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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대체 고가 약속 … 코레일은 “우리땅만 망가져”

서울역사(驛舍)를 나서면 서울역고가가 한눈에 들어온다. 만리동에서 남대문시장까지 이어지는 높이 17m의 차도는 근대화의 상징이다. 개통 당시(1975년)만 해도 머리 위로 꼬리를 물며 빌딩 숲으로 이동하는 차량행렬을 보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40년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던 서울역고가는 운명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서울시 진단 결과 안전등급 D(긴급 보수나 사용제한 검토)로 나타나 그대로 둘 수 없는 지경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당초 허물기로 했던 서울역고가를 보존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을 방문해 서울역고가 공원화 구상을 밝혔다. 뉴욕의 폐(廢) 고가철로를 활용한 공원인 하이라인 파크(High Line Park)를 모델로 내세웠다. 올 1월엔 이런 내용의 ‘서울역 7017 프로젝트’를 공식 발표했다. 2017년까지 사업을 완료해 서울의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본격적인 사업 시작을 앞두고 서울시는 오늘(10일) 하루 서울역 고가도로에 인조잔디를 깔아 시민에게 개방한다.

그런데 시민들의 호응을 기대했던 서울시는 복병을 만났다. 남대문시장 상인과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은 “서울역의 동-서를 잇는 고가가 막히면 인근 교통이 혼잡해져 불편이 심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상인들 또한 “서울 산업도로의 상징이자 삶의 터전이어서 공원화는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래도 서울시는 오는 10월 예정대로 공사를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45년 풍상의 세월을 함께한 서울역고가는 과연 불통과 소통 중 어느 길을 가게 될까.

옷·자재 옮기는 퀵서비스의 고속도로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만리동고개. 서울역(서부역)까지 이어진 주택가엔 ‘속옷 빼곤 다 만든다’는 봉제공장 2000여 개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좁은 골목길 곳곳에는 옷을 만들고 난 자투리 천을 쌓아놓은 모습도 보인다.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칙칙’ 스팀 다리미 소리와 옷감과 자재를 실어 나르는 오토바이 소리가 묘하게 교차된다.

오토바이 퀵서비스 기사 김모(51)씨는 7년째 만리동~남대문시장을 오간다. 옷감을 봉제공장에 넘겨주고 완성된 옷을 시장 가게로 옮긴다. 거리와 무게에 따라 건당 1만~1만5000원을 받는다. 만리동과 남대문시장을 잇는 서울역고가가 그에겐 일터와도 같다. 김씨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고가를 넘나든다”며 “몇 번 오가느냐에 따라 버는 돈이 달라지니 최단 거리인 고가가 내겐 돈줄”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기사 박창규(71)씨는 “고가가 공원이 되면 누군가는 그저 우회하는 시간이 10분 늘어날 테지만 우리는 생계를 위협받는다”고 말했다.

봉제공장 입장도 마찬가지다. 보통 오전 8시에 옷 제작 주문을 받고 10시쯤 원단이 들어온다. 오후 9시까진 남대문·동대문 시장에 물건을 넘겨야 지방에서 올라온 보따리상들에게 판매가 가능하다. 30년째 공장을 운영해온 미미패션의 정종진(46) 사장은 “디자인을 받아서 하루 만에 옷을 만들어야 하기에 일분일초를 다툰다”며 “서울역고가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창신동 쪽 봉제공장에 일감을 빼앗길 것”이라고 걱정했다.

남대문시장 상인들의 반대는 더하다. 특히 퇴계로에 인접해 130여 개 상가가 입주한 꽃 도매시장(대도꽃종합상가)은 ‘생존권이 걸린 문제’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결혼식이나 장례식 같은 경조사에 오토바이와 소형트럭을 이용해 배달을 한다. 30년 넘게 가게를 운영해온 방민자(57·여) 꽃상가 운영회장은 “공덕동이나 마포 쪽에 예식이나 장례가 있으면 서울역고가를 넘어 화환 배달을 갈 수밖에 없다”며 “그리 못 간다면 사실상 가게가 다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주장했다.

