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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이모작을 여는 사람들] “나는 ‘장관’ 부럽지 않은 9급 공무원”

[월간중앙] 아메리칸 화재해상보험 한국 법인장 이력 뒤로 하고 59세에 ‘공시’ 합격 … 정년퇴직 1년 앞두고 서초구청 일자리경제과 막내 주무관으로 맹활약


지난 1월부터 9급 공무원으로 새 삶을 시작한 올해 59세의 권호진 씨. 무려 41년 차가 나는 임용 동기들과 함께 일하는 그에게서 최고령자의 ‘노티’는 찾아볼 수가 없다.


나도 모르게 슬쩍 웃음이 나왔다. 마치 공무원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인 양 어쩌면 이렇게 완벽히 변신할 수 있단 말인가. 그에게서 지난 세월이란 무슨 의미일까? 그것도 이곳에서 일한 지 2개월도 채 안됐는데… 아마 그는 태생이 그런 사람인가보다. 흉내 낸다고 될 일이 아니지 않은가!

“아 그래요? 그렇게 보인다니 다행이네요. 전 말단이니까 그에 맞게 처신하고 그런 대우를 받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고 불편함이 전혀 없거든요. 아마 수평적 관계에 익숙한 외국기업에서 오랫동안 몸담은 덕분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는 질문 자체가 이상하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소속부서의 분위기를 살펴서 뭐든 막내, 초보가 해야 할 일 같으면 그게 무엇이든 망설임 없이 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아마 그런 그의 합리적인 사고, 발 빠른 적응력이 잘나가던 기업의 대표인 그의 이력을 가능하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은 당시 받던 급여의 10분의 1 수준을 받는다.

“공무원은 정말 멋진 직업이에요. 제가 하는 일이 공적인 일, 그러니까 공공의 이익을 위해, 나라를 위해 일을 하는 것이니 개인 사업가의 이익창출을 위한 일반 기업과는 차원이 달라요.” 그는 지금 일자리 경제과에서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는 일을 담당한다. 평소 기회가 닿으면 공익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었다는 그는 그 ‘영광된 일’을 찾기 위해 단 2년간의 시한부 공무원에 도전했고, 2년여의 시간을 쏟아부었다.

2006년 퇴직 후 영어학원을 하는 등 갖가지 새로운 일을 시도하기도 했던 그에게 뜻밖의 기회가 주어졌다. 운명적이었다. 수십 년간 꿈쩍하지 않던 법이 바뀔 줄이야. 50대 중반인 그가 응시에 나이제한이 있는 공무원을 꿈꾸는 건 도대체 맞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뉴스를 접하고 그는 무릎을 쳤다. 그에게 절호의 기회가 운명처럼 주어진 것이다. 2008년까지 공무원 시험 자격요건 중 하나였던 나이 제한(32세 이하)이 2009년 1월 1일부로 폐지된 것. 9급의 경우 18세 이상부터 정년 60세가 되기 전까지 누구나 응시할 수 있게 됐다.

2011년 4월에 치른 국가직 9급에서는 총 1592명 선발에 14만여 명이 출사해 평균 경쟁률 93.3대 1을 기록했다. 그가 응시한 2014년에 본 시험도 비슷했다. 그는 응시자 중 최고령이었고, 합격자 중에서도 최고령이었다. 일할 수 있는 기간이 짧은지라 그와 같은 연령대의 사람들이 앞으로도 시험에 응시할 경우가 많지 않을 거란 점을 감안하면 그는 당분간 ‘최고령 타이틀’을 유지해갈 것으로 보인다. 누가 2년 일하자고 언제 합격할지 모르는 일에 매달릴 것이냐는 말이다.

권씨는 2012년부터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한 해 전의 높은 경쟁률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님 말고!’ 그런 기분이었다. 크게 부담 가질 일이 아니었다. 떨어지면 그만이니까. 대입 준비 중이던 아들조차 “아빠가 합격하면 나는 서울대라도 가겠다”며 놀릴 정도였다. 예상했던 대로 첫해는 낙방.

이듬해에도 하루 대여섯 시간을 공부에 매달렸지만 아무도 붙을 것을 기대하지 않아 크게 강박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모의고사용으로 학원을 서너 달 다녔지만 거기서도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아내는 말없이 응원해주었다. 또래들은 다들 “기억력이 형편무인지경인 나이에 무슨 공부를 하느냐?”며 물어왔다.

“많은 사람이 해보지도 않고 지레 겁을 먹어요. 과연 학창시절처럼 노력은 해봤나요? 한두 번 해보고는 으레 그럴 거다 하는 거죠. 근데 치열하게 노력하고 두뇌를 쓰면 젊었을 때처럼 뇌가 작동하더라고요. 공부한 지 한 6개월 지나니 예전 기억력의 90%가 돌아온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한번 해보세요.” 그는 국어, 영어, 국사, 행정학, 행정법 등 5개 과목에 매달렸다.

