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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표<票>퓰리즘의 종말

김영욱
한국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
“20년간 지독한 불황을 겪었다. 일본 국민들은 그러한 장기침체가 오리라고 꿈도 꾸지 않았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일본의 한 대학 교수가 지난달 국내 언론에 한 얘기다. 그럼 우리는? 20년 뒤 우리는 오늘을 되돌아보면서 이런 한탄을 하고 있지 않을까. 그 누구도 ‘잃어버린 20년’을 꿈꾸지 않는데도 말이다. 일본이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리더십 부재였다. ‘정치의 몰락’이라고 할 정도로 리더십이 상실됐기 때문이다. 1990년 이후 지금까지 일본 총리는 무려 16명이었다. 평균 재임 기간이 겨우 1년 남짓이었다. 일관된 정책 추진이 불가능했고, 경제개혁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리더십 부재는 사실 일본 국민이 자초했다. 개혁에 대한 저항의 산물이었다. 특히 고령화로 확 늘어난 일본 노년층의 저항이 컸다. 노인 복지는 늘기만 했을 뿐 줄이질 못했다. 예컨대 일본 자민당은 2009년 노인의 의료비 자가 부담률을 두 배로 올리려 했다. 늘어나는 재정적자를 도저히 감내하지 못해서다. 하지만 그해 8월 전후 54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당에 정권을 내줬다. 민주당도 2012년 노인요양보험인 개호보험의 개인 부담금을 인상하겠다고 나섰지만 참패했다. 김동원 고려대 교수가 일본 정치를 “노인을 위한, 노인에 의한, 노인의 정치”로 규정하는 이유다. 일본에서 경제개혁이 실종된 까닭이자, ‘잃어버린 20년’의 근본 원인이다.

 이 불이 우리에게도 번졌다. ‘미래세대가 어찌되든 내 몫을 챙기겠다’는 기성세대의 이기심 말이다. 일본처럼 정치권도 맞장구치고 있다. 공무원연금이 단적인 예다. 사회적 대타협의 의미를 폄훼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다. 지적하고 싶은 건 40대 중반 이상의 공무원들은 거의 손해 보지 않는 합의안을 개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다. 개혁이 개혁다우려면 ‘자기 희생’이 들어있어야 하지만 공무원연금 개혁안에는 이게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앞으로 공무원이 될 젊은이가 가장 큰 손해를 보도록 해놓았다. 그래놓고 개혁이니 대타협이라고 말하는 건 이상하다. 오히려 힘없는 사람에게 몽땅 덤터기 씌운 비겁함일 수도 있다.

 내년부터 시행될 정년 연장도 마찬가지다. 한창 일할 나이에 정년을 맞아야 하는 기성세대의 축 처진 어깨는 물론 안타깝다. 그래서 딜레마다. 그렇더라도 한창 일할 나이에 집에서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아들 세대의 처지가 더 고려돼야 한다. 그게 나라의 미래에 더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년 연장은 통과됐다. 청년과 노년층의 일자리 자체가 다르다고 했다. 정년을 연장해도 청년 일자리는 줄지 않을 거라면서.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벌써부터 청년 실업은 심화되고 있고, 청년층의 신규 채용은 줄어들고 있다.

 노동개혁이 꽉 막힌 것도 기성세대의 이기심 때문이 크다. 우리 경제가 저성장에서 벗어나려면 노동시장이 바뀌어야 한다. 개혁의 근간은 유연성과 안정성의 제고다. 그래야 일자리가 늘고 생산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노조의 목적은 자신들의 밥그릇 챙기기다. 청년층의 일자리 창출엔 관심 없다. 노동개혁에 저항하는 이유다. 표를 의식한 정치권은 거기에 휘둘리고 있고. 결국 이 난제를 해결할 사람은 청년층, 자신들뿐이다. 우군 없이 스스로 나서는 수밖에 없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떠넘긴 부담은 지금도 상당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50대 미만은 정부에서 받는 혜택보다 내는 돈이 1억원가량 더 많다. 반면 60대 이상은 오히려 혜택이 더 많다. 최소 1000만원이다. 이뿐만 아니다. 장차 태어날 미래세대의 짐은 훨씬 더 무겁다. 평생 부담해야 할 돈이 현재 세대의 2.4배나 된다. 그런데도 혜택은 적어 순(純)부담이 무려 4억원에 이른다. 그런데도 기성세대는 지금 더 많은 짐을 이들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다. 선거를 의식하는 정치권도 맞장구치고 있다. 표(票)퓰리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 결과는? 20년 뒤 일본 교수의 한탄을 재연하고 있을 자화상이 분명할 게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지금이라도 자문해야 한다. 가난한 노인의 문제를 젊은 근로자에게 부담 지우는 게 맞는가. 우리 세대의 문제는 우리가 푸는 게 맞지 않은가. 비록 그게 시시포스의 도로(徒勞)가 될지라도.

김영욱 한국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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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