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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고유권한 인정하되 과정 공개로 의혹 없애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주재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통령 특별사면제도의 개선을 주문했다. 박종근 기자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대통령 특별사면을 둘러싼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지난 4일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개선방안 마련을 지시하면서다. 박 대통령은 “사면권이 대통령의 헌법상 고유권한이라고 해도 마음대로 행사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스스로 헌법이 보장한 권한의 ‘셀프 개혁’을 주문한 것이다.

 여당 실세들에 대한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이 불거지자 새누리당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노무현 정부 때 두 차례나 석연찮은 특사를 받았다”며 역공에 나섰다. 성 전 회장에 대한 특사가 이번 의혹의 단초가 됐다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초점을 흐리려는 국면전환용 정치공세”라며 반발한다.

 학계에선 박 대통령의 ‘셀프 개혁’에 후한 점수를 주진 않는다.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기왕 제도 개선에 나섰다면 제대로 된 결과물을 내놔야 한다고 주문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위기만 모면하고 보자는 식으로 용두사미 논의가 돼선 안 된다”며 “남용을 막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48년 헌법 제정 당시부터 인정
우리 헌법은 1948년 제정 당시부터 대통령의 사면권을 폭넓게 인정해 왔다. 사면은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으로 나뉜다. 일반사면은 범죄 종류를 지정해 해당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형 선고 효과를 소멸하거나 공소권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반드시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95년 이후 한 번도 행사되지 않았다.

 특별사면은 특정인에 대한 형 집행이나 기소를 면제해주는 권한이다. 정치적 부담이 있지만 국회 동의가 필요 없어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 최근 논란을 빚은 사면도 모두 특별사면이었다. 이 때문에 부정부패를 저지른 대통령 측근의 구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엔 정치범에 대한 대규모 구속과 사법처리가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면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입법·사법부가 권력의 통제하에 있던 시절이어서 일반·특별 사면이 뒤섞여 임의대로 행사됐다. 권력자는 민심을 달래거나 정치범에 대한 국내외 압박 수위에 맞춰 정치적 사면권을 행사했다.

 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지하 시인은 이듬해 유신헌법 국민투표 가결을 기념한 석방 대상(형 집행정지)에 포함돼 출감했다. 그는 “종신형을 받았는데 벌써 나오다니 시간이 미쳤든지 내가 미쳤든지 둘 중 하나가 미친 것 같다”는 소회를 밝힌 뒤 형 집행정지가 취소돼 재수감됐다. 하지만 2년도 지나지 않아 9대 대통령(박정희) 취임 특사로 징역 20년으로 감형됐다. 사법권 자체가 무력하던 시절의 코미디다.

2007년 사면법 개정에도 견제 안 돼
김영삼 정부는 집권 초기 서슬 퍼런 사정(司正)으로 대중적 인기를 모았지만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은 물론 박철언·엄삼탁씨 등 비리사건 연루자에 대해 특사를 단행해 논란을 빚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권노갑 전 의원, 안희정(현 충남지사)씨 등 측근 구제용 특사를 했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 아들 현철씨와 서청원 전 의원 등 전 정권과 야당 거물급 정치인을 포함시켜 특사권을 정치적 협상 도구로 악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말 비판여론에도 아랑곳 않고 천신일 전 세중나모 회장,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 측근들을 사면해 ‘셀프 사면’ 논란에 휩싸였다.

 오랜 논란만큼이나 대통령 특별사면권의 남용을 막기 위한 학술적 논의도 상당 부분 이뤄진 상태다. 학계에선 우선 현행 사면법에 규정된 사면심사위원회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48년 법 제정 이후 한 차례도 손댄 적이 없던 사면법은 2007년에야 처음 수술대에 올랐다. 법무부에 사면심사위원회를 두게 해 형식적이나마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에 대한 견제장치가 처음 마련됐다.

 하지만 법무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한 9명의 심사위원 중 과반수인 5명이 현직 공무원이고, 그나마도 법무부 국·실장급과 대검 검사장급 등 검사 일색이다.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기 어려운 인적 구성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사면심사위원 수를 늘리고 4명에 불과한 민간위원 비중도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사면이 형사사법 절차의 예외적 행위인 만큼 사법부나 국회의 추천위원이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학계에선 특별사면권 남용을 막으려면 사면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위원 명단과 회의록, 심사 내용을 즉시 공개해 대통령이 어떤 인물을, 어떤 이유에서 사면하려 하는지 국민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헌법이 규정한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사면권을 직접 통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학계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현행 헌법(79조 1항)은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면권을 전통적 은사(恩赦)권으로 보는 학자들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는 쪽에 무게를 둔다.

 서구 형사사법체계의 사면권은 절대왕정 시대 국왕의 은사권에서 유래했다. 세계 최초로 헌법에 대통령의 사면권을 명시한 미국도 의회 탄핵을 제외한 모든 연방범죄에 대해 사면권을 인정한다. 2001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날 측근들에 대한 사면을 단행하면서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법학계는 격론 끝에 ‘헌법을 고치지 않고선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간접 통제 vs 직접 통제’ 엇갈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의 사면권한을 직접 제한하는 건 위헌 요소가 많다”고 지적한다. 장 교수는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안은 인사청문회처럼 사면심사위 논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을 갖게 하는 절차적 통제”라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현행 헌법하에선 대통령 스스로의 절제를 국민이 요구하고 사면심사 절차를 엄격하고 투명하게 고쳐 여론의 간접 통제를 받게 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역대 정권마다 임기 막판 ‘보은성 특사’를 되풀이했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을 직접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우리 헌법이 대통령의 사면권을 인정하면서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라는 단서조항을 달았기 때문에 법률로 사면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논리다. 직접 통제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반복되는 특별사면권 남용을 막기 위해 부정부패나 권력형 비리 같은 특정 범죄, 정치인과 대통령 측근, 재벌 총수 등 특정인에 대해선 특별사면 대상에서 제외하고 횟수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어떤 헌법기관의 고유권한도 민주적 통제의 예외일 순 없다”며 “우리 헌법에 일반사면의 명문 규정은 있지만 특별사면은 따로 규정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차제에 사면법을 개정해 특별사면 자체를 폐지하는 것도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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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