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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명품 핸드백 브랜드로 승부 건다

[포브스코리아] 지방시, 버버리, 마크제이콥스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해외 명품 브랜드의 가방을 만드는 시몬느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올 9월 14일 공식 런칭하는 첫 자체 브랜드 ‘0914’를 명품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각오다.



20세기의 마지막해인 1999년 어느날, 세계 최초 명품기업으로 유명한 루이비통 LVMH 그룹의 장 폴 비비어 사장이 루이비통, 크리스찬 디올, 펜디, 지방시 등 계열사 대표 10여 명을 불시에 소집했다. 영문을 모른채 달려온 이들에게 장 폴 비비어는 똑같은 가방이지만 이탈리아 공방에서 만든 핸드백과 한국의 한 핸드백 제조업체가 만든 핸드백을 놓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벌였다. 결과는 놀랍게도 50대 50이었다. 계열사 대표들이 이탈리아 장인이 만든 핸드백과 한국의 무명 기업이 만든 핸드백을 정확히 구분해 내지 못한 것이다. 한국 기업의 핸드백 제조 실력이 이탈리아 장인에게 절대 뒤지지 않는다는 걸 인정받은 잊지 못 할 순간이었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인정받는 이 한국 기업이 바로 ‘시몬느’다. 이같은 일화는 지난해 5월 유효상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교 교수가 낸 책 『시몬느 스토리』에 자세히 소개됐다.



연간 2100만 개 제작, 미국 시장점유율 30%



시몬느는 중국·베트남· 인도네시아에 7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시몬느 박은관 회장.


시몬느는 전 세계 굴지의 명품 브랜드를 고객사로 두고 있다. 샤넬, 에르메스 등 자체 제작시스템을 갖춘 일부 브랜드를 제외한 랄프로렌, 마크제이콥스, 버버리, 셀린느, 지방시, 토리버치, DKNY 등의 핸드백이 시몬느에서 만들어져 전 세계로 팔려나간다. 이른바 제조업자 개발생산(ODM)방식이다. ODM은 주문자가 요구하는 제품과 상표명으로 완제품을 생산하는 주문자 상표 부착품(OEM)과 달리 제품 개발부터 제작까지 직접 참여한다. 시몬느는 ODM 방식을 추구하지만 고객사에 따라 OEM 방식으로 제조 판매하기도 한다. “모든 제품에 있어 저희가 개발자로 참여하는 건 아닙니다. 현재 코치는 100% OEM 방식으로 제조하고 있습니다.” 이민수 시몬느 기획실장의 설명이다.



핸드백 ODM 업체라고 해서 중소기업 정도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시몬느가 제작하는 핸드백 물량은 연간 2100만 개 정도로, 이는 전 세계 핸드백제조시장의 9%에 달하는 규모다. 특히 미국 시장점유율은 30%로 압도적이다. 시몬느의 강점은 고객사의 성장이 곧 시몬느의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마이클 코어스다. 마이클 코어스가 2011년 뉴욕 주식시장에 상장하면서 급성장하자 시몬느의 매출도 상승세를 탔다. 마이클 코어스 핸드백의 90%가 시몬느에서 만들어진다. 2011년 4116억5800만원(6월 30일 결산 기준)이었던 시몬느의 매출은 2012년 5844억9900만원, 2013년 6939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8279억1000만원을 달성하며, 최근 4년 사이 매출이 2배나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2013년 처음으로 1000억원을 넘어섰으며, 2014년에는 1560억원을 기록했다. 이러한 시몬느의 눈부신 성장 뒤에는 창업자 박은관(59) 시몬느 회장이 있었다.



박은관 회장이 평생 ‘핸드백을 만드는 남자’로 살게 된 건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4남 2녀 중 셋째인 박 회장은 형들이 그랬던 거처럼 원래는 원양어업을 했던 아버지를 돕기로 했다. 하지만 연세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하고 나서 핸드백 제조업체인 ‘청산’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딱 3년만 해보겠다고 한 게 지금에 이르게 됐다. 박 회장은 청산에서 제품개발을 하는 해외영업부에 근무하면서 탁월한 성과를 냈다고 한다. “당시 청산에서 가장 큰 매출 비중을 차지했던 ‘리즈크레이본(Liz Claiborne)’이라는 브랜드가 있었는데, 박 회장님이 이 기업을 유치해 청산의 외형을 입사 당시보다 10배가량 키웠다.” 기업 홍보를 겸하고있는 시몬느 이민수 기획실장의 말이다. 좋은 영업성과에 초고속으로 승진 한 박 회장에게 창업의 기회가 찾아온다.



1986년 신규 브랜드인 에스프릿(Esprit)이 청산에 사업을 같이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게 된 리즈크레이본이 경쟁심 때문인지 에스프릿과 거래하면 거래를 끊겠다고 협박해왔다. 청산은 매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던 리즈크레이본의 압박에 결국 에스프릿에 거절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에스프릿이 박 회장에게 대뜸 청산에서 독립해 창업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온 것이다. 에스프릿의 제안을 받은 박 회장은 당시 청산의 정홍덕 회장님과 상의한 끝에 창업을 결심한다. 1987년, 그렇게 시몬느가 만들어졌다. 박 회장은 시몬느를 설립하면서 하나의 원칙을 세웠다. 자신이 청산에서 오래 근무하며 경력을 쌓은 후 독립한 만큼 청산과 거래하는 핸드백 브랜드하고는 거래하지 않겠다는 거였다. 청산이 중저가 핸드백 브랜드에 집중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시몬느의 타깃을 고가 브랜드로 정했다. 시몬느가 설립될 당시만 해도 아시아에서는 중저가 핸드백 제조시장이 주류를 이뤘지만, 박 회장은 고급 브랜드시장에서 가능성을 봤던 것이다.