코레일 “대체 도로가 역 이미지 훼손” 반발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역고가를 지나는 차량은 하루 4만6000여 대. 고가가 보행로로 바뀌면 이들 차량이 광화문~염천교~서소문로 등으로 우회해야 한다. 서울시 시뮬레이션 결과 서울역고가가 막히면 만리동에서 남대문시장까지 현재보다 4~7분가량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이마저 인근 도로를 정비하고 신호체계를 바꿨을 때를 전제하고 있다. 상인들은 시뮬레이션 결과와 달리 주변 교통이 혼잡해지면서 남대문시장이 ‘도심 속 섬’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서울시도 공원화로 인한 교통 혼잡은 인정한다. 박 시장은 지난달 17일 중구 일대를 방문해 현장시장실을 열고 “교통 혼잡을 방지하기 위해 신호체계와 차로를 개선하고 대체 도로 건설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7일 시는 “북부 역세권 개발과 연계해 대체 고가를 건설하겠다”며 “코레일과 함께 전담팀을 구성하겠다”고 대책을 내놓았다. 서울역고가가 지나는 4분의 1가량의 땅 주인이 코레일이기 때문이다.

북부 역세권 개발 사업은 2008년 서울시(당시 오세훈 시장)와 코레일이 야심 차게 발표했다. 낙후된 북부 역세권 부지에 민간 사업자를 선정해 컨벤션센터를 짓고 고가도로를 건설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사업은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월 한화역사컨소시엄이 사업에 단독 입찰했다가 손을 뗐다. 고가도로 설치 후 서울시에 기부채납하는 조항은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땅 주인인 코레일은 서울시의 일방적인 발표에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대체 고가도로를 설치하면 서울역 이미지가 훼손되고 부지 단절로 공간 활용에 지장을 부른다”는 것이다. 서울시로서는 또 한번 불통 행정이란 비판을 받게 된 셈이다. 남대문시장상인회 이민호 총괄본부장은 “시간이 걸리고 어렵더라도 대체 도로 건설이 확정된 후 고가를 공원화하지 않으면 5만 명 상인 모두가 끝까지 반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심 재생은 속도보다 소통 중요
서울시는 공원화 사업의 편익이 크다고 설명한다. 지난 1월 서울연구원의 환경개선 편익 분석에 따르면 공원화 사업에 드는 돈(2124억원)보다 편익(3887억원)이 1.8배 큰 것으로 나타났다. 편익은 ^보행자 공간 확보 ^녹지축 형성 ^녹지·공원화 ^고가 조망 등의 항목을 갖고 주민들에게 매년 얼마나 지불할 용의가 있는지를 설문조사한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변 상인이나 주민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대권 도전을 염두에 둔 박 시장이 ‘이명박의 청계천’처럼 임기 내에 프로젝트를 끝내려 조급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앙대 이정형(건축학) 교수는 “도심 재생 같은 새로운 형태의 도시 설계는 거버넌스를 만들어 가면서 해야 하는데 왜 서두르는지 모르겠다”며 “모델인 하이라인 파크만 해도 10년 이상 주민과 뉴욕시가 협의를 통해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발시대에는 무리를 해서라도 대형 프로젝트를 밀어붙였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박 시장도 시민단체 활동을 하며 그런 걸 제일 비판했는데 무슨 이유인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홍익대 추상호(도시공학) 교수는 “보행자를 위한 도심공원 조성 취지는 좋지만 동-서 축이 막힌다는 교통에 대한 대안 고민이 없다”며 “공원화를 먼저 하기보다는 북부 역세권 사업과 같이 가는 게 옳은 방향 같다”고 말했다.


장주영 기자, 나은섭 인턴기자 jy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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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