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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소련이 펼쳤던 3번의 승전 퍼레이드

9일 모스크바에서 초대형 군사 퍼레이드가 진행됐다. 제2차 세계대전 전승 70주년을 기념한 행사다. 옛 소련은 2차대전에서 가장 많은 인명 손실을 입은 피해국이다. 군인만 870만~1385만 명이 전사했다. 민간인도 전투와 관련해 700만~1200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전쟁과 관련한 기아와 질병으로 600만 명이 추가로 숨졌다. 전쟁 전 1억6852만 명이던 인구가 전란으로 2500만~3000만 명이 줄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소련은 2차대전 중 침략자와 방어자 노릇을 모두 했다. 전쟁 초기에는 나치와 손잡고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하고 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 등 발트3국을 점령하는 등 침략에 나섰다. 39년 8월23일 소련 외무장관 바체슬라프 몰로토프(1890~1986)는 독일 외무장관 요하임 폰 리벤트로프(1893~1946)와 모스크바에서 몰로토프-리벤트로프 밀약을 맺은 직후였다. 상호불가침조약과 함께 중유럽을 독일과 소련이 각각 분할하는 비밀의정서를 맺었다. 41년 6월22일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소련은 ‘어쩔 수 없이’ 연합국의 일원이 됐다.

소련의 이중성은 2차대전과 관련한 세 차례의 승전 퍼레이드가 말해준다. 첫째는 39년 9월22일 당시 브레스트-리토프스크(지금은 벨라루스의 서쪽 끝 도시인 브레스트)에서 소련군이 나치 독일군과 함께 벌인 승전 퍼레이드다. 독립국가 폴란드를 거의 동시에 침공해 영토를 절반씩 나눠 가진 직후였다. 이 도시는 몰로토프-리벤트로프 협정에서 나치독일과 소련이 맺은 세력권의 경계였다. 이로써 소련은 승전 퍼레이드를 전범국가 독일과 함께했던 유일한 연합국이 됐다.

둘째는 41년 11월7일에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렸던 혁명기념일 퍼레이드다. 당시 모스크바는 나날이 다가오는 나치 독일군의 위협에 떨고 있었다. 41년 10월2일부터 42년 1월7일까지 진행된 모스크바 전투 초기 소련군은 크게 밀렸다. 독일군 수색대가 모스크바 중심지에서 서쪽으로 30km정도 떨어진 지점까지 진출해 망원경으로 크렘린의 탑을 목격할 정도였다. 소련 최고 지도자 요시프 스탈린은 주요 행정·문화·교육 기관을 동부로 옮겼다. 절망적인 분위기에서 러시아혁명 기념일이 다가오자 스탈린은 붉은광장에서 대규모 퍼레이드를 벌이라고 명령했다.

혁명 기념 행진 직후 병사들은 붉은광장에서 곧장 최전방으로 향했다. 이 전투에서 소련군은 최대 128만 명의 병력을 잃었다. 최대 40만을 잃은 독일군은 전력약화와 동계작전을 위한 보급부진으로 밀려났다. 독일군이 39년 이후 처음으로 밀려난 전투다.

셋째가 독일의 공식 항복(서유럽 시간으로 5월8일, 모스크바 시간으로는 5월9일) 이후 한 달이 넘은 1945년 6월24일 부슬비가 내리는 붉은광장에서 벌어진 모스크바 승전 퍼레이드다. 4만 명의 병력과 1850대의 군사용 차량과 장비가 동원된 초대형 퍼레이드다. 전쟁영웅 게오르기 주코프 원수가 검열관을 맡고 모스크바·스탈린그라드·베를린 전투의 영웅인 콘스탄틴 로코소프스키 원수가 사령관을 맡은 행사였다. 재미난 것은 로코소프스키가 당시 죄수 신분이었다는 점이다. 37년 스탈린의 대숙청 당시 폴란드 간첩으로 몰려 감옥에 있다가 독일이 쳐들어오자 군사적 재능을 발휘하라고 전선에 보냈는데 전후에도 이를 풀지 않았던 것이다. 스탈린주의 공산체제의 모순을 보여주는 세 가지 퍼레이드가 아닐 수 없다.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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