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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영웅 시리즈 <45> 알왈리드 빈 탈랄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KHC 회장



킹덤홀딩스(KHC)의 알왈리드 빈 탈랄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60) 회장은 ‘중동의 워렌 버핏’이라 불린다. 미국 시사잡지 타임은 투자의 귀재인 그를 지난 1997년 그렇게 명명했다. 1980년 창립해 9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KHC는 세계적 투자회사로 자산 규모가 2013년 기준 180억 달러에 이른다. 포브스지 선정 글로벌 200에 들어가는 대기업이다. 씨티그룹의 최대 주주이며 펩시콜라·애플·트위터·타임워너 등 다양한 유망 다국적 기업에 거액을 투자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알왈리드의 재산을 300억 달러로 추정했다. 2013년 12월 아라비안 비즈니스지는 알왈리드 회장이 아랍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2008년부터 매년 타임지의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인물’에 오르고 있다.

사우디 왕족으로 투자회사 창업

사우디의 왕족 출신인 알왈리드는 7살 때 부모가 이혼해 레바논에서 자랐다. 어려서 수시로 가출하기도 했는데,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의 군사학교에 들어가 엄격한 훈련을 받으면서 비로소 규칙적이고 절제된 생활을 익혔다. 그 뒤 미국 유학을 떠나 캘리포니아의 먼로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뉴욕주 시라큐스 대학에서 1985년 사회과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사우디로 귀국한 그는 왕실 가족답지 않게 작은 가건물에서 건설회사를 창업했다. 왕족으로서 특혜를 받으며 살기보다 사업으로 돈을 버는 길을 택한 것이다. 건설 수주와 부동산 투자를 바탕으로 차곡차곡 돈을 모은 그에게 오일 붐이 일던 사우디는 기회의 땅이었다. 알왈리드는 작은 성공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번 돈으로 투자회사를 만들어 전 세계를 상대로 투자에 나섰다. 성공의 문은 1991년 열렸다. 씨티그룹의 핵심인 씨티코프에 투자한 5억5500만 달러가 미국 금융 붐으로 10억 달러로 불어난 것이다.

97년에는 세계적인 미디어 그룹인 뉴스코프 지분 5%를 확보해 미디어 분야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중동의 미디어 그룹과 엔터테인먼트 그룹에도 투자했다. 이후 아메리칸 온라인·애플·모토로라 등 IT기업에도 선도적으로 투자해 거액을 벌어들였다. 미디어와 문화산업 투자를 통해 돈과 영향력 양쪽을 모두 거머쥔 셈이다. 이후 사우디를 대표하는 투자가로 자리를 잡게 됐다. 그는 운전 금지 등 사우디 여성에 대한 제약을 완화하라고 요구하는 등 사회적 발언도 수시로 하고 있다.

알왈리드는 사우디 사회에서 갈수록 더 중요한 인물이 될 전망이다. 이자를 죄악시하는 율법이 작용하는 이슬람 사회에서 금융 투자 대신 합법적인 투자로 돈을 불리는 대표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율법 때문에 사실 사우디 왕실은 1950년대까지만 해도 서방에서 준 석유 채굴 로열티를 받아 금고에 쌓아뒀다.

은행에 넣어두고 이자를 받는다는 것은 사우디 사회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사우디 왕실은 18세기 부족장인 압둘아지즈 빈 무함마드 알사우드(?~1803)와 수니파 종교개혁가 무함마드 이븐 암드 알와하브(1703~1787)의 딸이 결혼하면서 정치와 종교의 결합을 이룬 역사가 있다. 알와하브는 18세기에 시작된 수니파 이슬람의 종교개혁 운동인 살리피즘(또는 와하비즘)을 창시한 인물이다. 살리피즘은 이단적인 요소를 일절 배제하고 이슬람 본래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으로 초보수파·엄격파·근본주의 등으로도 불린다. 따라서 그 후손인 사우디 왕실에서 율법에 어긋나는 일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금융 대신 투자가 발달한 이유다. 그리고 사우디 투자의 정점에 바로 알왈리드가 있는 것이다. 유가가 떨어지고 석유 외의 수입이 필요할수록 알왈리드는 사우디 사회에서 중요성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

