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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것 ‘스틸 앨리스’

[M매거진]이제 막 50세 생일을 맞은 그의 삶은 한창 무르익었다. 그는 존경받는 언어학자이자, 단란한 가정의 아내이자 어머니다. 그런 그가 조발성(早發性)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는다. 지금껏 그가 가꿔 온 경력과 기억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말[言]을 잊고, 기억을 잊고, 끝내 자기 자신을 잊어간다. 그러나 ‘스틸 앨리스’(원제 Still Alice, 4월 29일 개봉, 리처드 글랫저·워시 웨스트모어랜드 감독)는 말한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앨리스(줄리앤 무어)’, 눈부시게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이 영화는 어떻게 희미해져 가는 삶 속에서 그토록 빛나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을까.

 


이 영화는 미국의 신경과학자이자 소설가인 리사 제노바가 쓴 동명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알츠하이머 증세를 누구보다 잘 아는 전문가답게 제노바는 소설에서 주인공 앨리스가 어떻게 기억을 잃어가고, 그로 인해 그의 삶이 어떻게 변하며, 어떤 문제를 겪고, 가족 관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솔직하고 담백하게 그렸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단어를 떠올리지 못하거나 약속을 깜빡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익숙한 길로 조깅하다 갑자기 길을 잃기도 한다. 결국 그는 대학 강단에 서는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다. 소변을 보러 집에 들어갔다 화장실을 찾지 못해 바지에 오줌을 싸기까지 한다. 앨리스가 남편(알렉 볼드윈)에게 이렇게 울부짖는다. “뇌가 죽어 가는 기분이야. 그게 느껴진다고! 내가 평생 이룬 것들이 전부 사라질 거야!” 끝내 그가 딸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앨리스의 알츠하이머는 매우 드문 가족성 질병으로, 유전될 확률이 50%다. 갈수록 그가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하는 때가 많아진다. 각자 바쁜 삶을 사는 가족들은 더 이상 앨리스의 곁을 지키고 있을 수만은 없다. 남편은 더 좋은 일자리를 위해 다른 도시로 떠난다. 앨리스의 기억이 온전했을 때만 해도 그의 걱정을 샀던 둘째 딸 리디아(크리스틴 스튜어트)가 그를 돌본다.

이 영화는 그 모든 순간을 똑바로 바라본다. 알츠하이머에 걸렸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한밤중에 깨어 목메어 우는 앨리스 얼굴을, 바지에 오줌을 싼 채 남편의 얼굴을 보며 수치심의 눈물을 터뜨리는 그의 모습을. 그러나 이 영화는 앨리스의 상실과 좌절, 무력감과 수치심을 물고 늘어지지 않는다. 앨리스는 나날이 도망가는 기억을 붙잡기 위해, 증발하는 자기 자신을 붙잡기 위해 무던히 애쓴다. 그것은 끝까지 인간으로서 품위를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잊은 뒤에도 앨리스는 여전히 자신을 표현하려 애쓰고, 새로 피어나는 생명에 감탄하며, 사랑을 느낀다. 말은 어눌하고 표정은 희미하지만, 그는 여전히 그답게 이 세상을 살아간다.
 


‘스틸 앨리스’가 알츠하이머 환자의 삶을 끝까지 인간답게 그릴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이가 리처드 글랫저(1952~2015)와 워시 웨스트모어랜드(49)였기 때문이다(두 사람은 동성 연인으로 2013년 결혼식을 올렸다). 글랫저는 2011년 이 영화의 각색 작업을 준비할 당시 루게릭병에 걸린 상태였다.

두 감독은 이 영화의 원작을 읽으며 삶을 갉아먹는 병을 앓는 앨리스의 심정과 상황에 누구보다 크게 공감했다. 운명처럼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두 사람은 원작처럼 앨리스의 이야기를 정확하고 담담하게 그려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2014년 촬영을 시작했을 때, 글랫저 감독은 양팔을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손가락 하나를 겨우 움직여 태블릿 PC의 자판을 치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었다. 글랫저 감독은 그런 상태로 23일의 촬영 기간 내내 촬영장을 지켰다. “그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이 영화를 통해 그리고 싶은 것이었어요. 촬영장에 있는 모두가 바로 그곳에서 아주 특별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실감하는 동시에, 그 힘들고 긴 시간을 위엄 있게 견뎌야 했죠.” 웨스트모어랜드의 말이다. 글랫저 감독은 지난 3월 줄리앤 무어가 이 영화로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품에 안는 모습을 지켜본 뒤, 지난 3월 세상을 떠났다. 삶을 농락하는 운명의 장난 앞에서도, 글랫저 감독은 그리고 앨리스는 끝까지 인간으로서 품위를 저버리지 않았다.


글=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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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