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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천재소년 송유근의 첫 스승은 전철 행상인이다



누구에게나 마음속 스승이 있습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스승을 떠올리면 그 고마움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 마음 한편이 애틋해집니다. 보통 사람뿐 아니라 천재라 불리는 이들도 스승에 대한 애틋함은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천재 소년’으로 불리는 송유근(18)군에게 스승에 대해 물었습니다. 어느 유명 교수의 이름을 예상했지만, 그가 떠올린 첫 사람은 10년 전쯤 서울 지하철에서 만난 한 젊은 행상인이었습니다. 20대 초반쯤으로 보였던 그 행상인은 어린 송군을 알아보고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라며 자신의 저녁거리로 챙겨뒀던 떡을 주섬주섬 꺼내 건넸다고 합니다. 시간이 흘러 행상인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때의 분위기,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고 합니다. “한창 대학을 다니면서 공부할 나이로 보였는데 아마 공부를 포기하고 생업에 뛰어들었던 형 같아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본인은 포기했지만 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힘들고 지칠 때면 그 형을 떠올려요.” 송군에게 첫 번째 스승은 유명한 교수도, 위대한 과학자도 아닌 ‘공부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행상인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스승은 누구인가요. 이틀 앞으로 다가온 스승의 날을 맞아 ‘내 인생의 스승’을 찾아봤습니다.

당신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글=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종이 일러스트=이주호·송혜영·심수휘 기자 lee.jooho@joongang.co.kr








내 인생의 스승

 

‘아버지로부터 생명을 받았으나, 스승으로부터 생명을 보람 있게 하기를 배웠다.’ 로마 시인 플루타르크가 한 말이라고 합니다. 힘들 때,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를 때 스승은 힘이 되고 앞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됩니다. 엄한 가르침으로 삶의 원칙을 세워준 스승도 있고, 아버지 같은 자애로움으로 곁을 지켜준 스승도 있습니다. 헌신하는 동료들의 모습에서 스승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5인의 명사들로부터 마음속 스승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외로운 천재 소년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돼라 하셨죠"




송유근군은 현재 대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천문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어버이날을 맞아 서울에 온 송군을 9일 만났다. [김경록 기자]
천재 소년 송유근에겐 박제남·박석재·조용승 교수

송유근(18)군은 “스승과 부모는 같은 존재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게 스승은 단지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가치관을 깨닫게 해주는 사람’이란 것이다. 그는 세 명의 스승과 지금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송군을 학문의 길로 이끈 박제남 인하대 수학교육과 교수, 송군에게 과학자의 올바른 삶에 대한 고민을 던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한국천문연구원 박석재 박사, 그리고 학자로서의 엄격함과 진지함을 깨닫게 해준 조용승 이화여대 교수다. 세 스승의 공통점은 송군을 아들 대하듯 따뜻하게 감싸면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는 점이다.



 박제남 교수와의 일화를 들려줬다. 박 교수와는 2004년 인하대 영재교육센터를 다니면서 인연을 맺었다. “인하대 영재센터에 처음 갔던 날이 지금도 기억이 생생해요. 비가 많이 왔는데 박 교수님께서 제가 길을 잃어버릴까봐 건물 밖까지 나와서 한참을 기다려주셨어요. 제가 교수님을 어려워할까봐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하시더라고요.”



 두뇌 회전은 비상했지만 마음은 아직 일곱 살 어린 아이였던 천재 소년 송유근. 박 교수는 그런 송군에게 허리를 낮추고 눈을 맞췄다. 송군은 “나를 믿고 아들처럼 대해줘서 너무 고마웠다”며 “그 덕에 남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가도 괜찮겠다는,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박사 과정으로 재학 중인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의 박석재 박사도 ‘부모 같은 스승’이다. 송군은 “과학자로서의 태도뿐 아니라 어떤 삶을 살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주셨다”고 말했다. 무엇을 배웠냐는 질문에 송군은 “예절”이라고 답했다.



 “술 따르는 예절이라든가 인사하는 법 등 웃어른을 대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셨어요. 과학뿐 아니라 인문학과 예체능까지 폭넓게 공부해야 한다는 것도, 한국인으로서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해 깊이 있게 알아야 한다는 것도 박사님 덕분에 배웠습니다.” 외로운 천재가 아닌 이 사회의 한 사람으로,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법을 배운 거다. 송군은 “박제남 교수님께서 저를 학문의 길로 이끌어 주셨다면 박석재 박사님은 어떤 과학자가 돼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신 분”이라고 설명했다.



