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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친일파에게 치명상 입은 아베 총리

이철호
논설실장
한국 사람이라면 지난 7일 세계 역사학자 187명의 공동성명을 모두 반겼을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군 위안부 왜곡을 비판하는 든든한 우군(友軍)이 생긴 셈이다. 도쿄 특파원을 지낸 필자의 경험에서 보면 한편으로 놀라웠고, 한편으론 부끄러웠다. 공동성명에 서명한 교수들의 성향을 대충 알기 때문이다. 그들도 성명 두 번째 문장에서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에게 일본은 연구의 대상일 뿐 아니라 제2의 고향”이라며 스스로 친일(親日) 학자임을 고백하고 있다.



 물론 서명 학자들은 다양하게 섞여 있다. 『히로히토 평전』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허버트 빅스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전쟁에 실제 가담한 행동파 군주였던 히로히토 일왕을 단죄하지 않은 게 역사왜곡의 시작”이라는 입장이다. 고교 시절 동네 도서관에서 군 위안부 책을 읽은 빅스는 하버드대에서 일본사를 전공하면서 외길을 걸었다. 그는 “스스로 과거사를 반성한 나라는 거의 없으며 독일은 예외적 사례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서독 정치인들은 프랑스와 나치를 혹독하게 비판한 동독을 의식해야 했고, 과거사를 반성할수록 국내외 정치적 위상이 오르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나치와 단절했다고 풀이한다. 하지만 빅스는 일본의 자발적인 반성 가능성에는 회의적이다.



 서명 교수 가운데 오히려 그는 드문 사례다. 훨씬 많은 쪽이 친일파다. 하버드대의 에즈라 보겔은 1979년 『일등국가 일본(Japan as Number One)』을 쓴 이후 줄기차게 일본을 옹호해온 ‘뼛속까지 친일파’다. 스탠퍼드대의 대니얼 스나이더도 비슷한 입장이다. 그는 한·중·일·대만의 역사 교과서를 분석한 뒤 “일본이 가장 객관적”이라며 “주변국이 일본 역사 교과서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던 인물이었다. 또한 서명 교수 중에는 일본인 배우자를 둔 경우가 적지 않고, 한국계는 단 1명이지만 일본계 교수는 무려 20명이나 포함돼 있다.



 공동성명의 충격은 엄청났다. 성명 전문까지 자세히 보도한 아사히신문을 제외하면 모든 일본 언론이 집단 난독증에 빠진 분위기다. 공동성명의 알맹이는 쏙 빼고 “한·중의 민족주의를 비판했다”며 열심히 물타기를 하고 있다. 물론 서명 학자들도 나름 일본을 배려했다. 당초 아베 총리의 방미 전에 공동성명을 발표하려다 귀국 이후로 미루었다. 그럼에도 일본 관방장관은 어제 “노 코멘트”라 했다. 아베 총리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는 그동안 “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 여부는 역사학계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일본 최고 권위의 역사학연구회에 이어 미·유럽·호주 학자들까지 “일본군의 관여 아래 강제 연행된 위안부가 존재한 것은 확고한 사실”이라며 확인사살을 했다. 전 세계에서 이들을 능가할 역사학자들이 없는 만큼 아베 총리의 논리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들어온 서명파 교수는 스탠퍼드대의 피터 두스다. 그는 “일본이 한국을 보호국에서 식민지로 만든 것은 필연이 아니었으며 한국 엘리트들이 안정된 세력을 형성하고 일본에 도움을 요청했다면 독립을 보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두스는 책 서문에 “나는 한국어를 모른다”며 연구 한계를 인정했지만 그의 이론은 미국의 동아시아사 학계에서 교과서로 대접받고 있다. 아직 이를 압도할 만한 영어로 쓰인 반박 논문이 눈에 띄지 않는 게 서글픈 현실이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우리 역사학계가 저항 민족주의에 갇혀 있을 동안 뜻밖의 연구 성과들은 일본의 야마베 겐타로(山邊健太<90CE>·1905~77)가 캐냈다. 그는 갑신정변, 명성황후 시해, 병합 과정의 숨겨진 진실을 1차 사료를 통해 파헤쳤다. 일본군의 잔혹한 동학혁명 진압과, 그 핑계로 경복궁을 어떻게 불법 유린했는지도 생생하게 입증했다.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가 아니라는 사료 역시 그가 처음 건져 올렸다. 이 모두 야마베가 평생 일본 국회 헌정자료실에 파묻혀 살면서 왜곡된 공문서 더미 사이에서 발굴해 낸 소중한 기록들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가 초등학교 졸업의 학력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더욱 존경스럽고, 우리 손으로 우리 근세사를 제대로 바로잡지 못하는 게 부끄러울 따름이다.



이철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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