민해지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동물은 돌고래를 비롯해 코끼리, 호랑이, 침팬지, 오랑우탄 등이다. 코끼리나 고릴라 오랑우탄은 사람과 비슷한 행동을 한다. 담배를 주면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면 술주정을 하기도 한다. 조류는 과거보다 요즘 더 인기가 높아졌다. 도시가 발달하고 환경이 오염되면서 동물원에서야 볼 수 있는 희귀 조류가 많아져서다. 두루미나 황새 등이 그렇다. 하지만 과거 인기였던 공작새는 오히려 그 인기가 줄었다. 번식이 많아져서 흔해졌기 때문이다.

 맹수를 다루는 사육사들은 위험을 항상 안고 있다. 실제로 맹수에 물려 죽은 사육사도 있었다. 2013년 11월 호랑이 우리를 청소하던 동료 사육사 심모(당시 52세)씨가 제대로 안 잠긴 문을 통해 빠져나온 시베리아 호랑이에게 물려 사망했다. 올해 2월에는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에서 호랑이 암수 한 쌍이 사육사를 공격해 숨지게 했다.

 
창경원 코끼리가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지고 있다.


창경원 동물원 시절엔 관람객 제지하는 게 큰일이었어요
우산으로 동물 찌르고, 초식동물한테 고기 주는 이도 많았죠
사육사에 대한 관심 늘었지만, 호랑이한테 죽은 후배 생각하면…



 “심씨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후배였어요. 그런 사고, 사실 맹수 담당 사육사라면 ‘한 번은 당할 수 있는 사고’라고 예상하죠. 아무리 안전에 조심해도 사고를 피하기가 쉽지가 않아요. 그런데 막상 그렇게 동료를 잃으니니 상처가 컸어요. 마치 가족을 떠나보낸 것 같아요.”

 이후 서울동물원 측은 안전 관리 매뉴얼을 대폭 강화했다. CCTV 200여 대를 동물 우리 곳곳에 추가로 설치했고, 맹수의 탈출 방지를 위한 펜스도 대폭 늘렸다. 맹수의 사육장에는 이중잠금장치를 설치했다.

 전씨를 비롯한 사육사들은 매 분기마다 모의탈출 훈련을 받는다. 과거 벌어진 사고를 재연해 보고 대처법을 몸으로 익힌다. 사고를 당한 사육사를 발견해 신고를 하고, 인근 경찰서·소방서 등 유관 기관과 협조해 환자를 후송하는 것까지를 실제로 해본다. 전씨는 “훈련 당일만큼은 동물원 전체 직원이 함께 실전처럼 움직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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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육사에게 꼭 필요한 건 사랑·성실

사육사에 대한 관심은 과거에 비해 크게 늘었다. 동물학과를 개설하는 2~4년제 대학도 부쩍 늘어났다. 전씨는 “내가 취업할 당시만 해도 고교인 농업전문학교 졸업이 사육사의 최고 학력이었다”며 “최근에는 대부분 대졸 이상이고 채용 경쟁율이 15대 1에 이를 정도로 사육사에 관심이 많다”고 전했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사육사의 조건은 동물에 대한 사랑과 성실성이다.

 “생명체를 다루는 직업이기 때문에 다른 직업보다 세밀하게 관찰하고 성실하게 돌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아주 작은 실수로 내가 아끼는 동물이 죽을 수 있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둬야하죠. 새끼 새의 경우 이리저리 옮기는 과정에서도 죽을 수도 있어요. 작은 소리에 놀라 벽에 부딪혀 죽을 수도 있고 목이나 다리가 부러질 수도 있거든요.”

 그는 2004년 돌고래 쇼를 떠나 캥거루와 사슴을 맡았다가, 2009년부터는 조류를 담당하고 있다.

 “눈을 자주 깜빡거리거나, 깃털에 윤기가 줄었거나, 행동이 부자연스러우면 뭔가 문제가 있다고 봐야합니다. 그럴 때 뭐가 문제인지 알아내서 해결을 해주는 게 사육사의 일이죠. 오랫동안 함께 하니 이제는 눈빛만 봐도 알 수가 있어요.”

 열여덟 살부터 쉰여덟 살에 이르기까지 40년을 동물과 함께 한 그는 내년 12월 퇴직을 앞두고 있다.

 “맹수·조류 등 다양한 동물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사육사의 겉모습은 화려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아끼는 동물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고,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는 등 어두운 면도 있어요. 그런 동물을 사랑하고 그들의 인생을 곁에서 돌보고 지키는 게 사육사의 운명이죠.”

글=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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