 “정말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았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분들 모두가 제게 스승입니다. 이제는 제가 한 사람의 과학자로서 제 역할을 해낼 차례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 과학자가 되려고 합니다.”



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헌신적인 동료 20명이

제 스승입니다"




이국종 교수는 “긴장과 스트레스 연속인 매일매일을 견디며 사심없이 환자를 돌보고 있는 동료들을 보면서 닮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외상외과 전문의 이국종 교수에겐 팀원들

“전문 간호사 14명, 의사 6명. 저희 중증외상외과팀원이에요. 이들이 제 스승입니다.”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살린 이국종(46) 아주대 중증의학과 교수는 자신의 스승은 “동료들”이라고 했다.



“가냘픈 간호사들이 헬기에서 바다 위 고속정이나 산간 벽지, 오지 같은 곳으로 뛰어내려 환자를 돌봐요. 야근이나 철야는 일상이고요. 이렇게 일을 하면서도 힘들다는 소리 한마디 안해요.”



중증외상외과팀의 간호사는 일반 간호사와는 업무 성격이 다르다. 중환자실이나 응급실에서 사지가 절단되고 내장이 노출된 환자를 3~4년 이상 진료해온 경력자들로만 구성됐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위급 상황에서 매 순간 몰아치는 긴장과 스트레스가 정말 심하죠. 이런 부서에 지금껏 남아있는 팀원들을 보면 존경심이 저절로 생길 수밖에요.”



팀원에 대한 존경심과 고마움만큼 미안함도 크다. “며칠 전에 서류를 보니 뭐가 잘못된 게 있더라고요. 알아보니까 간호사 한 명이 실수한 거였어요. ‘이건 정말 제대로 혼을 내야겠다’고 쫓아가서 소리를 빽 질렀는데, 그 간호사의 입술이 다 터지고 찢어져 있더라고요. 아무 말 못하고 ‘집에 좀 들어가고 살살 일하라’고 말하고 왔죠.”



병원도 직장이니만큼 조직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 게다가 중증외상외과팀은 심각한 적자 부서라 병원 내에서 입지도 좋지 않다. “ABC 원가분석이라는 걸 하면 저희 부서에서 1년에 20억씩 적자가 나요. 저 혼자 일할 땐 8억씩 적자였는데, 팀이 꾸려지고부턴 아무래도 하는 일이 많아지니까 적자 폭도 커지죠. 일을 열심히 하고 환자를 보면 볼수록 적자가 나는 팀이니 나도 힘든데 팀원들을 오죽하겠어요. 서로 의지하면서 꾸려나가는 거죠.”



그는 “내가 지금 중증외상외과를 계속 하고 있는 것도 동료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원래 간과 췌장 등을 담당하는 외과 전공의였다. 주임교수가 우연히 “너 외상외과 해볼래”라고 권한 게 계기가 돼 큰 고민 없이 이 길에 들어섰다가, 위급 상황에 중상을 입은 환자를 치료하는 중증의학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지금 같이 일하는 동료 의사들은 수술·강의·연구 등 각 영역에서 최고인 실력자들이에요. 이들이 아무 사심 없이 환자를 위해 헌신하는 걸 보면 ‘나도 이들을 닮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지금은 이들이 제 삶의 방향을 설정해주고 있으니, 동료들이야말로 저의 참스승이죠.”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10년 전엔 몰랐어

요리보다 접시 닦기 강조한 이유"




최현석 셰프는 “스승 김형규 셰프는 고지식한 원칙주의자였다. 그 원칙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고 말했다.
‘냉장고를 부탁해’ 최현석 셰프에겐 김형규 셰프

“스승은 힘들 때 생각나는 사람이죠. 행복할 때, 모든 게 순리대로 잘 흘러갈 때는 잊고 있다가 혼자 감당하기 힘든 일이 생길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요.”



 최현석(42) 셰프는 자신의 스승으로 경리단에 있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비스테카’의 김형규(54) 셰프를 꼽았다.