합격 발표가 나자 뛸 듯이 기뻤단다. 옛날 회사 사장으로 임명될 때보다 감동이 더했다. 필기시험을 거쳐 체력시험, 면접까지 거쳐 합격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젊은 친구들과 겨루는 체력시험은 꽤나 긴장됐다. 하지만 20m 왕복 오래달리기, 윗몸일으키기, 악력 등에서도 거뜬히 합격선을 넘었다. 그 뿌듯한 성취감을 어디에도 비교하기 어려웠다. 마침 아이들(27·21세)은 군대에 가거나 외국에 나가 있던 터라 함께 기쁨을 나누지 못해 아쉬웠다고 한다. 그는 아들들에게 나이와 무관하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가르침을 스스로 실천한 것이라고 여겨 더욱 흐뭇하다.

공공 이익을 위해 책임감을 갖고 일하는 공직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권 주무관’이 자신이 몸담은 서초구청 앞에서 환한 표정을 지었다.



시험공부 시작해 2년 만에 이룬 꿈

권씨는 수험생 생활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경기도와 서울시 행정직(시간선택제)에 각각 합격했다. 둘 중 한 달 먼저 합격한 경기도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에게 처음 주어진 일은 동사무소에서 인감증명서를 떼는 일. 하루 종일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솔직히 답답함이 밀려왔다. 기업인으로서의 자신의 경력을 활용하지 못한 안타까움이었을까?

그래서 서초구청에 발령받은 뒤로 그는 ‘기업인 경력을 고려해달라’고 간곡하게 청했고 결국 올해 1월 부터 일자리경제과에서 일하게 됐다. 취약한 사회적 기업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한 업무다. 관직에 입문한 지 2년 만에 원하는 일까지 하게 됐으니 환갑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열정을 쏟아낸다. 그의 끈기와 집념, 노력이 빚어낸 결과였다. 나이에 주눅들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그가 아름다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는 25년 동안 쉼 없이 일하다 2006년에 직장을 그만뒀다. 이후의 삶에서도 긴장의 끈은 놓지 않았다. 퇴직 후 그냥 ‘놀던’ 사람은 아니라는 말이다. 퇴직 후 영어학원을 열어 운영했다.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에 외국인 강사까지 초빙해 수강생 80여 명을 모집해 1년 넘게 운영했다. 외국계 회사를 다녔으니 영어는 자신이 있다고 여긴 터라 학원 영어강사에도 도전했다. 집 근처에 있는 영어학원의 문을 두드리자 나이 때문에 의외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경계하는 눈치도 보였다. ‘실력이 다가 아니다’라는 생각에 좌절감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까짓 거, 내가 차린다 그럼” 하는 생각에 덜컥 권리금까지 주면서 영어학원 문을 연 것이다.

그런데 웬걸! 쉽게 여겼던 그 일이 장난 아니었다. 일단 학생들을 실어 나를 자동차도 운전해야 했고 통학에 따른 아이들 안전문제, 강사 관리문제, 돈 관리 등 성과와는 별개로 일이 산더미같이 쌓인 것이다. 매일 피곤에 젖었고, 쉬는 날이 없어 고단했다. 경제성을 따져 학원의 규모도 더 늘릴까 고민했지만 아내와 다툼이 잦아졌다. 그는 1년 만에 결국 학원 사업에서 손을 털었다. 그 일을 그만뒀지만 그는 ‘그만하면 선방했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한국외대에서 아랍어를 전공한 그는 방송통신대학원을 다니며 만약을 대비해 행정학 공부도 해두었던 터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언제 어디서나 홀로설 수 있게 요리학원도 다니고 컴퓨터도 배워뒀다. 보육사 자격증 공부를 했던 아내는 그가 회사를 그만둔 뒤 유치원을 차렸다가 얼마 안 가 역시 손을 들었다. “개인사업을 우습게 보면 안 돼요. 얼추 100명 중 1명만 사업에서 살아남는다고 할까요? 99%가 망하죠. 그 정도 노력하면 아마 누구라도 공무원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 걸요.”(웃음)

학원을 정리한 뒤로도 그는 가만히 앉아 있지는 않았다. 마치 쉬거나 놀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는 중국이 대세’라는 이웃의 권고로 중국 칭다오에서 사업을 물색하기도 했다. 그 사업을 하려고 안정적 생활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월세 놓기 좋은 작은 평수의 아파트도 구하러 여기저기 헤매고 다녔다. 하지만 고민 끝에 결국 중국행을 포기했다. 그 대신에 마침 9급 공무원의 길이 트인 것이다. 시험에 앞서 그는 노량진 공무원시험학원에서 모의고사반이나 총정리반 등을 3개월 동안 다녔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부였지만 재미도 있고 할만 했다”는 게 수험생으로서 권씨의 소감이다.

