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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할아버지 세대의 파탄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젊은이들이 노년층에 인질로 사로잡혀 있다. 이제 상황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급변하여 노년층은 자녀들에게 외상을 지고 살게 됐다. …베이비붐 세대는 퇴직연령에 접어들며 사상 전례 없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즉 전후 처음으로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외상을 지고 살게 된 것이다. 다음 세대에게 부채와 채무 이행에 대한 부담을 떠넘긴 것이다.’

 ‘잔인할 정도로 아이러니한 것은 베이비붐 세대는 아동의 권리, 자신의 인격과 자율에 대한 존중을 떠받들면서도 자신이 감당할 용기가 없는 희생은 후대에게 물려준 것이다. …젊은이들은 엄청난 액수의 빚을 갚아나가야 한다. 베이비부머들은 책임을 회피하는 ‘부도 낸 할아버지’가 됐다. …젊은이들은 젊기 때문에 당할 뿐이다.’

 2009년에 출판된 『Le papy-krach』라는 책의 서문에서 발췌한 글이다. ‘부도 낸 할아버지’쯤으로 번역이 가능하다. 한국어 번역본에는 『세대 간의 전쟁』(박은태·장유경 옮김, 경연사)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레지옹 도뇌르(프랑스 정부의 최고 훈장)를 받은 르몽드 논설위원 출신인 저자 베르나르 슈피츠는 프랑스 기성세대를 ‘도덕적 파산자’로 규정한다. 공적 연금, 건강보험 등으로 인해 정부를 엄청난 빚더미 위에 올려놓고 후세에게 그 책임을 미루는 어른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부도 낸 할아버지는 프랑스 혁명의 3대 정신인 자유·평등·박애와는 거리가 멀다. 먼저 자유와 거리가 멀다. 젊은이들은 위 세대가 초래한 일의 결과를 수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등과도 거리가 멀다. 평등의 가치와는 반대로 세대 간의 불평등이 조장되기 때문이다. 또한 박애와도 거리가 멀다. 기득권 보호를 위한 대립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5년 전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지리적·시간적으로 거리가 꽤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새 그 일이 우리의 현실로 닥쳐왔다. 할아버지 세대인 여야 대표가 지난 2일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부당함은 자명하다. 당사자인 공무원이 반발하지 않는 것, 공무원을 비롯한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정치인들이 문제 삼지 않는 것만 봐도 결코 개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슈피츠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혁할 능력을 인정받는 정치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고 썼다. 그런데 불행히도 프랑스나 우리나라나 그런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젊은이들에게는 더욱 불행하게도 그들은 할아버지·아버지 세대가 지금 얼마나 나쁜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를 잘 모른다.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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