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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워싱턴에 사쿠라가 핀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사쿠라 꽃비는 몽환적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가미카제는 사쿠라 꽃잎이 새겨진 제로-센 전투기를 몰고 죽음과 충돌했다. 지난 4월 말, 아베 일본 총리가 전후 최초로 미 상·하원 합동연설을 하던 날에도 10만 그루 사쿠라가 일시에 낙화(落花)해 워싱턴DC를 뒤덮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기립박수를 열 차례나 받았다. 미 의회가 저렇게 야속했던 적은 없었다. ‘부동(不動)의 군사동맹’을 담보로 일본 우익의 숙원이던 ‘평화헌법 개정’을 눈감아준 오바마 대통령도 아쉬웠다.

 세계 최강의 군사동맹이 됐다는 데에 어찌 감격하지 않을까. 더욱이 ‘군대 없는 국가’의 서러운 70년 세월에 종지부를 찍는 터에 말이다. 아베 총리는 감회에 젖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미국은 일본 민주주의의 은사’이고 ‘서방세계의 일원이 된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고 했다. 원폭 피폭국이자 패전국의 심정을 십분 이해한다는 듯 승전국 미국은 일본을 포옹했다. 진주만 공습, 레이테만 전투는 멀리 물러났고, 마치 양국이 사이좋게 태평양을 분점하던 1919년 이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거기까지야 제3국이 뭐라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식민지 국가들의 피 맺힌 역사는 어디로 갔는가? 과거 제국의 새로운 결합이라면 적어도 제국주의가 저지른 인류사적 범죄를 언급했어야 옳았다.

 미국의 식민지는 관료 간접통치이고 일본은 군부 직접통치였음은 다 알고 있다. 직접통치도 일왕에게만 종속되는 형태였다. 견제 없는 폭압정치가 그래서 가능했다. 일본은 선량한 이웃 국가들을 총칼로 짓밟았던 죄를 낱낱이 고해야 민주국가의 자격을 획득한다. 전후 서방세계의 일원이 되었다면 왜 한국을 ‘서방과의 성전(聖戰)’에 내몰았는지 이해와 용서를 구해야 한다. 미국 전몰장병만 애도할 게 아니라 징병, 징용에 끌려간 수십만 한국인과 학살된 중국인이 있다. 종전 70년 만에 처음 초청된 미 의회 연설이기에 ‘아시아 여러 민족에게 고통을 줬다’거나 ‘통절한 반성’이란 포괄적 표현으로 얼버무릴 게 아니었다. 위안부 문제가 ‘한국 피로증’을 낳고 있을지는 모르나 그것은 제국적 범죄의 상징이자 뇌관이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인신매매’라는 상업적 용어로 본질을 호도했고, 난징 학살은 언급도 안 했다. 왜 그럴까.

 일본 정신사의 맹점을 파헤친 도쿄대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 교수의 뼈아픈 개념이 떠오른다. 일본의 정신공간에는 과거 기억의 조각들과 이질적 요소들이 혼재한다. 그것들의 윤리적 긴장을 관할하는 중추적 논리가 없다. 모든 행위를 정당화하는 원천인 일왕(日王)은 지배집단의 ‘공동모의’에 대한 책임 회피의 공용 안전판이다. 현실 옹호와 미래 출구를 위해서라면 과거 기억들을 재배치하고 때로는 망각의 창고로 보낸다. 과거가 자각적으로 현실과 마주치지 못하는 이런 구조를 마루야마 교수는 ‘무책임의 전통’이라고 불렀다. ‘과거를 밀어내고 새로운 것으로 재빨리 갈아끼우는’ 일본 정신사의 병리적 증세다. 그래서 ‘과거사를 충분히 사과했다’거나 ‘한국·대만·중국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몰역사적 발언이 가능하다. 이런 특질이 유감없이 펼쳐진 아베 외교의 워싱턴 결재식(決裁式)이 ‘대아시아주의’ 피해 국가에는 제국 침략에 대한 일괄적 면죄부처럼 여겨지는 이유다.

 그런 마당에 미 연방의회 의원 25명이 일제히 비난성명을 냈다. 실용주의 물결에도 미국적 양식(良識)은 빛난다. 과거를 회피하는 일본의 태도와 피해 국가의 심정을 헤아린 원로 의원들의 역사의식에는 종전 후 열린 도쿄 전범재판의 드라마가 생생할 것이다. 진주만 공습 결정을 내린 도조(東條英機) 총리에게 ‘누구의 책임인가’를 물었더니 답은 이랬다. “나는 초개와 같은 신하일 뿐이다… 나는 총리대신이라는 직책을 부여받았을 뿐이며….” 이게 팔굉일우(八紘一宇)의 질서를 건설하고 황도(皇道)를 세계 만방에 심으려고 전쟁을 불사한 일본 파시즘 총책의 변명이었다. 놀런(B. Nolan) 검찰관이 상하이 총사령관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 대장에게 난징 학살의 책임을 심문했더니 ‘군사령관이 아니라 그 지역 사단장 책임’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미국인 검사는 태평양전쟁의 궁극적 책임자를 찾아 헤매다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한국 역시 과거사에 대한 사죄를 받아내려고 거의 돌아버릴 지경에 이르렀다. 만세일계의 천황질서, 황종(皇宗)·황조(皇祖)의 신성적 계시로 인한 모든 잘못은 붕괴된 파시즘과 함께 묻혔다. 잔혹한 폭력통치를 고안한 장본인들도 무책임의 공간으로 증발한 뒤 과거사를 책임질 현대의 일본은 없다. 고노(河野洋平) 전 관방장관이나 무라야마 (村山富市) 전 총리는 ‘무책임의 전통’에서 비켜난 사람이다. 민주당 랭글 의원을 위시한 25명여의 의원들도 예외적 미국인이 아니기를 바란다. 내년에도 워싱턴DC에 사쿠라 꽃비가 내린다 해도.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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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