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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좀 아는 언니들, 여자끼리 위로해

[여성중앙] 방송계에서 내로라하는 두 입담꾼이 뭉쳤다. 방송인 김성경과 개그우먼 김숙이 ‘나쁜 여자’를 콘셉트로 한 오페라 토크 콘서트를 여는 것이다. ‘말’로 먹고사는 이들이지만 두 사람 다 토크쇼는 이번이 처음이다.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은 무게감을 지닌 언니들이 사랑 앞에 당당하고 때론 상처받은 여자들에게 전하는 신선한 위로.



의외의 ‘케미’란 김성경과 김숙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추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사실 이들은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절친이자 예술 애호가다. 지난해 ‘혼자 사는 여자’라는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해 ‘급’ 친해졌다는데, 토크쇼까지 함께 기획하며 합을 맞추는 거 보면 두 사람의 호흡이 보통 이상인가 보다.

실제로 이른 아침 촬영장에서 만난 이들은 죽이 참 잘 맞았다. 언니 동생이라 부르며 서로에게 농담을 던지는데,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가 거의 만담 수준이다. 늘 망가지는 사진만 찍다 간만에 예쁜 척 좀 해보려는 김숙에게 “가증스럽다”며 깔깔대는 김성경과 아무 때나 전화해서 놀아달라고 하는 김성경에게 “질척거린다”고 정색하는 김숙.

둘의 애정 섞인 농담과 오버스럽지 않은 유머가 현장을 유쾌하게 만들었다. ‘아’ 하면 ‘어’ 하고 받아치며 리드미컬하게 진행되는 인터뷰 역시 지루할 틈이 없었다. 이런 걸 두고 ‘시너지’라고 하는게 아닐까. 곧 있을 토크 콘서트에 대한 예감이 좋다.

우리는 오페라 읽어주는 여자들

“오래전부터 문화 예술과 관련된 기획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 어요. 공연을 워낙 좋아하거든요. 그러다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고, 의외로 미술에 깊이가 있는 숙이에게 제안하게 됐어요. 마침 숙이도 이런 쪽으로 기획을 해보고 싶었다며 흔쾌히 수락하더군요. 숙이가 함께하지 않았다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거예요.”

김성경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토크 콘서트. ‘나쁜 여자’라는 제목의 이 공연은 오페라가 큰 틀이다. 시대별로 세 가지 유형의 여성(사랑을 갈구하는 여성, 사랑을 확신하는 여성, 사랑을 쟁취하는 여성)으로 구분해 오페라 속 음악을 감상하며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토크의 중심축은 김성경이 맡는다. 오랫동안 MBC ‘수요 예술 무대’를 진행해온 그녀는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고 평소 연극, 뮤지컬, 클래식, 오페라 공연을 모두 찾아서 관람할 정도로 열혈 마니아다.

김숙 역시 개그우먼으로서의 이미지와 달리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 음악 또한 틈틈이 공부해 온 연예계 숨은 예술 애호가이기도 하다. 김성경이 공연 전체를 포괄하는 엔진 역할을 한다면, 김숙은 그 든든한 중심축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조미료를 칠 예정이다.

“성경 언니는 추진력이 대단해요. 한번 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죠. 무엇보다 판단력이 정확해 엔진의 방향을 잘 잡아요. 열정 넘치고 빈틈 없는 언니를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어요.” “숙이는 단순한 토크를 버라이어티하게 만들어요. 아무것도 아닌 걸 웃기게 만드는, 엔진의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죠. 거기다 순발력과 애드리브까지 뛰어나요. 토크쇼 도중에 생기는 변수는 숙이만 믿고 따라 가면 될 거 같아요(웃음).”

그런데 왜 하필 오페라일까. 연극, 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예술 분야를 뒤로하고, 가장 대중적이지 않고 무겁게 여겨지는 오페라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처음부터 오페라를 접목하려는 건 아니었어요. 예술 분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너무 광범위해서 오페라로 범위를 좁히게 됐죠. 오페라 속 여주인공의 삶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나쁜 여자’와 정반대되는 삶이거든요. 여주인공들은 사랑에 배신당하면 전부 죽음을 택하는데, 이렇게 바보처럼 살지 말자는 얘길 하고 싶은 거예요. ‘나쁜 여자’라는 제목도 그렇게 탄생한 거고요.”

이들이 말하는 나쁜 여자란 ‘밀당’을 잘하거나 ‘어장관리’하는 여자를 말하는 게 아니다. 당당하고 자신 있게 사랑을 쟁취하고, 받기보다 주는 사랑에 행복을 느끼는 여자다.