알왈리드가 걸어온 길

1955년 3월 7일 사우디 아라비아 홍해 연안 도시 제다에서 출생.
1977년 미국 캘라포니아주 멘로대에서 경영학 전공.
1985년 미국 시라큐스대에서 사회과학 석사 학위 받음.
1979년 중동 오일 붐(1974~85년) 시기에 사우디로 귀국. 건설회사로 사업 시작. 오일 붐 말기에 경영난에 허덕이던 사우디 상업은행 인수. 사우디-카이로 은행과 삼바(SAMBA)은행 합병. 중동의 중요한 금융사가 됨.
1991년 씨티그룹에 투자
1997년 AOL·애플·모토로라·폭스 방송 등 기술 및 미디어 회사에 투자. 포시즌 호텔 체인과 뉴욕의 플라자 호텔의 지분 소유. 런던의 사보이 호텔과 모나코 몬테카를로 그랜드 호텔에 투자.
2001년 9·11 사태 직후 뉴욕시에 10만 달러 기부.
2005년 2억5000만 파운드에 런던 사보이 호텔 구입.
2006년 미국 부동산 회사 콜로니 캐피탈과 제휴, 39억 달러에 토론토 기반의 페어 몬트 호텔 및 리조트를 인수.
2008년 에딘버러대 현대 이슬람연구센터에 16만 파운드 기부. 케임브리지·하버드 등 서구와 이슬람 문화권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 등에 많은 지원.
2009년 미디어 회사 연구 및 마케팅 그룹(SRMG)의 35% 소유.
2011년 세계에서 다음 가장 높은 건물이 될 1000m 높이의 킹덤 타워 건설 계약을 빈라덴 그룹과 체결. 트위터에 3억 달러 투자.



IMF 때 현대차에 투자 등 한국과 인연 깊어

알왈리드 회장은 지금까지 한국을 4차례 방문했다. 사우디의 인프라 구축 과정에 참여한 우리나라 건설사들과 오래 전부터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현대자동차에 1억 달러, 대우에 5000만 달러를 각각 투자한 적이 있다. 경원대에서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도 받을 만큼 한국과 인연이 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올해 10억 달러를 할당해 엔터테인먼트 분야와 유통·제약·음료·세면용품 등에 투자할 계획이라는 점이다. 모두 한국과 관련이 많은 업종이다. 알왈리드 회장은 지난 3월 중동 4개국을 순방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만난 현지 기업인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이다. KHC는 박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 중 한국투자공사(KIC)와 공동투자협력 MOU를 체결했다.

접견에서 박 대통령과 알왈리드 회장의 대화는 그가 한국에 대대적으로 투자하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박 대통령은 “반 세기 넘게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어 왔는데 미래성장 전략에 맞춰 협력관계를 더욱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며 투자를 권유했다. 알왈리드 회장은 호텔 산업이 가장 발달한 프랑스·영국·캐나다 등 3개국에 한국과 공동 투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박 대통령이 한류에 대한 투자를 부탁하자 알왈리드 회장은 “박 대통령의 문화산업 관련 이야기를 듣자마자 관심이 생겼다”며 주사우디 한국대사를 통해 관련 자료를 전달해달라고 요청했다. 알왈리드가 한국 문화산업에 대거 투자할 것인지, 한국은 그의 자금을 바탕으로 문화산업 융성의 날개를 달 것인지 주목된다.

삼성 이건희 회장보다 1.7배 부자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2013년 세계 부호 순위에 따르면 1위는 멕시코 기업인 카를로스 슬림(730억 달러), 2위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670억 달러)였고, 3위는 스페인 패션업체 자라의 창업자 아만시오 오르테가(570억 달러)였다. 킹덤홀딩스의 알왈리드 빈 탈랄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60)는 220억 달러로 26위였다. 한국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30억 달러(약 14조1219억원)로 69위에 올랐다.

