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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의 'Big Questions'] 픽션 만드는 능력 갖게 된 인류 맹수 먹잇감에서 神처럼 진화

3 피터 브뤼겔의 바벨탑(1563년).
동물의 먹잇감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나도 간단한 문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 영장류로부터 분리된 ‘호모(Homo)’ 속의 종들 중 유일하게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우리 인간. 꼿꼿한 허리 덕분에 걸어다닐 수 있고, 월등하게 큰 두뇌 덕분에 현실을 인식하고,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 뒷다리만을 이용해 오랜 시간을 걸어다닐 수 있어 손으로 물체를 잡고 도구를 사용한다. 동아프리카를 고향으로 둔 인간은 남극을 제외한 지구의 모든 대륙을 정복했으며, 현재 약 72억 명이 살고 있다. 점점 더 커지는 두뇌를 가진 아이를 출산하기 위해 여자의 골반은 커졌고, 뇌는 피질 면적을 최대화하기 위해 호두같이 접히고 구부러진 표면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나마도 한없이 커지는 두뇌의 크기를 감당할 수 없었기에, 인간은 어느 동물보다 더 일찍 태어난다. 말·소·사슴. 모두 태어난 지 몇 시간 만에 스스로 어미를 쫓아가지만, 인간은 1년이 지나서야 첫걸음을 걷는다. 그것도 너무나 어설프게 말이다.

원시인 두개골에서 발견된 두 개의 구멍엔 검지호랑이 이빨이 정확히 맞아 들어간다.
그렇다. 진화적으로 우리는 모두 미숙아인 것이다. 마치 바둑판같이 계획된 대한민국 신도시에서 태어나 아침드라마를 보는 어머니의 보호 아래 자란다면 그 1년이 문제될 리 없다. 하지만 아프리카 초원에 살던 우리의 조상을 기억해 보자. 태어나서 1년 넘게 엄마의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 원시인의 두개골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는 두 개의 구멍들. 검지호랑이의 이빨이 정확히 맞아 들어간다.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무시무시한 육식동물들에겐 간편한 먹잇감이었던 것이다.

더 이상 배고픈 동물의 야식이 되고 싶지 않다면. 많이 모이면 된다. 먼 훗날 그리스 철학자 파르메니데스는 ‘하나와 여러 가지’로 나누어지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되지만, 우리 조상들에게 ‘하나와 여러 개’는 너무나도 현실적인 문제였다. 혼자서는 죽지만, 많으면 살아남는다.

인간 행동은 이기·이타주의 갈등의 산물
하지만 많이 모이면 또 하나의 문제가 생긴다. 그 많은 사람 중 누구를 믿어야 할까. 나와 비슷한 유전을 공유하는 가족과 친척 위주 공동체의 탄생이었다. 진화의 핵심은 내 유전자의 생존이다. 하지만 나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이들은 모두 미숙아로 태어난다. 아이를 만들고 바로 도망가 새로운 아이들을 만들면 될까. 미숙아로 태어날 아이를 9개월 동안 자신의 배 안에 심고 살아야 할 여자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옵션이다. 그렇다면 여자와 아이를 위해 먹이를 구하고 지켜줄 남자가 필요하다. 남자 역시 굶어 죽을 여러 명의 아이를 여러 여자를 통해 가지는 것보다 자신의 유전을 물려받은 소수의 아이들을 굶지 않도록 하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인간의 모든 행동은 이 둘 사이의 끝없는 갈등의 결과물이다. ‘자기집단중심적 이타주의(parochial altruism)’. 나와 비슷한 유전을 가진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돕는 것이다. 어머니의 희생, 기러기 아빠의 헌신, 외할머니의 사랑, 고향 사랑, 애국심. 모두 이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동시에 함께 시작된 인간의 추한 모습들: 타인의 아픔이 주는 기쁨, 왕따, 인종차별, 민족주의, 십자군전쟁,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