“사랑 앞에 주체적인 여자가 됐으면 좋겠어요. 남자한테 사랑받지 못해 괴로워하거나 상처받지 말고 여자들이 먼저 사랑을 주면 안 되나요? 미련 없이 사랑해야 미련 없이 헤어질 수 있어요. 보통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는 여자에게 독하다고 말하지만, 저는 진짜 충실한 사랑을 한 여자라고 생각해요. 우리 여자들이 상처받지 않고 똘똘하게 사랑했으면 좋겠어요.”(김성경)

“무엇보다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해요. 남자한테 의존하고 너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사랑하면, 그 사람과 헤어짐과 동시에 다 무너지거든요. 보통 희생하고 퍼주고 앞뒤 재지 않는 여자를 두고 ‘착하다’고 말하는데, 자기 마음부터 살핀 뒤 그렇게 하라는 거예요. 만약 자기 마음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으면, 그냥 좀 나쁜 여자로 살면 안 되나요? 자기 자신을 먼저 지키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줄 알고 존중할 수 있어요. 이게 기본이 돼야 건강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쁜 여자가 되자는 거고요.”(김숙)




나쁜 여자가 되고 싶다

두 사람이 ‘나쁜 여자가 현실에서 가장 바람직하고 지향해야 하는 여성’이라고 이야기하는 데는 사실 이유가 있다. 나쁜 여자가 아니어서 충분히 상처받고 아파봤기 때문이다. 이는 남녀 간의 사랑뿐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는 데도 적용되는 이치이다.

대학교 4학년이던 1993년에 SBS 공채 아나운서로 발탁되어 방송을 시작한 김성경은 올해 데뷔 23년 차가 되었다. 그동안 참 다양한 프로그램을 맡았지만 부침이 많았다. 자존심이 세고 스스로 여유가 없던 탓에 ‘김성경은 완벽하지만 까칠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또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탓에 적잖은 오해도 받았다.

한창 잘나가던 2002년, 8시 메인 뉴스 앵커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때의 일이다. 프리랜서 선언 이후에도 그녀는 늘 그래왔듯 열심히 방송했다. 대중의 주목은 덜 받았지만 방송에 대한 감각을 쌓을 수 있고, 수입적인 면에서 나쁘지 않아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았다. 하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밀려왔다.

“프리 선언 이후 ‘엄청나게 유명한 방송인은 아니어도 편안한 삶을 살자’라고 생각하며 나름대로 절충점을 찾았어요. 그런데 점점 한계가 오더라고요. 방송에 대해 많은 사람의 피드백이 필요했고, 좀 더 치열한 곳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죠.

한동안 방송에서 저를 찾지 않는다는 생각에 속상해하던 때도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왜 예전처럼 나를 원하지 않느냐’고 원망할 필요가 없더라고요. 나중에 저를 필요로 할 때, 한층 성숙해지고 단단해지고 유연해진 모습을 보여주면 되니까. 그때부터 아나운서라는 타이틀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길을 열어두게 된 것 같아요.”

그녀는 자신의 변화는 싱글 맘으로서의 삶과도 연관된다고 덧붙였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의존하지 않고 살아야 하는 현실이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이고 다부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인생에는 반전이 있고, 솟아나는 타이밍이 있으며, 묵묵히 기다려야 하는 시절도 있다. 이 과정들을 겪으며 지금에 오른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기복’에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굴곡진 인생으로 치면 김숙도 만만치 않다. 방송 21년 차인 김숙은 1995년 KBS 공채 12기 개그우먼으로 데뷔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 ‘따귀소녀’와 ‘난다김’ 캐릭터로 전성기를 누렸지만, 이후에는 예전만 못하다는 평을 들으며 적잖이 마음고생을 했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과 영화, 뮤지컬 등에서 감초로 출연하며 끊임없이 활동하던 그녀가 방송을 내려놓게 된 건 방송 환경의 변화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방송 시장을 남자들이 지배하기 시작했고, 연기자들이 예능에서 대접받다 보니 점점 설 자리가 좁아진 것이다. 그녀 역시 한동안 심리적 불안을 겪기도 했지만 다행히 슬럼프는 길지 않았다.

“큰맘 먹고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갔는데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삶과 전혀 딴 세상이더라고요. 늘 방송국과 집만 오가며 프로그램 하나에 연연하고, 방송국 연락 기다리고, 개편 때 맘 졸이면서 살았는데, 그게 얼마나 좁은 세상인지 알게 된 거죠. 그때부터 가치관이 바뀌었어요. 유연한 삶의 자세도 배웠고요. 여행을 즐기다 보니 열정이 다시 끓어오르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드니 오히려 하고 싶은 게 많아졌다는 김숙은 여행을 계기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가야금에 피아노, 기타 연주는 물론이고 미술 분야에도 제법 지식이 깊다. 목공을 배운 지는 10년이 넘었다. 책상이나 메모판, 의자를 뚝딱 만드는 건 기본이고, 대학 시절의 의상학 전공을 살려 옷도 직접 만든다.

