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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view &] 이건희 회장과 두번째 ‘독대’를 바라며

표재용
산업부장
기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독대’를 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1998년 7월 2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다. 그날은 김대중 정부 경제관료들과 5대 그룹 총수들이 모여 이른바 ‘빅딜(대기업간 사업교환)’ 관련 의견을 조율하는 날이었다. 중복 과잉투자 해소가 주된 의제였다. 당시 기업을 취재하는 산업부 막내 기자로 당일 회의장 주변을 지키는, 이른바 ‘뻗치기’를 하고 있었다. 독대 기회는 거짓말처럼 찾아왔다.

 어떤 영문인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몇 시간 가량 회의장 앞에 진을 쳤던 수십 명의 취재진이 잠시 썰물처럼 자리를 떴다. 그 결과 어리보기였던 기자만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됐다. 그 때 마침 이 회장이 회의실 문을 열고 혼자 나온 것이었다. 기자는 가쁜 호흡을 가다듬고 그의 곁에 바짝 밀착했다. 그리고 상기된 목소리로 물었다. “(빅딜) 회의에서 뭔가 결론이 났나요?” 그 질문에 이 회장은 옅은 미소와 함께 이렇게 답했다. “네, 잘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 그게 다였다.

 그 말만 남긴 채 그는 다시 회의실 안으로 사라졌다. 일생일대의 독대 기회는 그렇게 허망하게 끝이 났다. 기자의 못난 역량을 자책하며 며칠간 머리를 움켜쥐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훗날 그와의 ‘짧은 독대’가 외려 엄청난 행운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삼성 경영진에겐 이 회장과의 독대가 ‘군대 훈련소에 다시 끌려가는 것처럼 후들후들 떨리는 일’과 다름 없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다. 그건 이 회장 특유의 독대(혹은 회의) 스타일과 무관치 않다.

 그는 수시로 주요 임원을 혼자 혹은 단체로 호출했다. 서울 한남동의 집무실 겸 접견실인 승지원으로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한번 부르면 청문회 하듯 서너 시간은 기본이었던 것이다. 전문가 수준을 뛰어넘는 해박한 지식과 정보를 앞세워 꼼꼼히 따져묻거나, 생각지도 못한 질문으로 호출한 경영진들의 얼을 빼놓았다고 한다.

 그의 사고(思考) 역시 회의 스타일 만큼 독특했다. 예컨대 1993년 그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선언’에선 이런 말로 한국을 깨웠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바꿔야 산다.”

 물론 삼성을 겨냥한 말이었지만 세계 시장에 변변한 ‘Made by Korea’ 하나 내놓지 못하면서 외형 키우는 것에만 몰두한 한국 재계 역시 쇠뭉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기업들의 인재관도 역시 말 한마디로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한 명의 천재가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 가장 근자에 남긴 화두는 이것이다. “이전에는 선진기업이란 등대가 있었지만, 이제는 망망대해를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 삼성만이 아니라 추격에만 익숙했던 한국 경제, 기업들이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 하는 상황을 환기시킨 것이기도 하다. 그의 행보도 늘 파격이었다. 1994년엔 무선 전화기에서 불량품이 나오자 150억원 어치의 완제품을 모두 불살라 버렸다. 이 회장은 이런 각성 요법으로 변방의 이름 없던 기업, 삼성을 세계 최강의 기업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 같은 삼성의 선전은 다른 국내 기업들에게도 큰 자극제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런 그가 지금은 병실 침대에 누워있다. 지난해 이 무렵 갑작스런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다. 최악의 상황은 지났다지만 여전히 의식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기자는 그가 깊은 수렁에 빠진 대한민국 경제를 되살려낼 화두를 찾느라 긴 명상에 잠긴 것이라 믿고 싶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 경제, 기업들은 전에 없는 위기에 몰려 있다. 그를 상징하는 것들이 그래서 더욱 절실하다. 그건 열정·창의·혁신·인재·초일류, 그리고 위기 극복이다.

 이 회장이 거짓말처럼 자리를 툭툭 털고 병상에서 일어나면, 그리고 또다시 독대 기회를 잡는다면 꼭 이 질문을 하고 싶다. “어떻게 해야 기업과 경제가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지요.” 그럼 그는 17년 전 그때처럼 한마디 툭 던질지 모른다. “ 좀 어렵죠? 그래도 다시 살아납니다.”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 안 해도 상관없다. 그가 다시 육성으로 말할 수 있는 상태로 돌아만 와도 한국 경제 역시 기적처럼 기운을 되찾지 않을까. 그는 여전히 그런 마법을 갖고 있을 것만 같다. 요즘 우리 경제가 너무 어렵다 보니 드는 생각이다. 진심으로 그의 쾌유를 빈다.

표재용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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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