박 회장이 회사를 설립하고 첫 거래선으로 찾아간 곳은 당시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패션 브랜드인 ‘DKNY’였다. 시중에 판매 중이던 DKNY의 가방과 똑같은 가방을 제작해 찾아갔다. 박 회장의 핸드백 제작 실력을 보여준 후 가방을 제작해 납품할 수 있도록 요구했고, 바로 OK 사인이 떨어졌다. DKNY와 거래를 시작하며 시몬느의 신화도 시작됐다.



시몬느의 제품은 모두 해외 공장에서 생산된다. 3개 국가에 7개 공장을 두고 있다. 가장 먼저 진출한 곳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보고르라는 지역으로, 3000여 명의 직원이 일할 수 있는 공장을 지었다. 중국 광저우와 청도 공장에도 각각 5000명, 1650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베트남에도 네 개의 공장이 있다. 시몬느의 해외 공장에서 근무하는 직원 수는 총 2만6550여 명에 달한다. 뉴욕과 홍콩, 이탈리아에는 현지 사무소를 두고 있어 박 회장은 일 년의 절반가량인 5개월을 해외에서 보낸다고 한다. 아쉽게도 포브스코리아와 인터뷰가 이뤄지지 못한 이유다.



시몬느는 2003년 신사옥을 짓고 지금의 경기도 의왕시 고천동으로 사옥을 새로 지어 본사를 옮겼다. 시몬느의 본사는 소재와 제품을 개발하는 연구개발(R&D)센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본사를 옮기는 일도 박 회장이 직접 챙겼다고 한다. 신사옥을 지을 부지 선정에 있어서도 담당 임직원에게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고 한다. 우선 2~3만 평정도 되는 부지를 찾아 연구동과 산책로, 카페테리아 등이 있는 캠퍼스 오피스를 만들라는 거였다. 그리고 제품개발을 위해 일 년에 4~5번 시몬느 본사를 찾는 바이어들을 고려해 공항과의 거리가 1시간 이내, 서울 시내까지 이동거리가 1시간 이내여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이 실장은 “서울 근교는 대부분 그린벨트로 묶여 있어 조건에 부합하는 부지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고 했다. 발품을 팔아가며 찾아다닌 결과 지금의 의왕시 고천동에 있는 3000평 부지에 시몬느가 둥지를 트게 됐다. 사옥 건축 설계에 있어서도 박 회장은 사전에 콘셉트 스케치를 15페이지가량 준비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고 한다. 박 회장이 제시한 콘셉트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시몬느 본사는 2003년 대한민국 건축대상을 받기도 했다.



핸드백 제조업체로 세계 최정상 자리에 오른 시몬느지만 박 회장의 도전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제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자체 브랜드를 육성하기로 한 것이다. 이민수 실장은 자체 브랜드를 육성하게 된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과거에는 우리의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한국의 국격과 문화적 성숙도를 고려했을 때 한국에서 명품 핸드백 브랜드가 탄생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에서 명품 핸드백 브랜드가 나온다고 해도 세계 어느 나라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로 한국의 경제 능력이나 문화가 높아졌다고 판단했습니다.”



미래 성장동력은 자체 브랜드 ‘0914’





시몬느의 첫 번째 독자브랜드인 ‘0914’는 오는 9월 14일 공식 론칭을 앞두고 있다. ‘0914’는 시몬느가 ODM 업체에서 OBM(Original Brand Manufacturing) 업체로 거듭나기 위한 첫걸음이다. 시몬느의 새로운 핸드백 브랜드 이름인 ‘0914’에는 박 회장의 추억이 담겨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인 1984년 9월 14일 4년 전, 헤어졌던 여자 친구와 운명적으로 재회하고 백년가약을 맺었다. 박 회장은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신규 브랜드의 이름을 ‘0914’로 정했다고 한다.



시몬느는 ‘0914’를 명품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서둘지 않고 천천히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갈 계획이다. 이민수 실장은 “명품 브랜드를 만드는 일은 급하게 진행해서는 안되는 프로젝트임을 잘 인지하고 있습니다. 10년 혹은 20년이 걸릴지 모를 장기프로젝트이지만 한국에서 글로벌 핸드백 명품 브랜드의 탄생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차분히 진행할겁니다.”



시몬느는 신규 브랜드 론칭에 앞서 2013년 10월부터 2년간 ‘BAGSTAGE展 by 0914’라는 아트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아트프로젝트는 총 641일간 회화, 설치, 사진, 디자인, 퍼포먼스의 시각 예술은 물론 문학과 음악 등의 장르를 포괄한 9차례의 전시회를 연다. 지난 3월에는 7번째 전시인 ‘가방의 기억’이 전시됐다.



박 회장은 『시몬느 스토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현재 내가 하는 일이 꿈을 이루기 위한 초석임을 아는 사람만이 열정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기업과 리더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에 충실한 것 못지않게 비전을 꿈꾸고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 비전과 미래가 성공을 불러오는 열정을 이끌어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지금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또 한 번의 도약을 위해 도전하는 이유가 아마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글=정혜선 포브스코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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