 두 사람은 95년 처음 만났다. 코리아나 호텔 주방장인 형 최기석씨가 김 셰프에게 동생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하면서다. “그 전까지 제게 요리사는 그냥 하나의 직업이었어요. 아버지도, 형도 셰프니까 나도 당연히 해야 하는 일에 불과했죠. 그런 생각을 김 셰프가 바꿔주셨죠. 스승이 아니었다면 계속 칼을 잡고 있지 않았을 겁니다.”



 그는 스승 밑에서 10년 넘게 일했다. 내내 혼나며 배웠다. 칭찬을 듣는 일은 거의 없었다. “스승님은 고지식한 원칙주의자예요. 아무리 복잡한 요리도 기본기만 지키면 문제 없다고 수없이 강조했죠.” 처음에는 잔소리처럼 느껴졌던 지적들이 최 셰프의 요리 인생을 지탱하는 기본이 됐다. 접시 물기 깨끗이 닦기, 우유 박스나 달걀 껍질은 부피를 최대한 줄여서 버리기, 양상추 한 장도 아껴 쓰기, 수도·가스 요금 절약하기. 최씨가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것도 이런 부분이다. “보여지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최선을 다할 것. 그게 스승께 배운 거예요. 스테이크 굽는 법, 파스타 삶는 법보다 더 중요하죠.”



 최 셰프가 스승에게 배운 건 기본기만이 아니다. 식재료 구입 경로를 알고, 계절별 메뉴를 구성하고, 음식을 돋보이게 하는 물건을 구입하는 등의 경영에 필요한 걸 알려줬다. 최씨는 “스승께선 서두르지 말라고 하셨어요. 모든 건 순서가 있다고요. 요리를 배울 때, 레스토랑 운영하는 법을 배울 때, 누군가에게 음식을 팔 때. 그 시간을 건너뛰면 탈이 난다고 하셨습니다.”



김 셰프는 얼음장식의 대가다. 노하우를 알려달라는 최 셰프를 김 셰프는 기특해하며 가르쳤다. “전문직일수록 자기만의 기술을 남과 공유하는 걸 싫어해요. 하지만 진짜 실력자는 그런 걸 두려워하지 않죠.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사는 비법 요리를 상세하게 적은 요리책을 내잖아요. 스승님은 제게 그 경지를 알려주셨어요.”



 최씨는 요즘 누구보다 바쁘다. 각종 매체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레스토랑도 더 낼 계획이다. “일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스트레스가 따라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예요.” 최씨가 덤덤하게 말했다. “그래도 전 운이 좋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답이 없을 때 물어볼 스승님이 있으니까요. 제게 김형규 셰프는 가장 마지막 순간에 찾아가는 분입니다.”



이영지 기자 lee.youngji@joongang.co.kr





"공부냐 육아냐 삶의 고비에

방향 잡아주신 당신"




범죄심리전문가 이수정 교수에겐 이훈구 전 교수



지난 5일 이수정(오른쪽)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스승인 이훈구 전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와 연세대 외솔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경록 기자]


국내 ‘여성 심리범죄전문가’로 꼽히는 이수정(51)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에게 이훈구(75) 전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스승”이다. 이훈구 전 교수는 이수정 교수의 학부·대학원 지도교수였다.