최근엔 시골 한적한 마을에 있는 통나무집에 빠져 시간 날 때마다 그곳에 머문다고 한다. 진정 삶을 즐길 줄 아는 그녀다. 내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다는 걸 깨달은 그녀들은 포기와 한탄 대신에 긍정적 마인드로 상황을 변화시켰다. 덕분에 아이를 혼자 키우면 남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을까 걱정하던 김성경 또한 마음을 바꿔 먹게 됐고, 골드미스인 김숙 역시 나이와 결혼에 연연하지 않게 됐다.

행복하기 위해 더 열심히 커리어를 쌓고 인생을 즐기면 그만이다. 그런데 행복해지려면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알고 보면 놀고 싶어도 노는 방법을 몰라 못 노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꽤 많다.

“우리 나이쯤 되면 결혼하고 애 낳고 아이들도 어느 정도 자랐을 때잖아요. 남편과는 가족이 된 지 오래고요. 보통 여자들의 우울증이 이때 심하게 찾아오는 것 같아요. 뭔가 하고는 싶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이제껏 누굴 위해 살았나 한탄하는 거죠. 이런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게 바로 공연이에요. 오페라가 부담된다면 영화나 연극 등 대중적인 것부터 시작하면 돼요. 그러다 보면 얼마나 한 세상을 놓치고 살았는지 새삼 느끼게 될 거예요.”(김성경)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경험이 쌓였다는 것이지 새로운 정보를 더 많이 안다는 건 아니에요. 때문에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것에 귀를 열 줄 알아야 해요. 이미 알 만큼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꼰대가 되기 십상이죠. 제가 다양한 분야를 접하고 공부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예요. 문화생활을 하면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삶이 풍요로워지거든요. 문화생활을 허세나 사치라고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투자하는 마음으로 아낌없이 즐겼으면 좋겠어요.”(김숙)




인생 중반, 나를 채우는 것들

오페라 아마추어인 이들이 오페라 토크쇼를 진행한다고 그저 그렇고 그런 공연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워낙 욕심 많은 언니들이라 90분 공연을 단단히 준비했다. 먼저 국내 최고의 오페라 해설자로 유명한 유정우 박사가 출연해 두 사람에게 힘을 보탠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피아니스트 박종훈도 합류한다. 수준 높은 연주는 물론 재치 있는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는 구성인 셈이다.

공연에 소개되는 오페라 곡도 만만치 않다. 국내 최고의 성악가로 손꼽히는 메조소프라노 양송미와 소프라노 김은주의 무대로 음악과 토크가 어우러진다. 아름다운 아리아로 유명한 오페라 ‘투란도트’ 외에 ‘예브게니 오네긴’ ‘호프만의 뱃노래’ 등 평소 접하기 어려운 오페라도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다.

여기에 두 사람의 퍼포먼스까지 더해 잔재미도 줄 예정이다. 거창하진 않고 오페라 립싱크 정도라는데, ‘느낌 좀 아는’ 언니들이 무대에서 펼치게 될 퍼포먼스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명색이 오페라 토크 콘서트인데, 얄팍한 지식으로 대충 하면 안 되죠. 지금도 틈틈이 공부 중이고 새롭게 접근하기 위해 다양한 책들을 읽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같은 장면을 봐도 계속 새로운 해석이 나오더라고요. 정통 오페라를 사랑하는 애호가에게는 시대와 역사적 배경에 따른 지식을 더할 수 있는 공연으로, 오페라 입문자에게는 오페라를 보는 새로운 재미와 신선한 충격을 경험할 수 있는 무대가 됐으면 좋겠어요.” (김성경)

공연 준비가 한창이라는 두 사람은 피곤한 기색은커녕 친구들과 재밌는 일을 작당하는 여고생처럼 눈빛이 생생했다. 덕분에 덩달아 신이 난 기자는 토크 콘서트가 열리는 4월 10일 공연장에서의 재회를 약속하며, 나부터 사랑할 줄 아는 나쁜 여자가 되어보리라 다짐했다.

언니들에게 배운 대로 내가 행복해야 하니까. 가장 치열한 생의 한가운데를 싱글이라는 이름으로 지날 수 있음에 기꺼이 감사하며, 똘똘하게 사랑하는 법에 대해 한 수 배우고 와야겠다.


기획 여성중앙 정은혜, 사진 박지홍(cao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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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