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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이글스라 행복해요" 바뀐 한화, 행복한 관중

[사진 중앙포토DB]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이글스라 행복합니다."

지난해 대전 야구장에 울려퍼지던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대표 응원가 '나는 행복합니다'. 그 때는 참 구슬프게 들렸다. 그런데 올해는 같은 노래라도 활기차게 들린다.

\지난 3일 한화와 롯데의 경기가 벌어진 대전구장. 지난해처럼 눈물을 글썽이며 '나는 행복합니다' 를 부르는 관중은 찾을 수 없었다. 1만3000석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어깨춤을 추면서 목청이 터져라 이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모두 벌떡 일어나 파도를 타더니 한 번, 두 번, 세 번...열 번까지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이곳이 만년 꼴찌 한화의 홈 구장이 맞는지 헷갈렸다.

한화는 그동안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많았다. 그래도 팬들은 "그저 한화를 응원하는 게 행복하다"고 했다. 그래서 승패를 초탈한 한화팬들을 '보살'이라고 불렀다. 보살팬들은 한화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동안 5차례나 꼴찌를 해도 참고, 또 참고 기다렸다. 오랜 기다림의 보람은 있었다. 한화는 올 시즌 꼴찌에서 탈출했다. 개막 한 달 만에 최고 3위까지 오르며 '한화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7일 현재 한화는 16승14패로 5위를 달리고 있다.

이날 롯데와의 경기 시작 4시간 전부터 경기장 주변은 현장 판매 티켓을 구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마치 플레이오프 경기를 앞두고 있는 것처럼 북새통을 이뤘다. 유승호(37)씨는 "현장 판매 표를 구하기 위해 부리나케 뛰어왔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서 표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가을야구에서나 볼 수 있는 암표상도 등장해 경찰까지 출동했다. 경기 시간이 다가올수록 야구장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30분 전 한화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나와 몸을 풀자 갑자기 관중들이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치킨을 내팽개친 아이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지난 몇 년 간 고개를 숙이고 입장했던 선수들은 당당하게 손을 흔들며 팬들을 맞이했다.

한화는 이날 1회 초 롯데 포수 강민호에게 만루홈런을 내주고 0-5로 끌려갔다. 잠시 정적이 흘렀지만 이내 함성이 터져나왔다. 9회 동안 두 세번 나오던 '나는 행복합니다' 응원곡이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나왔다. 관중들은 가만히 앉아있질 못하고 엉덩이를 들썩였다.

한화 응원단장 홍창화(35)씨는 "지난해까진 '나는 행복합니다' 노래를 부르면 다른 팀 팬들이 '맨날 꼴찌하면서 뭐가 좋다고 그 노래를 부르냐'고 항의를 했다. 그런데 요즘엔 이 노래를 부르면 무척 부러워한다.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올해 한화는 드라마 같은 경기를 펼치고 있다. 뉴욕 양키스 포수였던 요기 베라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야구 격언이 딱 들어맞는다. 올 시즌 29경기를 치르는 동안 한화는 끝내기 승리 세 번(2위), 역전승 여덟 번(3위)을 이뤄냈다. 김성근(73) 한화 감독은 "좋은 영화를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듯이 우리 경기도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본다. 나도 나중에 시계를 보고 깜짝 놀란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도 한화는 끝까지 치고 받는 경기를 했다. 그러나 역전승보다 역전패를 당하는 경우가 많은 게 문제였다. 올해는 역전패가 6번으로 역전승보다 적다. 이날도 9회 말 한화가 2점을 내며 3-6으로 쫓아가자 관중들은 "이겼다"를 외치며 승리에 대한 믿음을 보였다. 결국 졌지만 관중들은 아이돌 콘서트장에 온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와 야구장을 찾은 강상우(22)씨는 "군에 입대해 한화팬이라고 하자 '왜 만년 꼴찌 한화를 응원하느냐'며 구박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올해는 부대에서 한화 경기만 본다. 한화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를 많이 해서 모두들 좋아한다"고 말했다.

올시즌 한화가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이면서 홈 구장엔 관중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올해 홈 18경기에서 만원 관중이 들어찬 것이 7차례(리그 1위)나 된다. 2위 두산(4번)보다 3차례나 많다. 지난해 홈에서 치른 64경기 중 매진은 8번이었다. 벌써 작년 만원사례 기록을 갈아치울 태세다. 올해 홈 평균 관중은 9085명으로 지난해(7423명)보다 1000명 넘게 늘었다.