1980년대 후반 이수정 교수는 미국 아이오와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어린 두 자녀를 돌봐야 했다. 남편도 미국에서 공부하느라 바빴다. 6개월 된 둘째 딸이 40도를 넘나드는 고열에 시달리던 때, 이수정 교수는 학업 중단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둘 다 할 수 없다면 유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수정 교수의 고민을 들은 이훈구 전 교수는 “박사과정생으로 받아줄 테니 한국에 들어와 자녀를 안정적으로 돌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이 교수가 한국으로 돌아와 무사히 공부를 마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스승과 제자가 처음 만난 건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세대 심리학과 82학번인 이수정 교수는 이훈구 전 교수의 첫 수업 내용을 생생히 기억했다. “심리학은 과학”이라던 이 전 교수의 말은 이수정 교수를 흔들었다. 심리학을 추상적 학문으로만 여기던 그에게 심리학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킨 결정적 한마디였다. “심리학을 공부한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는 이수정 교수는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을 도와주는 학문이라는 게 심리학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범죄심리학자’의 길을 가게 된 데에도 이훈구 전 교수의 영향이 컸다. 2000년 경기 과천에서 부모를 살해해 토막낸 ‘고려대생 이은석 존속 살인 사건’에 대해 이훈구 전 교수가 경찰청·법무부 등에 자문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교수는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범죄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최근 각종 TV 프로그램에 출연이 잦은 이수정 교수를 스승은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왜 자꾸 매스컴에 나가냐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나는 심리학에 대할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교수들이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훈구 전 교수는 “제자들이 성공할 수 있게 도와줬어야 하는데 내가 많이 못했다”며 “교수가 학문적으로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자들의 앞길을 열어주고 함께 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스승이란 학문을 가르칠 뿐 아니라 삶의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수정 교수는 “인생의 고비마다 함께 해주시고 가족의 소중함을 존중해주신 이 전 교수님은 스승이자 친정아버지 같은 분”이라며 웃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길고 긴 슬럼프 딛고 서게 한

사범님의 무한 신뢰"




15년 만에 우승한 목진석 9단에겐 최승주 사범



스승 최승주(오른쪽) 사범과 제자 목진석 9단이 20여년 만에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김경록 기자]


어린 그에게 최 사범은 엄한 스승이었다. “어린아이들이 다들 그렇지만 모여 있으면 수다 떨고 시끄럽잖아요. 그러면 사범님이 한쪽에서 손을 들고 서있게 하고 흐트러진 자세로는 절대 바둑을 못 두게 하셨죠. 그때였어요. 바둑 둘 때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배운 건요.”



그건 목진석(35) 9단이 다섯 살 되던 해였다. 그는 서울 잠실동 ‘수양바둑교실’의 최승주(54·아마 5단) 사범에게 바둑을 배웠다. 바둑교실에는 네 살 때 처음 찾아갔다. 최 사범은 그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돌려 보냈다가 다섯 살 때부터 가르쳤다. 스승은 지금 그게 못내 미안하다. “일년이라도 빨리 진석이가 바둑을 배웠다면 세계 타이틀 몇 개는 더 땄을 텐데….”



목 9단이 아홉 살 되던 해 그는 최 사범을 떠나 한국기원 연구생이 됐다. 1994년 프로에 입단한 목 9단은 승승장구했다. 입단 1년 만에 세계 최강 중국 녜웨이핑 9단을 무너뜨렸다. 2000년 KBS 바둑왕전에서 이창호 9단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2007년에는 한 시즌 최다승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 우승의 환희는 그의 몫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멀어졌다. 길이 보이지 않았다. 스승은 그런 제자를 격려했다. 최 사범은 그 못지않게 힘들어하던 부모를 만나 “진석이만 겪는 일이 아니다. 잘하고 있다”고 말해줬다. 지난 4월 목 9단은 GS칼텍스배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정상에 올랐다. 15년 만이었다.



“기술이 뛰어나다고 좋은 스승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자가 보고 배울 인간적 면모, 됨됨이를 갖춘 분이어야 진정한 스승이죠.”



지금 목 9단은 바둑 국가대표 코치를 맡고 있다. 이제 스승이 된 그도 자신의 스승처럼 마음가짐과 자세를 강조한다. “제가 가르치는 국가대표 중에는 저보다 기술이 뛰어난 사람도 있어요. 제가 이들에게 해주는 말은 바둑의 시작은 결국 ‘바른 자세’에 있다는 점이에요. 바둑을 두는 자세가 바르면 대국에 임하는 진지함이 생기고, 몇 시간 동안 이어지는 대국에서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거든요. 특히 팬들이 주시하는 국가대표는 평소 행동가짐에 신경쓰는 게 의무라고 말해줘요. 제가 사범님께 그렇게 배웠듯이요.”



프로기사로는 많은 나이에 우승을 차지한 제자에게 스승은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저는 지금도 제 바둑 실력을 더 쌓는 게 최대 목표입니다. 진석이도 여전히 우승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죠. 그 마음을 꾸준히 이어가길 바랄 뿐이에요.” 스승의 말이다. 스승은 그렇게 한 발짝 떨어진 자리에서 제자를 응원하고 있다.



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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