킹덤홀딩스는 “포브스가 사우디 증권시장의 주가를 인정하지 않았다”며 반론을 제기했다. 이를 제대로 평가했으면 자사 회장의 재산이 296억 달러로 평가돼 세계 10위 안에 오를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어디를 기준으로 하든 알왈리드의 재산은 지난 1월 세상을 떠난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전 국왕이 남긴 180억 달러보다 많다. 국왕보다 더 부자인 사우디의 대표 기업인이자 투자가인 셈이다. 미국 뉴욕의 플라자 호텔 지분도 25% 보유하고 있다. 뉴욕 명물의 하나인 뉴욕 플라자 호텔은 비틀스, 엘리노어 루스벨트, 마크 트웨인 등 역사적 명사들의 단골 호텔이었다. 알왈리드는 비행기 수집가로도 유명하다. 하늘을 나는 궁전이라고 불리는 보잉 747을 비롯, 에어버스 A321 호커 시들 125 구입했다. 2009년 에어버스 A380을 4000억원에 개인 제트기로 구입,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대단하고 별난 알왈리드의 집안

알왈리드의 삼촌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아라비아 국왕.
알왈리드 회장의 이름을 보면 그의 집안 이력이 드러난다. 알왈리드가 이름이고 맨 뒤의 알사우드는 가문의 이름이다. 알사우드는 사우디 아라비아를 지배하는 왕조의 이름이니 사우디의 왕족임을 알 수 있다. 빈 탈랄 빈 압둘아지즈는 ‘압둘아지즈의 아들인 탈랄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즉 아버지 이름이 탈랄이고, 할아버지의 이름이 압둘아지즈다. 할아버지 압둘아지즈는 현대 사우디 아라비아를 건국한 인물이다. 현재 국왕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은 알왈리드의 삼촌이다. 그러니 알왈리드 회장은 사우디 초대 국왕의 손자이자 현 국왕의 조카다. 게다가 어머니 모나 알 솔흐는 레바논의 초대 총리였던 리아드 알 솔흐의 딸로 알왈리드는 그의 외손자가 된다.

알왈리드의 집안은 사우디에서도 별종으로 통한다. 알왈리드 회장의 아버지인 탈랄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84)는 압둘아지즈의 아들들 중 가장 진보적인 성향으로 ‘붉은 왕자’라는 별명이 있다. 탈랄은 왕조국가인 사우디가 헌법을 제정해 입헌군주제 도입을 주장해왔다. 법 앞의 만인평등과 법치도 요구했다. 1954년 이런 주장을 하는 ‘자유 왕자 운동’을 조직해 활동하다 62~63년에는 이집트로 추방되기까지 했다. 이때 알왈리드는 어머니와 레바논에서 살게 된다. 탈랄은 당시 사우디의 숙적인 이집트에서 사우디 민주화 운동을 벌였다. 그러다 가족의 설득으로 귀국했다. 9·11테러가 벌어진 2001년에도 선거로 선출된 의원으로 구성된 진짜 의회를 설치하자고 주장했다. 현재 사우디에는 의회 대신 국왕 자문위원회만 있다.

탈랄은 일지감치 왕위 계승권에서 벗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어머니가 인근 부족장이 압둘아지즈 국왕에게 선물로 바친 아르메니아계 기독교계 여성이었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그의 어머니는 사우디에 살게 되면서 이슬람으로 개종했으며 총애받은 부인 중 한 명으로 알려졌다. 아르메니아계는 20세기 초 터키의 박해를 피해 중동 여러 곳으로 흩어졌다. 탈랄은 4명의 부인으로부터 9남6녀를 얻었다. 알왈리드는 차남이지만 형 파이잘이 1991년 사망하면서 사실상 집안의 장남 노릇을 해왔다. 누이인 사라는 2012년 정치적 이유로 영국에 망명했다.

사우디·레바논 두 나라 국적을 가진 알왈리드는 현재 사우디 지야드에 살고 있다. 부인으로는 사우디 초대 국왕인 사우드 왕의 딸로 친척인 달랄 빈트 사우드 빈 압둘아지즈, 에만 빈트 나세르 빈 안불라 알 수다리, 아미라 알다윌 공주가 있었으나 모두 이혼했다. 자녀는 첫 부인과 사이에서 낳은 리딤과 할리드가 있다.

정지원 자유기고가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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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