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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하세요] 색종이 꺼내보세요 … 소리·촉감·냄새로 추억 접어봐요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이사가 자신이 만든 종이공예 작품들을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김 이사는 기자가 즉석에서 종이접기를 부탁하자 10분도 채 안 돼 새·부메랑·비행기 등을 뚝딱 만들어냈다. [최승식 기자]

1988년 KBS ‘TV유치원 하나둘셋’에 출연했을 때. 당시 김영만 이사의 나이는 38세였다.
1990년대 유년 시절을 보낸 당신이라면 이 아저씨를 기억할 것이다. 아침이 되면 아이들은 색종이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아저씨를 기다렸다. 어떤 아이들은 게으름을 피우다 “아직도 이불에서 못 나온 친구들이 있네요”라는 아저씨의 말에 흠칫 놀라 일어났다. 꼬물꼬물 작은 손으로 아저씨가 하라는 대로 색종이를 접어보지만 마음처럼 되질 않았다. 절반도 채 못 접었는데 아저씨가 “내일 만나요”라고 손을 흔들면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그 시절, 김영만(65) 종이문화재단 이사는 매일 아이들의 아침잠을 깨우는 ‘종이접기 아저씨’였다.

 지난달 30일 서울 장충동 종이문화재단 사무실에서 김영만 이사를 만났다. 빨간 뿔테 안경에 캐주얼한 체크 셔츠가 그와 제법 잘 어울렸다. 김 이사는 88년 KBS ‘TV유치원 하나둘셋’을 시작으로 20년 넘게 텔레비전 앞에서 아이들에게 종이접기를 가르쳤다. 방송을 그만둔 이후에도 계속 종이를 접고 있다. 종이문화재단 이사로 일하며 몽골·필리핀 등 개발도상국 학교 교사들에게 종이접기를 전파하고, 충남 천안에 작은 미술체험관을 마련해 아이들과 만난다. 수원여대 아동미술학과 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요즘도 어린이날이 다가올 때면 여기저기서 강의 요청이 쇄도한다.

 김 이사가 종이접기를 처음 접한 건 30대 중반 일본에서였다. 당시 그는 광고 에이전시 사업을 준비하다 실패해 하릴없이 친구 집에 머물고 있었다. 집에서 놀고먹으며 유일하게 했던 일은 친구의 딸을 유치원에 데려다 주는 일이었다. “하루는 딱히 할 게 없어서 아이들이 수업하는 장면을 지켜봤어요. 애들이 색종이로 학을 접고 있더라고요. 색종이를 찢거나 오려붙이는 게 고작이던 우리나라의 수업 방식과는 차원이 달랐어요.”

 그때부터 아이를 기다리며 매일 어깨너머로 종이접기를 익혔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밤새 자신만의 아이템을 만들어냈다. 귀국 후 사립 초등학교 미술 교사 자리를 얻어 종이접기를 가르쳤고 반응이 좋아 학원까지 차렸다. 그러던 중 방송국 PD가 그의 학교로 직접 찾아와 어린이 프로그램 출연을 제의했다. 원래 일주일 정도만 출연할 생각이었는데 아이들의 성원에 힘입어 고정 출연이 됐다.

 “지금 생각해도 아이들 사이에선 연예인 뺨칠 정도로 인기였어요. 팬레터가 전국에서 쏟아지고, 밖에 나가면 다 알아보니까 마트 가기도 힘들더라고요.” 광고 섭외는 하루가 멀다 하고 들어왔다. 엄청난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개인 운전기사까지 뒀다. 개편 때마다 ‘TV유치원 하나둘셋’의 하나 언니, ‘뽀뽀뽀’의 뽀미 언니는 바뀌어도 종이접기 아저씨는 그대로였다. 그는 방송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중복된 아이템을 내보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쌓아 온 아이템만 노트로 16권이 넘었다. 그러다 돌연 방송에서 모습을 감췄다. “어린이 만화만 하루종일 틀어주는 케이블 채널이 늘면서 공중파 어린이 프로그램의 제작비가 줄어들었고 저도 자연스럽게 하차했죠. 너무 오래하기도 했고….”

 종이접기를 향한 김 이사의 애정은 지금도 그대로다. 그는 종이접기의 묘미를 잊고 사는 요즘 세대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다. “종이접기는 과정의 예술이에요. 종이를 접을 때 그 소리와 촉감, 냄새, 앞뒤가 다른 색깔의 조화까지.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오감을 자극받고 인내를 배워요. 그에 비해 결과물은 단순하니까 엄마들 눈에는 성이 안 차는 거죠.”

 김 이사의 침대 옆에는 늘 색종이와 가위, 풀이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면 자다가도 일어나 종이를 접는다. 최근에는 어떻게 날려도 잘 날아가는 비행기 접기를 개발했다고 한다. 뿌듯해하며 웃는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그때 그 ‘종이접기 아저씨’가 남아 있었다.

글=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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