TV시청률에서도 한화의 도약이 눈부시다. 케이블 3사(KBSN스포츠·MBC스포츠플러스·SBS스포츠)가 중계한 한화 경기는 최고 시청률 2%를 돌파했다. 지난해 프로야구 평균 시청률은 1.01%였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프로야구 중계에서 한화 경기는 동시 접속자수가 10만명을 거뜬히 넘는다. 정규시즌 경기로는 역대 가장 많은 접속자 수인 27만 명도 세 차례 기록했다.

한화가 변화한 중심에는 '야신' 김성근 감독이 있다. 김 감독은 하위권 팀을 4강권까지 끌어올리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2007년 중위권 팀 SK를 맡은 뒤에는 네 번이나 한국시리즈에 올랐고, 세 차례 우승을 차지하며 '우승 청부사'로 불렸다.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지옥 훈련을 시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 감독은 지난해 11월 한화를 맡자마자 선수들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선수들은 마무리 훈련부터 스프링캠프까지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그라운드를 뒹굴었다. 겨우내 고생한 한화 선수들은 "이렇게 훈련하고도 지면 화가 날 것 같다"며 이를 악물고 시즌에 돌입했다. 그리고 시즌 초반부터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더그아웃에는 웃음꽃이 폈다.

한화 간판타자 김태균(33)은 "김성근 감독이 온 후 팀이 변했다. 요즘은 경기에서 지고 있어도 다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어린이 팬 김재현(9)군은 "한화가 너무 못해서 미웠다. 노력을 안하는 것 같았다"며 "그런데 올 시즌엔 공을 잡으려고 슬라이딩하고 점수를 줘도 끝까지 따라붙는 모습을 보고 나도 저렇게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한화가 꼴찌에서 탈출한 건 보살팬 덕분이기도 하다. 한화 구단은 당초 김 감독 선임을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각종 포털사이트와 야구 관련 커뮤니티에서 '김성근 감독을 원한다'는 한화 팬들의 청원이 이어졌다. 본사 앞에서 1인 시위까지 벌이는 팬도 있었다. 결국 한화 그룹이 팬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김 감독과 계약했다. 김 감독은 "팬들이 나를 믿어줘서 감동을 받았다"며 매 경기 팬들에 대한 인사를 잊지 않는다.

한화 야구에 푹 빠진 미국인 루크 호글랜드(30)는 "김성근 감독이 오길 원했는데 역시나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꼴찌였던 한화가 불과 몇 개월 만에 순위가 오른 것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미러클(기적)'"이라고 말했다.

집 나갔던 보살팬들도 돌아왔다. 경북 구미에 사는 이운재(52)씨는 한화 경기를 보려고 10년 만에 대전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이씨는 "빙그레 이글스 시절부터 팬이라 경기장에 자주 왔다. 하지만 최근에 너무 못해서 발길을 끊고 있었다"며 "구미엔 항상 잘하는 삼성팬이 많아서 한화팬이라고 밝히는 게 부끄러웠다. 이제는 그렇게 생각했던 내가 부끄럽다"며 고개를 숙였다. 의리를 강조하는 원조 보살팬들은 신흥 보살팬들을 살뜰히 아껴주고 있다. 암흑기에도 시즌권을 끊어 한화를 응원했다는 정종례(48)씨는 "열심히 응원한 공을 하늘이 이제야 알아주는 것 같다"며 "경기장에 오면 못 보던 얼굴이 많다. 잘한다고 찾아온 팬들에게 야속한 마음은 전혀 없다. 잊지 않고 돌아와 준 것만으로 고맙다"며 웃었다

올해 관중석에는 보살팬을 상징하는 부처 탈·목탁 등의 응원도구가 사라졌다. 대신 3연전 싹쓸이를 기원하며 '스윕(sweep)'을 뜻하는 빗자루가 등장했다. 이제 보살팬들에게 부처 탈은 아련한 추억이 된 걸까. 2013년 처음 부처 탈을 썼던 가수 V.O.S의 김경록(32)은 공약을 내걸었다. "여름이 되면 힘이 빠져 한화가 다시 내려갈 거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올해는 가을야구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때 부처 탈을 쓰고 응원단상에 올라가겠다."

대전=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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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