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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빈곤 심각 … 재정 동원해 복지·성장 선순환 모색할 때

중앙포토
충청 대망론, 호남 총리론, 호남정치 복원 등 최근의 한국 정치는 지역주의 담론으로 점철돼 왔다. 이 상황에서 여야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대한 합의에 도달했다. 아직 국회 통과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한국 정치가 퇴보하고 있다는 암울한 전망 속에 오랜만에 의미 있는 여야 합의를 이룬 것이다. 정치 발전에 대한 한 가닥 희망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합의 내용에 대한 여야의 동상이몽과 당·청 갈등으로 국회는 공전하고 있다. 합의 내용은 크게 공무원연금 개혁,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라는 세 가지 사안으로 돼 있다. 얼핏 보면 별개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복지국가에서 차지하는 연금의 비중을 고려하면 동일한 주제들이다.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선 총사회복지지출 가운데 연금을 위한 공적 지출의 몫이 가장 크다. 노후 생활보장에서 연금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7%로 OECD 국가 중에서 이례적으로 높다. OECD 평균은 12.8% 정도다.

이는 경제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한국 경제가 장기불황에 빠지면서 민간소비의 부진이 많이 회자돼 왔다. 소비 정체의 원인으로 주로 가계부채와 실질임금 정체가 거론되지만 노인 빈곤도 은폐된 소비 침체의 한 축이다. 노령층 빈곤은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에 심각한 걸림돌이다.

왜 한국의 노령층 빈곤이 이렇게 심각한가. OECD 자료인 『한눈에 보는 연금』(2013)은 “한국의 고령 노인 빈곤율이 매우 높은 것은 1988년에야 국민연금제도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0년대 중반 (이전) 은퇴자들은 (연금) 수급액이 전무하거나 미미하다”고 분석했다.

칭찬획득과 비난회피 위한 연금정치
그럼 이 같은 연금정책을 둘러싼 정치는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 미국의 정치학자 폴 피어슨은 이를 ‘칭찬획득의 정치(politics of credit claiming)’와 ‘비난회피의 정치(politics of blame avoidance)’로 유형화했다. 칭찬획득의 정치란 선진국에서 복지정책의 확대가 가능한 시기에 정치인이 더 많은 지지층을 확보하기 위해 인기 있는 정책을 추진하는 정치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정책’이라면 포퓰리즘으로 매도되곤 하지만 이는 선진국 복지정책에 대한 무지나 오해에 불과하다. 또 비난회피의 정치란 정부·여당이 차기 선거의 패배를 우려해 대중의 복지 손실을 피하는 정치를 말한다. 여기서 복지 손실이란 연금의 소득대체율 인하 또는 보험료율의 인상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회복지 지출의 점증적인 증가 때문에 누적되는 국가부채에 직면한 정치인은 사회복지 지출의 삭감을 고려해야 하는 압력에 처하게 된다. 이때 재정안정화(재정건전성 확보)의 논리가 대두하는 게 일반적이다. 재정건전성에 역점을 두는 정책은 유권자에게 인기를 얻기 힘들다.

따라서 정부·여당은 연금정책의 목표 설정 과정에서 비난회피 정치와 재정합리화 논리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 비난회피 정치를 계속 추진하면 재정합리화는 어려워지고, 반대로 하면 차기 선거의 고전을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정치의 내용 변화는 어디까지나 복지 선진국의 경험이고, 복지 후진국인 한국의 경우엔 수정이 필요하다.

