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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York Times] 대지진보다 무서운 못난 정치

쿤다 딕싯
네팔 타임스 편집국장
갑자기 발밑이 크게 흔들렸다. 마치 바다 위 파도에 흔들리는 것처럼 산 전체가 들썩들썩했다.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아주 큰 놈이다’란 생각이 들었다. 춥고 비 오는 토요일 아침이었다. 나를 포함한 네팔 타임스 직원 12명은 하이킹을 즐기고 있었다. 흐린 날씨 때문에 북쪽 히말라야산이 보이지 않아 다들 실망하는 분위기였다. 동료들은 그릇 모양의 계곡에 자리잡은 수도를 내려다보며 도시 난개발과 급성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순간 지진이 엄습한 것이다.

 카트만두는 지진 위험에 가장 취약한 도시 중 1위로 꼽힌다. 매년 1월 중순에는 ‘국가 지진 안전의 날’이 있다. 1934년 카트만두를 초토화했던 대지진의 피해를 잊지 않기 위해 정한 날이다. 우리 신문은 올해 지진의 날을 맞아 “대지진이 발생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우리를 감쌌던 연기가 조금씩 옅어지더니 도시 여기저기서 자욱하게 구름이 올라오는 게 보였다. 동쪽 끝에 자리한 역사적 도시 바크타푸르는 모래폭풍이 집어삼킨 것처럼 보였고, 카트만두는 아예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먼지 더미 아래에 있을 가족을 생각하니 충격은 두려움으로 변했다. 진도 8의 지진이 발생할 경우 카트만두는 초토화되고 사망자 10만 명, 부상자 30만 명이 발생한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떠올랐다. 두려움에 우리는 서로를 껴안았다. 몇몇이 울음을 터뜨렸다. 전화를 걸었지만 전혀 연결되지 않았다. 그 순간 다시 강력한 여진이 다가왔다. 산 전체가 요동쳤다.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땅의 흔들림이 어느 정도 사라진 후 쌍안경으로 도시를 살폈다. 다행히 도시 주거지역의 대부분은 무사해 보였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우리 일행 중 일부는 간신히 친척과 연락이 닿았다. 그러나 4명은 전혀 가족과 연락이 되지 않아 서둘러 산에서 내려왔다. 산자락에 주차해 놓은 차를 타고 도시로 향했다. 붕괴된 돌담과 기울어진 건물을 피해 운전을 했다.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질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개방된 공간 혹은 길 한가운데 무리를 지어 앉아 있었다. 병원 앞을 지나갔다. 보도 위로 옮겨진 매트리스 위에 심각한 부상을 당한 환자들이 줄지어 누워 있었다.

 이튿날 늦은 오후가 되자 피해 상황이 들려왔다. 카트만두에 유독 사상자가 많았고, 세계문화유산의 피해가 특히 심각했다. 그러나 두려워했던 만큼 최악은 아니라는 말도 나왔다. 우리 가족도 무사했다. 와병 중인 어머니를 힘들게 부축해 정원으로 옮겨야 했지만 가족이 무사해 다행이었다. 우리 집이 좀 더 건물이 튼튼하게 지어진 ‘파탄 지구’에 있어서 그랬을지 모른다.

 그러나 진원지에 가까운 산과 주변 지역은 피해가 심각했다. 최악의 비극은 수도에서 북서쪽으로 80km 떨어진 곳에서 일어났다. 특히 전파가 수신되는 곳을 찾기 위해 여덟 시간이나 걸어 온 북쪽 바르팍 마을 주민은 “마을 전체가 완전히 사라졌다”며 울먹였다. 산사태로 강이 끊기고 고속도로는 아예 이용이 불가능해 도보로 걸어와 비극을 전한 것이다.

 이 정도의 재난을 만나면 어떤 정부라도 힘에 부칠 것이다. 그러나 네팔의 피해가 유독 커진 데는 정정 불안 탓이 크다. 네팔은 1990년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바뀌며 마오주의 공산당이 집권했지만 왕정 지지세력과 무려 17년간 내전을 치러야 했다. 2007년 국민투표로 군주제가 폐지되고 이듬해 현직 람 바란 야다브 대통령이 선출되면서 내전은 겨우 종식됐다. 하지만 정부와 공산당 사이의 대립이 여전하다 보니 정치인들은 정쟁에만 집중하고 있다. 게다가 헌법 개정을 둘러싸고 정당들이 싸움에만 몰입한 결과 국회의원이나 시의원 선거는 근 20년간 치러지지 못했다. 지역 당국 역시 재난 대비에 우선순위를 두지 못했고, 구호를 조율할 만한 조직도 갖추지 못했다.

 오랜 내전으로 인해 네팔의 도로는 엉망이거나 아예 없는 곳이 많고, 산악지대라서 접근도 어렵다. 포장도로는 1만km뿐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철도도 단 한 개 노선만 있을 뿐이다. 국토 대부분이 고산지대임에도 불구하고 네팔 육군에는 대형 헬리콥터가 1대밖에 없다. 수도인 카트만두행 화물은 평시에도 인도 콜카타를 통하거나 비행기로 공수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상황이다.

 이번 지진 직후 전 세계에서 기부한 구호물자와 인력이 즉지 현지에 닿을 수 없었던 것도 취약한 교통 인프라 탓이 컸다. 게다가 어렵게 답지한 구호물자들은 네팔 정부의 더딘 통관절차에 막혀 카트만두 공항에 쌓여만 가고 있다. 국제기구와 이재민들이 “관세 규정을 완화해야 한다”고 촉구해도 당국자들은 ‘비공식적인 물품’이라는 이유로 구호물자 차단에만 급급하다. 이렇게 나라 정치가 엉망이면 같은 지진이라도 국민들이 겪는 피해는 열 배, 스무 배 불어날 수밖에 없다. 자연이 초래한 대지진에 잘못된 사회 구조까지 가세해 네팔의 비극이 더 커지고 있다.

쿤다 딕싯 네팔 타임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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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