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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의 직격 인터뷰]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냉전이 끝을 보이던 1989년, 미국 잡지에 실린 도발적 제목의 논문 한 편이 세계를 흔들었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62) 교수가 쓴 ‘역사의 종언(The End of History)’이다. 인류의 역사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승리로 진보의 종착점에 도달했다는 이 논문으로 일본계 미국인인 후쿠야마 교수는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하지만 26년이 지난 지금도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이중의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한국고등교육재단 초청으로 방한한 후쿠야마 교수를 5일 조선호텔에서 만났다.

후쿠야마 교수는 “독일이 경제적으로 잘나가는 것은 노동시장 개혁에 성공했기 때문”이라며 “고통스러운 개혁은 정부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돼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지난주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을 했다. 연설 내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위안부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를 다루지 않은 것은 큰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역대 일본 정부가 밝힌 사죄의 입장을 유지하고 수정하지 않는 것이 올바른 일일뿐더러 일본에도 이익이다. 과거사 때문에 주변국들로부터 배척을 당하는 것은 일본 자신을 위해서도 안 좋은 일이다.”

 -아베 총리가 주변국과 화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는 의견에 동의하는가.

 “그것이 유일한 기회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앞으로도 과거사 문제에 대해 분명하게 사과함으로써 한국이나 중국에 다가설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본다.”

 -신(新)방위지침에 합의함으로써 미·일의 군사적 협력은 대폭 강화됐다. 미·일의 군사적 일체화가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보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는가.

 “중국의 부상을 꼭 위협으로 볼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장기간에 걸쳐 이 지역에 큰 도전이 될 것이란 사실은 틀림없다. 2008년 이후 중국은 분명하게 이 지역에서 영토적 야심을 보여왔다. 이해가 걸린 나라들이 함께 행동하지 않는다면 중국은 계속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을 봉쇄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중국이 동중국해에서 일방적으로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것처럼 공격적인 행동으로 나온다면 관련국들의 단합된 반대에 직면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오바마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는 올바른 정책이라고 보나.

 “미국이 아시아에 지속적 관심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재균형은 올바른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바마는 아직 성공적인 재균형 정책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집권 1기에 그 정책을 입안했지만 한동안 방치했었다. 지금 다시 추진하려 하고 있지만 남아 있는 것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정도다. 이것조차 미국과 일본 의회에서 비준이 될지 불확실하다. 아시아 재균형은 아직은 공허한 정책이다.”

 -미국이 추진하는 한·미·일 3각 동맹이 과거사를 둘러싼 한·일 간 갈등으로 차질을 빚고 있다. 미국의 보다 적극적인 중재 노력이 필요한 것 아닌가.

 “ 미국이 일본에 영향을 미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아베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을 때 미국은 공개적으로 아베를 비판했다. 그로 인해 일본 우익 진영에서는 반미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일본이 행동을 바꿀지는 의문이다.”

 -한국은 최고 동맹국인 미국과 최대 교역국인 중국 사이에 끼어 있다. 이 상황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문제다. 강한 동맹국을 갖는 것도 중요하고, 막강한 교역 파트너를 갖는 것도 분명 중요하다. 아시아에서 개방된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린 문제다. 국가 간의 상호 관계를 관리하는 구조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창출하느냐에 따라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저주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 호주, 영국 같은 동맹국들이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참여를 결정했다. 세계 금융 시스템에 대한 미국 지배력의 약화 조짐인가.

 “AIIB는 금융 분야에서 세력 전이(轉移)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해 중국을 기존 금융 질서의 틀에 가둠으로써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데도 의회가 IMF 개혁안을 비준하지 않고 있는 것은 큰 실수다. 중국의 AIIB 창설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해 미 행정부는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미국은 AIIB에 대한 입장을 전면 재검토함으로써 손실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 회원국으로 참여해 내부에서 은행의 운영 방향에 영항력을 행사하는 편이 낫다고 본다.”

 -오바마가 자신의 마지막 외교적 업적을 쌓기 위해 북한 문제를 꺼내 들 가능성은 없을까.

 “북한과 관련해서는 어떤 옵션도 희망적이지 않다. 군사적 옵션은 불가능하고, 제재도 효과를 거두지 못했고, 협상도 안 통했다. 오바마가 퇴임 전에 북한 이슈를 꺼내 들 것으로 보긴 어렵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오마바의 전략적 인내 정책을 어떻게 보는가. 의도적인 무시 아닌가.

 “ 북한 핵문제의 근본적 해법은 사실 정권 교체다. 그러나 외부에서 힘을 가해 정권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북한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길 지켜보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전략적 인내의 배경에 깔린 논리일 것이다.”

 -귀하의 예측과 달리 자유민주주의는 전 세계에서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뭐가 잘못된 것인가.

 “‘역사의 종언’에서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은 모든 나라가 자유민주주의를 택할 것이라는 예측이 아니었다. 역사 발전의 종착점은 공산주의라고 마르크스는 예측했지만 나는 그것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결합물이 될 것이라고 얘기했을 뿐이다. 지금도 나는 그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45년 전인 1970년 당시 전 세계에서 자유민주주의를 하는 나라는 35개국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10~115개국이 자유민주주의를 하고 있다. 역사의 큰 흐름이 그 방향으로 움직인 것이다. 물론 최근 몇 년간, 특히 지난해에 매우 불길한 조짐이 있었던 것은 맞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이나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발호, 이슬람국가(IS)의 등장, 아랍권의 혼란 등 때문에 민주주의의 진전을 기대한 많은 사람이 실망했다. 이 시점에서 이것이 역사의 전면적 퇴보인지 아니면 주가 폭락과 같은 일시적 후퇴인지는 확실히 말할 수 없다. 다만 장기적 추세는 여전히 긍정적이라고 믿고 있다.”