1 석고를 바른 해골. (기원전 7000~8000년. 이스라엘 예리코에서 발견) 2 데미언 허스트의 2007년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하여’.
뇌 속의 지휘자가 멈추면 인간은 로봇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고 타인을 경계한다. 침팬지·들개·펭귄도 보여주는 행동이다. 그렇다면 인간 역시 동물일 뿐일까. 물론 인간은 동물이다. 하지만 아주 독특한 동물이다. 왜냐고. 인간이 있기에 빨간 장미는 빨갛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은 달콤하기 때문이다. 한번 상상해보자. 우주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빨강을 빨강으로 인식하고, 달콤함을 달콤함으로 느끼는 인간 없이 빨강은 빛의 주파수일 뿐이고, 달콤함은 화학적 반응에 불과하다. 고양이 시각 뇌에 전극을 꼽고 눈앞에 다양한 사물을 보여주면 시각신경세포들의 전기생리적 반응을 관찰할 수 있다.

사람도 비슷하다. 동그라미·빨강·달콤함. 모두 전기생리적 독특한 반응을 보여준다. 하지만 신경세포들의 반응은 신경세포들의 반응일 뿐이다. 인간은 전기생리학적 현상을 넘어 ‘퀠리아(qualia)’를 느낀다. 퀠리아란 무엇인가. 빨간 장미를 지각할 때 느끼는 기분. 우리 눈앞에 보이는 그 무언가를 볼 때의 느낌. 바로 이런 것들이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고 객관적인 관찰이 불가능한 주관적인 특징들. 그렇다면 퀠리아는 비과학적인 걸까.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라는 자아가 본인이 생각한다는 사실을 느끼는 퀠리아가 있기에 가능하다. 돌과 해파리는 퀠리아가 없기에 과학을 만들지 못했지만, 인간은 세상을 지각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기에 과학을 만들 수 있었다. 퀠리아는 과학의 조건이며 논리를 초월한다. 그렇다면 퀠리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임스 왓슨(James Watson)과 함께 DNA의 나선형 구조를 발견해 노벨상을 받은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은 퀠리아, 그리고 퀠리아들의 합집합인 정신을 아름다운 음악과 비교한 바 있다. 뇌가 오케스트라이고, 바이올린·첼로·피아노 연주자들이 뇌의 다양한 기능이라고 상상해보자. 지휘자 없이도 연주자들은 가지각색의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아름다운 화음은 지휘자가 다양한 악기들을 잘 조합하고 합쳐야만 가능하다. 비슷하게 시각·청각·기억·감성 같은 뇌의 기능들이 정교하게 통합되어야만 ‘정신’과 ‘자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뇌의 ‘지휘자’는 누구일까. 바로 ‘전장(claustrum)’이라는 피각(putamen)과 뇌섬엽(insular cortex) 사이 작은 영역이라고 주장해볼 수 있다. 뇌의 거의 모든 영역들과 연결되어 있는 이곳의 전기적 반응을 중단시키면 사람은 마치 로봇이나 좀비가 된 것 같은 행동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몸을 지탱하며 숨 쉬고 눈은 뜨고 있지만, 더 이상 의식적 지각이나 행동이 불가능해진다. 뇌 속의 지휘자 없이 인간은 다시 퀠리아 없는 동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공감’은 인간의 뇌가 만든 킬러 앱
눈을 뜨는 순간 세상이 보인다. 세상에서 들어오는 다양한 자극에 반응하는 신경세포들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나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낀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하지만 나 외에 다른 사람들은 누구일까. 나는 그들이 아니다. 그들이 무엇을 느끼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내 피부에 가려움은 참기 힘들지만, 1㎜도 안 되는 내 피부 바깥에서 죽어 넘어가는 타인의 고통은 나와는 상관없다. 내가 아닌 세상은 나에겐 무의미하고, 무의미한 사람들을 위해 나라는 자아가 희생하고 노력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희생과 노력이 필수인 이타적 행동 없이 인간은 영원히 혼자이기에 다시 동물의 먹이가 된다. 새로운 해결책이 필요했다. 결국 인간의 뇌는 ‘공감’이라는 킬러 앱(killer app)을 만들어낸다. 타인의 행동을 시뮬레이션하도록 도와주는 ‘거울 뉴런’, 비슷한 환경을 경험한 뇌들에게 비슷한 신경회로망을 만들어주는 ‘결정적 시기’, 언어라는 도구를 통한 지속적인 소통. 이 모두 서로의 퀠리아를 직접 느낄 수 없는 사람들끼리의 공감을 가능하게 해주었기에, 우리는 인식도, 검증도 불가능한 타인의 자아를 믿어준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얼마 전까지 배고프다며 칭얼대던 아이가 조용해졌다. 흔들어도, 꼬집어도 반응이 없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숨을 쉬지 않는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오늘 아침과 여전히 똑같이 생긴 아이. 하지만 무언가 달라졌다. 더 이상 아무것에도 반응하지 않는다면, 아이는 더 이상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일까. 더 이상 퀠리아가 없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말은, 무언가가 퀠리아를 만들어내기도, 그리고 다시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육체와 분리된 ‘영혼’이라는 가설의 탄생이었다. 몸에서 분리된 영혼은 위험하다. 집과 여자가 없는 이방인이 남의 여자와 집을 넘보듯, 몸이 없는 영혼은 나의 몸을 차지하려고 할 수 있다. 나는 나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영혼이 떠나지 않도록 몸을 보존해 주어야 한다! 이미 아무 반응을 하지 않는 몸이 여전히 살아있다고 영혼을 속여야 한다!