“영어는 하루 이틀에 되는 게 아니니까 영어만 좀 된다면 나이든 사람도 충분히 공무원시험에 도전할 수 있어요. 사업하기보다 백배 쉬워요.” 현재 맡은 일도 신바람이 난다고 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새내기들보다 경험이 많으니 일을 익히기도 쉽고 아이디어도 풍부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지속가능한 일에 미력이나마 보태고 싶어요. 제가 맡은 일은 제가 기획, 기안부터 실행까지 맡아 하면서 책임도 제가 지는 고유권한이 주어집니다. 그게 말단이지만 공무원이란 직업이 주는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공동체 이익과 사회적 가치실현을 위해 뛰는 사회적 기업들이 생산한 물건의 판로개척을 위해 장터를 마련한 서초구청 일자리 경제과 직원들과 권씨. 그에게서 과거 CEO 시절의 흔적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공익 위해 헌신하는 공직에 매료돼

이제 출근한 지 2개월 된 새내기 주무관. 동료·선배들은 나이와 무관하게 5급 이하는 서로 ‘주임님’이라고 부른다. 임용식 때 구청 직원들에게 입사 동기들을 대표해 인사말을 할 기회가 그에게 주어졌다. 그는 “서초구청의 시책이 서울시 그리고 전국의 플랜으로 인식되고 정착돼 국가에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인사말로 자신의 결심을 밝혔다. 공무원 조직의 경직성을 걷어내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직원들의 창의성을 펼치도록 분위기를 북돋워주는 서초구청의 업무 분위기도 한껏 추겨 세웠다.

그는 임용식 때의 분위기를 자랑삼아 말했다. 풍선을 불어 식장을 꾸미고 노래도 부르면서 꼭 유치원학예회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고 한다. 그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여성구청장을 뽑은 서초구민들 덕분”이라며 유쾌하게 웃었다.

갓 공직에 나선 그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퇴임 후의 변신에 대해 물을 수밖에 없었다. 60세가 되는 내년 12월이면 그는 공무원직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하지만 언제 어디에 있든 한국의 저출산, 청년고용문제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한국의 미래 발전과도 큰 관계가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고 싶어요. 지금 한국은 전 세계 240여 국가 중 하위 아홉째로 출산율이 낮다고 해요. 이대로 가다간 우리 인구가 급격히 줄어듭니다. 인구가 없으면 절대 강대국이 될 수 없으니 이건 한국인의 생존이 걸린 심각한 문제이지요.”

권씨는 진심에서 우러나듯 공무원이란 자리가 “명예스럽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국가를 위한 공익을 실현하는 공무원으로서 명예심을 가지면 아마 부정, 부패도 사라질 것입니다.”

요즘 노모(83)가 거주하고 있는 송파구에서 출퇴근하면서 오랜만에 아들 역할을 할 수 있어 흐뭇하다고 했다. 수원 집에 있는 아내와는 주말부부가 됐지만 부부관계는 더욱 좋아졌다고 싱글벙글한다. “관공서를 잘 이용해야 합니다. 스스로 패배자라 생각하지 말고 정부를 믿고 그들이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잘 활용하면 적당한 수준의 일자리를 찾을 수 있어요. 서초구청은 중소기업의 일자리 제공 신청을 받아 적재적소에 연계해 일자리를 알선해 주니 좌절하지 말고 발로 뛰어야 해요.”

이제 2개월이 갓 지난 새내기 공무원이 기자 앞에서 자신의 업무와 지자체의 업무를 부지런히 홍보하고 있다. 슬쩍 웃음이 났다. 공직 생활에 뛰어든 그의 ‘용감한’ 도전에 건투를 빌면서.

고혜련 - 칼럼니스트. 이화여대에서 국문학, 미국 뉴저지주립대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했다. 중앙일보 기자를 거쳐 파이낸셜뉴스 문화부장과 런던 특파원을 지냈다. 저서로 <신문, 취재와 기사작성> <자연에 산다> <매스커뮤니케이션개론> 등이 있다. 홍보 및 콘텐트 기획사 ‘제이커뮤니케이션’과 블로그(www.우리들이사는 법.com)를 운영하고 있다.

- 글 고혜련 월간중앙 기획위원, 제이커뮤니케이션 대표 / 사진 오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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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