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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물자 팔던 시장, K패션 중심으로 성장

1950년대의 생명력과 역동성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공간은 시장이다. 자유시장이라 불리다 전쟁 중 개칭된 부산 국제시장은 피란민의 생활터전이었다. 원조물자와 군수품, 그리고 민간이 생산한 물자가 함께 거래되면서 전시(戰時) 유통 중심지로 성장했다.

 서울 수복 후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남대문시장도 다시 열렸다. 돌아온 상인들은 미군이 남기고 간 군용천막을 뜯어 노점을 차렸고, 북에서 온 실향민들도 장사에 뛰어들었다. 남대문시장은 이내 꿀꿀이죽 같은 먹거리부터 구호물자와 군수품 등이 거래되는 상업중심지로 성장해 이때부터 “남대문시장에 가면 박격포도 구할 수 있다”는 말이 회자됐다. 기와지붕을 얹은 동대문시장 건물도 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됐다. 그러나 피란처에서 돌아온 상인들은 천막을 치고 헌 옷가지와 가재도구를 물물교환하며 장사를 시작했다. 실향민들도 청계천 변에 천막을 치고 옷을 짓거나 군복을 염색·탈색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 인천의 한 시장 풍경.
 오늘날까지 전국적 명성을 누리고 있는 이 시장들은 전쟁뿐 아니라 화재의 참화를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천막이나 판잣집에서 촛불을 켜놓고 장사를 하고, 전기 시설을 갖췄다고 해도 누전이 빈번해 화재에 취약했던 것이다. 국제시장은 1950년 12월에 이어 53년 1월에도 대화재를 겪었다. 한겨울에 발생한 화재가 영세 상인들에게 끼친 물적 손해와 심리적 충격은 엄청났다. 그러나 53년 화재 뒤에는 전시임에도 구호를 위한 돈과 물품이 곳곳에서 답지했고, 부산시와 상인들의 노력으로 건물이 재건되고 상가의 면모도 일신됐다. 재건된 현장을 둘러본 이승만 대통령이 “우리 국민도 남의 원조나 지시를 받지 않고 스스로 계획을 세워 실천할 능력이 있다”고 칭찬했다.

 남대문시장에는 54년에 화재가 일어나 1000여 개의 점포가 불타고 60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불과 한 해 전에 국제시장 화재를 겪었던 부산 시민들은 교회 건물 등에 수용돼 있는 이재민을 돕기 위해 10만환의 성금을 모아 전달했다. 동대문시장에도 58년에 세 차례나 화재가 발생해 판자로 지은 상가들이 소실됐다. 그러나 62년에는 잿더미 위에 대형 콘크리트 건물을 세워 현재의 평화시장을 개설했고, 이후 주변에 여러 건물이 들어서면서 오늘날의 동대문 종합시장으로 발전했다.


최대석 이화여대 정책과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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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