 -능력주의와 일당 독재가 결합된 중국식 거버넌스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중국식 거버넌스는 78년 이후 매우 인상적으로 작동해 왔다. 그러나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문제점들은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중국식 성장 모델은 이미 한계에 봉착했다. 법치와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장에 필요한 동력을 계속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 수십 년처럼 공산당 지도부가 계속해서 올바른 정책을 구사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근본적으로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저서에서 이상적인 거버넌스 모델로 덴마크를 제시했는데 왜 덴마크인가.

 “부패 문제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가 덴마크이기 때문이다. 정치 발전이란 측면에서 가장 해결하기 힘든 문제 중 하나가 부패 문제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것은 부패에서 자유로운 체제를 만드는 것에 비하면 훨씬 쉬운 일이다. 덴마크식 거버넌스는 자유민주주의의 모델이다.”

 -독일식 사회민주주의 모델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독일이 유럽에서 잘나가고 있는 것은 노동시장을 개혁했기 때문이다. 민주적인 방법으로 노동시장을 보다 유연하게 고쳤다. 노동시장이 매우 경직돼 있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와 아주 대조적이다. 고통스러운 경제 개혁을 이룬 것은 정부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귀하가 20년 전 『트러스트』란 책에서 강조한 게 바로 신뢰였다.

 “그 책에서 말한 것은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를 말한 것이지 정부에 대한 신뢰는 아니었다.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함께 일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를 신뢰하는 게 중요하다는 취지였다. 이 점에서는 여전히 미국도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

 -지금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는 입장인가.

 “유일하게 그럴듯한 모델은 중국식 국가자본주의 모델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이 중국식 체제를 채택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본다. 한 정당이 수십 년 동안 지배하는 것을 용인할 수 있겠는가. 이란이나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체제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외에 다른 대안은 여전히 찾기 어렵다.”

 -이 시대의 최대 도전은 정치·경제적 양극화라는 견해에 동의하는가.

 “동의한다.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양당 체제 때문에 국가적 난제에 대한 결정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 미국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총기 규제에서 이민 개혁까지 모든 문제가 다 그렇다.”

 -미국의 티파티 운동이나 유럽의 극우파에서 보듯 우파적 포퓰리즘은 날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일시적 현상으로 끝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처럼 좌파적 대중운동은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된다고 보나.

 “우선 한 가지는 전 세계에서 좌파는 공통적으로 경제적 불평등 문제에 초점을 맞춰 왔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부의 재분배 문제에 집중했고, 그것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삼아왔다. 그러나 양성 평등, 동성 결혼, 인종, 환경 등 다른 이슈들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좌파 운동의 관심이 이런 쪽으로 분산되면서 전통적 지지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사회 변혁을 위한 현실적 대안을 좌파가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이에 비해 우파는 다양한 싱크탱크 등을 통해 자신들의 논리를 강화할 수 있는 현실적 힘을 갖고 있다.”

글=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사진=신인섭 기자

후쿠야마 교수는 …

1952년 미국 시카고 출생. 코넬대 학사(고전학). 예일대 석사(비교문학). 하버드대 박사(국제정치학). 미 국무부 정책실 차장.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 조지메이슨대, 존스홉킨스대 교수를 거쳐 현재 스탠퍼드대 교수. 민주주의 기부재단(NED) 이사. 미국 외교협회(CFR) 회원.

[인터뷰 후기] ‘비토크라시(vetocracy)’로 미국 민주주의 위기 심화

후쿠야마 교수는 처녀작이자 출세작인 『역사의 종언』(1992년)에서 최근에 출간한 『정치 질서의 기원』(2011년)과 『정치 질서와 정치 쇠퇴』(2014년)까지 모두 8권의 책을 썼다. 그중 제일 많이 팔린 책이 뭐냐고 물었더니 뜻밖에도 『역사의 종언』이 아니라 『트러스트』(1995년)란 대답이 돌아왔다. 본인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쓴 책은 마지막 두 권으로, 정치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다 쏟아부었다고 말했다. 이 책들은 지금 전 세계 여러 대학에서 교재로 채택돼 사용 되고 있다.

특히 그는 마지막 저서에서 ‘비토크라시(vetocracy)’란 용어를 스스로 만들어낸 데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양당이 서로를 거부하는 극단적인 파당정치 때문에 미국 정치가 완전히 동맥경화에 걸려 있는 상태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어린 시절부터 목공에 관심이 있었다는 그는 미국 건국 초기 스타일의 가구를 직접 복제해 제작하는 독특한 취미를 갖고 있다. 그의 자택 곳곳에는 그가 직접 제작한 가구들이 놓여 있다고 한다. 90년대 초부터 10여 차례 방한한 그는 한국 사회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일본계 3세인 후쿠야마 교수는 일본어를 한마디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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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