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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의 편지] 행복은 각자가 누리는 호젓한 것

[일러스트=김회룡]

고 은
시인
명석(鳴石)에게

 야누스신은 하나가 아니라네. 너도 나도 야누스라네. 모두 돌아다보다가 내다보다가 하는 삶이네.

 가장 최근의 빙하기를 마친 뒤인 1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를 홀로신(Holocene)이라고 한다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질시대 말일세.

 이런 지질시대라 해서 당대 동일본 지진이나 네팔 지진, 아니 몇 해 전의 동남아 해일·강진 등의 사태가 잇따라 터지고 있으므로 결코 마음 놓을 겨를이 없네. 존재의 불안이란 사상의 소재가 아니라 먼저 생명의 다급한 실감일 것이네.

 그런데 21세기 지질학에서는 ‘인류세(人類世)’라는 이름을 우리 당대에 붙이고 있더군. 자연재해보다 인간에 의한 재해가 더 저주받은 시대 한복판에 들어선 사실도 이 이름에 부응할 노릇이네.

 ‘세계는 인간 없이 시작했고 인간 없이 끝나리라’ 하는 처절한 명언(名言)은 저 『슬픈 열대』 끄트머리에 있네.

 어쩌면 앞으로의 인류는 흥망성쇠 마무리의 자멸에 이르는 문명의 재앙을 앞두고 있다는 묵시록적인 결말에 새삼 정색(正色)할 노릇이겠네.

 이런 인간살이에 걸쳐 오랫동안 전해오는 황금률(黃金律)들이 있는 것도 괜히 씁쓸한 바 없지 않네.

 심오한 뜻이라지. 유익한 뜻이라지.

 인류의 불문율이기도 한 이 황금률이란 낱말이 하필이면 황금으로 강조된 까닭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네.

 옛사람들이 인류의 역사 단계를 황금의 시대, 은의 시대, 철의 시대로 그 타락을 말해왔지.

 불교의 사원도 교조 불상이 들어앉은 곳을 금당(金堂)이라 하지. 세상 사람들도 세상의 이치가 담긴 말을 금언(金言)이라 하지. 심지어는 시간이 귀중한 것을 말할 때 금이라 하지. 사람들의 설왕설래에 다해서 말 없는 정신상태를 내세울 때 침묵은 금이라 하지.

 이 굴절 많은 시대를 살아오는 동안 어떤 세기의 영광스러움을 발할 때 ‘황금시대’라 하지 않는가. 시의 황금기도 있지 않은가.

 이 세상의 질곡을 벗어난 유토피아를 황금향(黃金鄕)이라 한 적도 있지 않은가. 이 밖에도 얼마나 많은 ‘황금’ ‘금’ 타령이 그칠 날 없이 터져 가고 있는가. 스키타이 금 숭배와 닿아 있는 우리의 황금 선호는 각별한 셈이겠네.

 가장 비물질적인 경지를 물질적으로 강조하게 되는 역설을 당연시하고 있는 것도 야릇하다네.

 어쩌면 최고의 가치에 대한 은유는 그 비물질성을 오직 물질성으로만 표현하는 것인지 모르겠네. 무(無)를 유(有)로 말하는 것 말이네.

 하지만 엄마가 늦둥이 아기를 금자동아 은자동아라고 흥얼거리던 시절의 그 금과 은의 물질성은 차라리 비물질성의 반동이기도 하겠지. 가장 소중하고 막중한 것을 금쪽같다고 할 때도 그렇지 않은가.

 금이라는 이 물질의 으뜸으로 선뜻 영혼이나 정신 또는 사랑과 공공연하게 합치되는 일은 자주 의문의 대상이 되어야겠네.

 요즘 그 무엇과도 바꾸지 못할 신록의 절경(絶景) 앞에서 이 초록빛 절정의 색감이 행여나 황금의 신록이라고 표현될까 걱정스럽네. 그만큼 세태는 황금과 금에 노골적으로 귀속된 것 아닌가.

 지금 한반도의 5월은 이런 물질시대에도 불구하고 자연 세시(歲時)의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에 파묻힌 행복의 시간임에 틀림없네.

 1년 전의 세월호 참극은 1년 전 그대로 멈춰 있고 35년 전의 광주는 퇴색해버린 시대의 고의(故意)에도 자연은 애초 인간의 문제 밖에서 무심의 미학을 베풀고 있네.

 온대의 신록은 열대 아열대 우림이나 맹그로브 숲과 사바나 그리고 북방 한대 침엽수 식생지대와 달리 아직껏 네 계절의 풍광을 펼쳐 보이지 않는가.

 산 빛은 문수의 눈이요, 물소리는 관음의 귀(山色文殊眼水聲觀音耳)라는 옛 절창은 이런 5월의 신록 잔치에도 제격 아닌가.

 이 같은 천혜의 자연경관을 누리는 ‘황금의 계절’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치·경제·사회의 실태는 행복의 요인이 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어떻게 모면하겠는가.

 성장은 더욱 성장의 맹목만을 추구하네. 그 성장은 결코 행복의 성장을 뜻하지 않는 사실은 날이 갈수록 확연해지고 있네.

 나는 젊은이에게 꿈꾸어라 노인에게 치유받아라 따위 위선의 수작을 진작부터 단념하고 있다네.

 유엔이 ‘국가 행복의 날’을 오죽하면 제정했겠는가. 이에 따라 유엔작가협회는 얼마 전 『행복』이라는 제목의 사화집(詞華集)을 간행했네. 56개국 시인들이 31개의 언어로 참여한 행복 주제의 시집이네. 한국의 나도 참여했다네.

 행복은 떠들어대는 것이 아니라, 누구 하나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각자가 누리는 호젓한 것이라고 노래했네.

 새삼 행복이란 행복과 행복의 사이라네.

 바라건대 이 5월의 영광스러운 신록 속으로 비판과 분노를 걸러낼 너와 나의 황금률이 실현되기를 바라지 않네. 명석! 자네의 황금률이 나의 그것과 한 치도 동떨어지지 않기를 빌어 마지않네.

고은 시인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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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