1만 년 전 레반트(오늘날 이스라엘·레바논·요르단·시리아)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우연한 발견을 한다. 썩어가는 해골에 진흙을 바르고 하얀 조개 껍질로 ‘눈’을 만들어주자 마치 죽은 사람이 여전히 살아있는 듯 했다. 육체를 떠나려는 영혼을 이렇게 속일 수 있지 않을까. 상상과 예술,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그 무언가를 이야기를 통해 현실화하는 문명의 시작점이었다.

오늘날 지구의 주인은 우리 호모 사피엔스이다. 하지만 아프리카를 먼저 떠난 인류의 친척은 네안데르탈인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은 단단한 뼈와 현대인보다도 더 큰 뇌를 가졌었다. 그러나 그들은 멸종했고, 그들보다 더 약하고 더 작은 뇌를 가진 호모 사피엔스는 살아남았다.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의 하라리(Yuval Harari) 교수는 ‘픽션을 만들어내는’ 호모 사피엔스의 능력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전설과 신화로 만들어진 정체성으로 똘똘 뭉친 100명, 1000명의 힘을 모아 네안데르탈인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다는 말이다.

지구 장악한 인간 ‘인류세’ 시대 열어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키고, 자신보다 수십 배 더 큰 매머드를 사냥하고, 식물의 성장과정을 제어해 농경사회를 만들어내고, 무시무시한 동물들을 가축화하고. 인류의 발전은 상상을 초월했다. 불·농사·바퀴·칼·총·돈·인쇄기술·엔진·전기·항생제·인터넷. 언젠가 단 한 사람 머리 안에서 시작된 이 생각들은 세상을 바꾸어 놓았고, 지구는 ‘안트로포센(anthropocene, 인류세)’이라 불리는 인류 위주의 세상으로 탈바꿈하였다. 맹수의 먹잇감이었던 인간의 두개골은 보이지 않는 영혼의 집을 넘어 드디어 다이아몬드 8601개로 만들어진 초고가 현대 예술작품으로 변신한다. 그렇다면 인류의 미래는 무엇인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광유전자, 브레인 리딩, 브레인 라이팅, 그리고 인공지능. 땅과 하늘 그리고 식물과 동물의 세상을 장악한 인간은 서서히 우리 자신을 변신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나약한 동물로 시작해 신이 되어가는 우리 인간.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여전히 우리만의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일까.



김대식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박사후 과정을 거쳤다. 이후 보스턴대 부교수를 지낸 뒤 2009년 말 KAIST 전기 및 전자과 정교수로 부임했다. 뇌과학·인공지능·물리학뿐 아니라 르네상스 미술과 비잔틴 역사에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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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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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