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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임성한 은퇴하면 ‘막장 드라마’ 사라질까?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한국 드라마 역사에서 가장 많이 인구에 회자됐던 드라마 작가 중 한 사람인 임성한이 은퇴를 선언했다. ‘보고 또 보고’ ‘온달왕자들’ ‘인어아가씨’ ‘신기생뎐’ ‘오로라 공주’ ‘압구정 백야’ 등이 그가 집필한 드라마다. 그 드라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시청자일지라도 드라마의 이름이나 작가의 이름이 등장하는 언론 뉴스는 피해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임성한은 이슈 메이커였다. 이제 그가 절필을 선언했으니 다시는 보지 않을 드라마 세계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의문이 일 수 있다. 하지만 임성한은 떠나도 수많은 제2의 임성한이 ‘막장 드라마’를 집필하고 있고, 집필을 대기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막장 드라마의 강호에서 임성한이 고수였던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는 ‘극한의 작가’라고 할 만큼 한국 텔레비전 연속극의 내러티브와 관행의 한계를 넘어섰다. 그는 언론과 평론가·시청자들의 호평이 쏟아지는 텔레비전 작품 만들기나 아시아의 메가 스타를 생산해내는 애절한 사랑이야기 만들기를 한마디로 우습다고 뭉개버렸다. 그는 장르 드라마일지라도 발현되기 마련인 양질성 추구의 욕구를 철저하게 부정한다. 여러 평론가가 지적하듯이 잘 쓸 수 있는 필력을 지닌 작가임에 틀림없는데도 미신, 무속, 기형적 인간관계와 세계관을 담은 대사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극작의 기본이 된 드라마의 ‘그럴듯함’의 원칙을 뿌리째 뽑아버렸다.

마마준, 오로라, 황마마, 황시몽, 박사공, 설설희라는 별에서 온 이름을 지닌 인물들은 “암세포들도 어쨌든 생명이에요.(중략) 나 살자고 내 잘못으로 생긴 암세포들 죽이는 짓 안 할래요” 같은 역사에 길이 남을 명대사들을 남겼다. “사찰에서 1000배를 두 달 동안 올리니 남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여자가 예뻐 보이고 좋아졌다”고 동성애자가 발언할 수 있는 공간도 그의 드라마다. SNS로 무장한 시청자들은 임성한의 ‘뒷목 뻣뻣하게 만드는 황당한 맛’에 빠져 공감보다는 ‘욕하면서 보는 즐거움’을 추구했다. 그 결과 임성한 드라마의 대부분을 제작, 방송한 MBC는 고공 시청률이란 이익을 맛볼 수 있었다.

 임성한 시스템은 시청률이라는 목적이 도달되면 수단은 정당화된다는 방송계의 불편한 진실을 확인해 준다. MBC가 이번 결정이 있도록 얼마나 적극적인 역할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사태를 이 지경까지 방치하고 그 수확을 즐긴 무책임성은 충분히 비판받아 마땅할 것이다. 방송사의 방임이 작가에게 안겨준 무소불위의 권력은 그에게 한국 드라마의 스타 의존성도 무시할 수 있는 커다란 힘을 부여했다. 그는 무명 배우들로 높은 시청률을 올리는 데 성공함으로써 방송사와 제작진·배우들을 장악했고, 드라마에서는 인물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작가의 권한을 과시했다. ‘오로라 공주’의 경우 무려 11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개가 떠나거나 죽는 방식으로 드라마에서 퇴출됐다. 그는 눈에서 레이저빔을 쏘게 하거나 유체이탈을 연출해야 하는 PD의 안절부절못함과 “암세포도 생명이다”는 대본을 손에 쥔 배우의 난감함을 가학적으로 즐겼을지도 모른다.

 임성한 드라마는 인구에 회자될 뿐만 아니라 연구 대상으로도 각광을 받아왔다. 한국 드라마에 널리 퍼져 있는 막장적 특성과 그럼에도 ‘왜 보는가’에 대해 질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해외의 한국 드라마 팬이 온라인으로 유통시키고 있는 ‘한국 드라마 십계명’이나 ‘한국 드라마 내러티브의 수형도’ 등은 외국의 한류팬도 한국 드라마의 반복되는 막장적인 논리를 심층적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씁쓸하게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시청률 조사 결과는 60세 이상이 임성한 드라마를 포함한 막장 드라마의 주시청층이라고 말하지만 한국의 시청 환경을 고려하면 거의 모든 시청연령대가 이 환경에 노출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인물들이 큰 소리로 악다구니를 하고 뺨을 때리거나 물바가지를 씌우는 막장 드라마들이 지하철이나 고속버스, 터미널, 병원의 대기실 등에서 항시 방송되고 있기 때문이다. 임성한 작가의 은퇴는 한국 텔레비전에서 임성한식 극한성을 사라지게 할지는 몰라도 막장적인 복수, 폭언, 아귀다툼을 없애지는 못할 것이다.

 한류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정책결정자들과 방송사업자들은 어떻게 제 2의 ‘별에서 온 그대’를 만들까를 궁리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지금부터 시청자에게 부정적 즐거움을 추종하게 유도하고 인간 심성의 극악한 범례를 제공하는 막장 드라마로 시청률 경쟁을 하는 방송사들을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2014년 미얀마를 방문했을 때 그곳의 방송심의 전문가가 했던 말이 귀에 맴돈다. 한국 드라마에서 외도가 너무 많이 나와 남편이 만나는 두 번째 여자를 전처라고 번역해 자막을 단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오로라 공주’의 자막이 어떻게 나올지, 이를 보고 한국을 어떻게 이해할지 두려워진다.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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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