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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의회 당쟁에 글로벌 리더십까지 흔들 … “정치,끔찍하다”



민주주의 모델로 인정받던 미국 의회가 추락하고 있다.

 의회 정치가 협상과 타협 대신 힘의 대결로 점철되며 초강대국 미국을 내부에서 갉아먹는 것은 물론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까지 흔들고 있다. 주요 20개국(G20) 국가들이 신흥국의 지분을 확대하는 국제통화기금(IMF) 쿼터 개혁안을 통과시키라고 계속 요구했지만 미국 의회가 이를 처리하지 않아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등장을 자초한 게 대표적이다.

 급기야 미국의 전직 재무장관들이 중국발 위협이 아니라 워싱턴이 문제라고 한목소리로 경고장을 냈다. 지난달 27일 금융·투자 포럼인 밀컨 콘퍼런스에서다. 티머시 가이트너 전 장관은 “미국 경제와 미국의 국제적 위상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워싱턴”이라며 “우리가 이 같은 제약을 해소하고 합의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 국제 무대에서 미국의 역량은 심각하게 부식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도전은 냉혹한데 정치는 끔찍하다(politics are terrible)”고도 했다. 로버트 루빈 전 장관은 “지금 세계는 미국이 다시 미국답게 변하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촉구했다. 헨리 폴슨 전 장관은 “미국이 미국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건 중국 때문이 아니라 미국 내부 문제를 고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정치권의 마비 상태를 비판했다.

 미국이 주도해온 국제금융 질서의 일각이 붕괴한 게 AIIB다. 1차 책임은 우방국 상황을 무시한 채 대안 없이 가입을 막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 부재에 있다. 대니얼 드레즈너 터프츠대 교수는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대부분의 중국 전문가들은 6개월 전에 AIIB에 참여해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라고 오바마 정부에 조언했다”고 지적했다.

 G20 정상들은 2010년 서울 회의에서 중국·브라질·한국 등의 재원 비중(쿼터)을 늘리는 개혁안을 마련했다. 쿼터는 IMF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영향력을 뜻한다. 하지만 지난해 3월 미 상원 외교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재정 지원과 함께 IMF 개혁안을 통과시키자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IMF 개혁안은 우크라이나 문제와 무관하다”며 개혁안 처리를 거부했다. 그달 헨리 키신저,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과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등 32명이 의회에 개혁안 처리를 호소하는 서한을 보냈지만 통하지 않았다. 다음달 G20 재무장관들은 워싱턴에 모여 연말까지 미국 의회가 개혁안을 비준하라고 시한을 통보하고, 오바마 정부와 전문가들은 연이어 IMF 개혁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중국 등이 독자 대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지난해 연말 미국 의회는 오바마 대통령의 이민개혁을 예산안에 넣을지 말지를 놓고 싸우며 IMF 개혁안은 뒷전으로 밀렸다. 결국 IMF 개혁안은 G20이 요구한 시한을 넘겼고 경고대로 57개국이 참여하는 중국판 IMF가 등장했다.

 의회의 정쟁은 집안 싸움을 전 세계로 중계하는 망신살로도 이어졌다. 공화당은 백악관도 모르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워싱턴으로 초청했고,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3월 오바마 대통령이 국정연설을 하는 하원 본회의장의 바로 그 연단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이란 핵 협상을 비판했다. 의회 다수당이 행정부의 외교권을 무시해 외국 정상을 초청하고, 그 해외 정상이 의회에서 그 나라 대통령을 비판하는 연설을 하는 것은 한국 정치에서도 상상하기 어렵다.

 미국 정치는 한국 정치의 구태도 종류별로 따라 하고 있다. 지난해 오바마 대통령이 공화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민개혁 행정명령을 발동하자 공화당 일부 하원의원들은 ‘대통령 탄핵’을 거론했다. 한국 정치는 툭하면 고소·고발로 법정에 가는데 미국 역시 공화당 소속의 26곳 주지사들이 이민개혁은 월권이라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2013년 10월엔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 개혁안을 놓고 여야가 대치하다 예산안 처리를 못해 연방정부가 16일간 부분 폐쇄되는 ‘셧다운’이 벌어졌다. 의회 정치의 마비를 방증하는 게 거부권 행사인데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월 공화당이 장악한 상·하원이 통과시킨 미국 종단 송유관 건설법에 거부권을 행사해 무산시켰다. 의회 마비는 여론 편가르기로 이어진다. 지난 2월 갤럽 조사 결과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지지하는 비율은 민주당 지지층에선 79%에 달했지만 공화당 지지층에선 9%에 불과했다.

 ◆“미국 리더십 약화하자 일본에까지 의존”=아산정책연구원의 제임스 김 미국연구센터장은 “재선까지 된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업적을 남기는 ‘레거시 프로젝트’에 돌입했고 미국 의회는 지난해 말 중간선거 이후 공화당 주도로 넘어갔다”며 “눈치 볼 게 없는 오바마와 대선 등 선거를 염두에 둔 공화당의 힘싸움이 점점 커지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의회는 선거 승리를 위해 대중의 인기를 얻는 정책을 추진하며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대 이준한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미국 의회가 중재나 발전보다 서로 발목잡기에 집중해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며 “그 결과 도덕적·실질적 리더십이 약화됐고, 중국의 부상을 우려하며 일본에 의존하는 모습까지 나타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한국 국회도 협력을 통한 거버넌스 없이 반목만 해서는 국내 이슈뿐 아니라 통일, 한·일 관계 등 복잡한 문제를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다”고 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서울=정원엽 기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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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