한국에선 국민연금제도가 1988년에야 도입됐지만 그 토대는 유신정부 초기인 73년 국민복지연금법에서 비롯한다. 당시 여러 이유로 법 시행이 유보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최고 정책결정권자가 3%의 고용자 부담 보험료를 기업의 부담으로 판단했다고 추정된다. 반론도 있겠지만 여하튼 권위주의 정치에서 국가정책의 유보는 결국 대통령의 최종 결정이다. 당시의 정치 상황에선 ‘칭찬획득의 정치’라는 개념도 없었지만 국민연금제도가 계획대로 실행됐다면 박정희 대통령은 산업화와 더불어 복지화의 선구자로도 칭송받았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연금 개혁도 재정안정화의 논리에 경도됐다. 그 때문에 칭찬획득이나 비난회피의 정치보다는 ‘비난을 자초하는 정치’로 일관했다(『복지국가론과 노무현 정부의 사회정책 비판』). 노무현 정부 연금정책의 실책은 공무원연금 개혁의 유보였다.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미미하게라도 해소할 수 있는 기초연금의 도입도 야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이 먼저 제안했다.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야당 주도의 기초연금을 도입한 국민연금법 수정안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정부 재정부담이 급격히 늘기 때문에 전체 재정구조를 개편하지 않는 한 시행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근거로 야당이 재원 마련에 대한 대안 없이 선심성 정책으로 연금정책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2007년 7월 통과하자 언론은 ‘용돈연금 개악’ ‘정치야합 연금개악’ ‘반쪽짜리 개혁’ 등으로 비난했다. 현재의 여야 합의에 대한 비난과 유사한 양상이지만 지금은 당시 연금 개혁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일반적이다. 마찬가지로 이번에 도달한 여야 합의가 정책으로 시행된다면 수년 후의 평가가 바뀔 수도 있다.

국제 비교에서 유별나게 높은 노인 빈곤율의 1차 책임은 권위주의 정치의 결과인 국민연금제도의 유보였다. 2차 책임은 노무현 정부 연금 개혁의 부정적인 결과다. 당시 정부 실세였던 지금의 야당 대표는 공무원연금 개혁의 유보와 국민연금 사각지대 방치에 대한 책임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국민연금 제도를 유보시킨 부친 박정희 대통령의 책임을 인식해 결자해지의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만약 여야 합의가 결국 파기돼 정치가 다시 만성적인 정쟁과 지역주의로 회귀된다면, 그 책임이 누구에게 귀속될지는 자명하다. 마찬가지로 호남 신당이나 새로운 진보세력도 여야 합의를 방관하지 말고, 국민 대다수가 관련된 국민연금 정책의 대안을 제시해야 야당 분열의 비난을 면할 수 있다.

유신 뒤 국민연금제도 유보 아쉬워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합의의 단서는 여야와 정부 모두 경직된 재정건전성 논리에서 벗어나 보다 높은 차원인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이라는 관점으로 전환함으로써 찾을 수 있다. 노무현 정부가 국민연금 개혁을 주도할 당시 OECD의 많은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연금제도의 재정 방식인 국가보조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가보조가 도입되면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 폭도 재조정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문제를 둘러싼 세대갈등도 완화시킬 수 있고, 또한 연금기금 고갈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국민연금을 개혁한다면 국가보조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물론 국가보조가 실현되면 정부 지출이 증가되므로 조세부담률이나 국가부채비율이 올라가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는 선진국의 경험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이 2% 미만으로 가장 낮은 네덜란드의 국가부채비율은 2010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의 63%다. 이에 비해 한국의 국가부채비율은 33%에 불과하지만 노인 빈곤율은 47%에 달한다. 국내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독일 슈뢰더 정부의 2005년 ‘하르츠 개혁’도 국가보조를 기본으로 삼았다. 독일의 국가부채비율은 82%에 달한다.

이처럼 연금 강화와 재정건전성 확보는 상호 배타적인 역학관계에 있다. 이 난제를 풀기 위해선 여야, 그리고 청와대가 만나 3자 회담을 할 필요가 있다. 별 소득이 없었던 지난 3월의 3자회담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말이다. 연금 개혁의 실질적 추진을 위해선 정쟁에 앞서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대타협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국영 성균관대 학부에서 경제학을,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뒤 독일 콘스탄츠대에서 사회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는 『복지국가론과 노무현 정부 사회정책 비판』 『공황』 『자본주의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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